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소멸의 시학:삭는미술에 대하여’ 5월 3일까지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삭다’라는 말이 있다. 물건도 삭고, 음식도 삭고, 심지어 얼굴도 삭는다. 그런데 영어로는 이 말을 딱히 번역할 수가 없어서 한글 그대로 ‘sak-da’ 로 표기한 전시가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다.
발효도, 부패도, 단순히 썩은 것도 아닌 삭는다는 것. 시간이 흘러 낡고 닳아서 그 형태가 변하고 소멸해가는 것. 이 시간의 흐름과 낡음에 관한 전시라니. 궁금증이 일었다.
이 전시의 시작은 흙이다. 아사드 라자의 작품 <흡수>. 아사드 라자는 지구 생태계에 초점을 맞춘 참여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인데 <흡수>는 현지에서 구한 폐기물과 재료를 활용하여 비옥한 ‘네오소일(neosoil)을 만들고 이를 나누어주는 작품이다. 경작자에 의해 계속해서 흙 위에 삭아진 도시의 부산물들을 뿌리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관람객은 무려 그 흙을 즈려밟고 지나가야 다음 작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참신한 시도 앞에 잠시 망설였다.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선 이 흙을 밟고 지나야 한다니. 부드러우면서도 강제적인 이 참여방식은 관객을 물질 순환의 관망자로 남기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초대이자 가장 영리한 방법이었던 거 같았다.
계속해서 이어진 작품들은 순환과 소멸에 대한 주제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은경의 <소멸의 빛>은 에그 템페라를 사용하고 그 위에 태양광 전구가 설치되어 4주 뒤면 완전히 빛이 바래진다. 소멸되는 것이다.
그 뒤로는 여다함의 <향연>이 이어지는데 이 작품에는 향이 타며(소멸하며) 피어오르는 연기를 ’춤‘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사라지는 향과 연기를 한편의 무질서한 춤으로 생각했다는 작가에게서 소멸을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려는 소멸의 미학이 느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춤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 이유는 옆에서 흘러나오는 비정형의 소리 때문인 것 같았다.
바로 유코 모리의 <분해>. 이 작품은 아마도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던 작품인 것 같다. <분해>는 과일이 시간이 지나며 익어가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과일에 전극을 꽂고, 과일 내부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수분을 측정한다. 감지된 수분은 소리와 빛, 움직임을 생성하는 에너지가 되어 소리를 내고 빛을 밝힌다. 과일이 부패하면서 내부에서 생기는 변화가 음정의 높이, 빛의 세기 또는 깜박임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라니. 충격적이었다.
유코 모리의 작품 <구상도> 또한 인상적이었다. <구상도>는 죽은 사람의 몸이 썩어 가는 과정을 아홉 단계로 그린 일본의 전통 불화다. 일본의 옛 스님들은 이 그림을 보며 육신에 대한 집착을 떨쳐 내는 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작품이 <분해>의 배경이 되었다고 했다.
소멸은 무엇이고 욕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구상도>라는 그림이 워낙 강렬해서 이 두 작품을 함께 배치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것은 소멸이 단지 욕망을 잠재우는 사라짐이 아니라 생명이 소멸하는 순간에도 에너지가 순환되고 있다는, 과정에 집중해보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내내 귀에 들려오던 오묘한 음악이 소멸하고 부패해가는 물질이 내는 소리였다니.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눈에 보이는 부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의 본질과 아름다움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점은 부패된 과일들은 다시 아사드 라자의 <흡수>에 뿌려진다는 것이었다. 이 전시관 안에서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소멸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머릿속에 가득 담고 걸어나오다 보면 7전시실에 도착한다. 넓은 전시실 가득 들어찬 작품들 중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에드가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였다.
이 작품은 마야 칵치켈 부족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인데 30개 가량의 돌 위에 과일과 야채가 올려져 있다. 왠지 그 앞에서 소원을 빌어야 할 것 같았는데 돌이 마치 신의 몸 같기도 하고 제단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칵치켈 부족의 일원인 작가가 술을 따르고 향을 피우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니 역시 이 작품이 단순한 오브제는 아니었다.
에드가 칼렐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 던진 화두는 작지 않다. 바로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지난 2023년부터 이 작품에 대한 보호자가 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향후 13년간 이 작품의 소유자가 아닌 보호자가 되기로 한 미술관이라니. (마야문명에서 13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를 뜻해 그것은 곧 부족의 정신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작품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미술관의 역할은 작품을 손상 없이 잘 보존하는 것일텐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패러다임의 변화가 온 듯했다. 아마도 이제는 미술관이 작품을 단순히 보존하는 수장고 역할을 넘어 작품의 가치를 지속하고 공유하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전시를 본 후, 어떤 감각적 즐거움 보다는 마치 어떤 세계관 하나를 응축하여 경험한 느낌이들었다. 소멸되어가는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소멸이라는 의미를 환기시키고, 작품의 보호자가 됨으로써 작품이 가진 형이상학적 의미를 고찰해보게 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모든 생명체의 조용한 숨결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는 이 느낌은, 아마도 이 전시가 단순한 관람이 아닌 경험의 형태로 기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 이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분해>의 과일들은 곧 새로운 과일들로 교체된다고 하니, 4월에 가시는 분들은 생생한 수분의 에너지와 소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