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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지 Jan 23. 2022

동태와 다시물의 하모니...라면 국물도 이기겠네.

<겨울방학 초간단 보약밥상>  지금 안 먹으면 손해, 동태탕

어릴 적, 솜씨 좋은 엄마의 음식인데도 가장 싫어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동태탕이다. 엄마는 어떻게든 동태탕에 든 생선 한 토막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나는 마지 못해 생선 살을 한입에 몰아넣고 꿀떡 삼켰다. 맛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내게 동태탕은 그저 '미션 클리어' 해야 하는 음식에 가까웠달까.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이 겨울 그 동태탕이 또다시 소환됐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스스로 동태탕을 끓인다.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싫어했던 음식에도 입맛은 차근차근 길이 드는 것 같다.

내가 동태탕을 스스로 끓이게 될 줄이야

그야말로 명태, 생태, 동태, 황태, 먹태, 노가리 등등 다양하게 불리는 이 생선 중에서 동태는 '얼린 명태'를 말한다. 동태는 따뜻한 성질의 음식으로 손발이 차갑고 속이 냉한 사람에게 좋다고 하니,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 이보다 더 제격인 음식 재료는 없을 것 같다. 동의보감에서도 동태(명태)는 해독 기능이 좋은, 겨울철 보약이라 했으니 보약밥상의 메뉴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 얼큰한 동태탕 깊고 시원한 겨울철 별미다. 


어디 자격뿐이겠나. 동태 살이 내뿜는 아미노산과 다시 육수가 만난 맛의 하모니는 자극적인 인공조미료 맛과 비교할 바 아니다. 이 국물이 아우라를 뿜어내는 가운데 고춧가루가 화룡점정을 찍으면, 얼었던 몸과 마음이 살아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전적으로 내 바람일 뿐이지만, 이런 시원하고 얼큰한 감칠맛이라면 우리 딸들 좋아하는 라면 국물을 이길 수도 있겠다 싶은 기대감에 마음도 한껏 부풀었다.


라면 국물에 뺏긴 마음도 찾아오고, 추위에 잔뜩 얼어 있는 마음도 녹여줄 일석이조의 동태탕은 착한 음식답게 끓이는 법도 간단하다. 사실 '탕'이라는 음식의 맛은 다시물이 다하는 법이라 우려놓은 다시물이 있으면 말 그대로 초간단 음식이다.


그런데 이런... 다시물이 똑 떨어졌네? 이참에 넉넉히 우려보아야겠다. 다시물은 냉장고나 냉동고에 있는 재료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에 어찌 보면 가장 손쉬운 마법의 국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뿌리 다시마 손바닥만 한 것 두 장과 멸치 한움큼을 넣는다. 딱 이 상태로도 맛있는 국물이 만들어지지만 욕심을 내서 디포리 10마리 내외와 황태머리 1개를 넣으면 국물 맛이 더 깊어진다.


보통은 여기서 끝내지만 오늘은 냉동실에 얼려둔 파뿌리가 있으니 약간의 변주를 더해도 좋겠다. 파뿌리 3개 정도와 가쓰오부시 약간을 넣고 푹푹 끓여주면 다시물 완성. 나머지는 참 별 게 없다. 


다시물을 만드는 동안, 동태를 물에 담가 30분 정도 해동시켜 깨끗이 손질해놓고 무와 쑥갓, 혹은 미나리를 먹기 좋게 썰어 놓는다. 물론 장볼 때 뭐 하나씩 빼먹는 나 같은 사람은 이번에도 쑥갓과 미나리를 잊었지만 괜찮다. 없으면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 쑥갓과 미나리니까. 이번엔 그냥 무만 숭덩 썰어 넣는다.


금세 살살 풀어지는 동태를 보면서, 숙제에 지친 아이들 마음도 살살 녹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덤으로 담는다. 그리고 준비한 재료를 다시물에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으로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간을 하고 보글보글 끓으면 세상 쉬운 동태탕 완성.


동태탕에 곁들이면 좋을 반찬, 물미역


▲ 물미역 식이섬유가 풍부한 겨울철 디톡스 음식!


그러나 나의 최대 허들, 난제가 남아 있으니 깊은 국물 맛에 관심없는 우리 첫째의 입맛이다. 아직 동태탕에 적응을 못한 첫째가 또 라면 타령을 할까 봐 좋아하는 물미역을 곁들임 메뉴로 준비했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물미역은 시원한 바다 맛이 나는데, 이 자연 그 자체인 반찬이 우리집 식탁에서는 신기하게도 인기 메뉴다. 단, 물미역에는 풍부한 식이섬유가 들어 있으니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으신 분들은 부디 과식을 주의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저러나 첫째에게 동태탕을 어찌 먹인다? 음... 예전 우리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생선 살을 발라 한입에 넣어줘야겠다. 동태 살을 한 입 꿀꺽 먹으면 새해에는 '아낌없이 주는 동태'처럼 뭐하나 버릴 게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건네며 말이다.


<동태탕 끓이는 법>


1. 국물용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다시물을 낸다.

2. 30분 정도 동태를 물에 담가 녹인다.

3. 동태를 깨끗이 손질한다. 무와 미나리도 먹기 좋게 썰어 놓는다(없으면 패스).

4. 다시물에 무를 먼저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5. 파와 고추를 어슷 썰고, 양파는 슬라이스로, 마늘은 다져서 준비한다.

6. 다시물에 손질한 동태와 5번,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다.

7. 간장과 멸치 액젓으로 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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