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함을 품은 자조일까.
TV 속 사람들은 미소를 곧잘 띤다.
그들의 표정을 따라 하다 잠시 얼굴이 비친다.
화려함을 느낀 웃음일까.
초라함을 품은 자조일까.
전해오는 감정에 나의 시간을 빗대어본다.
지켜보고 감탄하며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너무나도 웃게 되어 흘렸던 눈물에 갈채를.
비전공자는 확실한 차별점을 지닌다. 비전공이라는 특징이다. 디자인에 특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외의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다. 나로서는 영상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디렉팅 할 수 있으며 약간이나마 실용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더불어 간단한 음원 믹싱이나 편집 등을 잔재주처럼 부릴 수 있다. 다방면에 활동할 수 있어 처음으로 입사했던 스타트업에서는 용이하게 활용되었다. 어쩌면 신생업체에 있어 적합한 인재상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지만, 나름대로 보유하고 있는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이 점을 활용해 어떤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을지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손에 쥐고 있는 무기의 양날은 나를 향하기도 한다. 다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하나의 분야에 전문적이지 않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면 다르지만 전문성을 요하는 디자인업에서 비전공자는 적합하지 않다. 클라이언트의 원츠와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감각과 기술은 비전공자의 차별점과 멀다. ‘나는 영상 제작의 전반적인 프로세스에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에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필연적이다.
다채로운 색은 화려할 수 있으나 초라해지기 쉽다. 외부인이 관망했을 때는 근사해 보일지도 모른다. 전공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관련된 지식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다재다능이란 말이 어울릴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옷을 바꿔 입으면 된다. 하지만 그 옷들은 어울리지 않다. 값싼 갖가지 옷과 장신구로 치장했어도 촌스러움은 드러난다. 오히려 고급스러운 단벌 정장이 눈부시다. 여러 방식을 채택한 건 정답일까.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건 실수일까. 비전공자가 가지는 이점을 수요로 하는 시장은 분명 존재한다. 그곳을 지나치고 더욱 멀리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지녔던 화려함은 초라함이었다. 그들과 구분될 수 있었던, 내가 지니고 있었던 다채로운 색을 어수룩하지 않고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
초라함을 품은 자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