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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한시십오분 Dec 06. 2022

열네 번째 심상.

손에 쥐었던 미래는 먼지만 가득하다.

사용 프로그램 : CInema4D, Redshift, AfterEffects


헐거워진 얼굴에 균열이 인다. 

차게 식은 감정에 서리가 낀다. 

길을 잃은 눈동자는 허공만 응시한다. 

손에 쥐었던 미래는 먼지만 가득하다. 

거짓으로 점철된 과거의 내게 

진실로써 전할 풍경이 있다면 

오로지 백야였다.




  스타트업의 외양은 사회 초년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유니콘이 된 많은 신생기업을 여러 매체에서 소식을 들을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구조, 자유로운 호칭 문화, 탄력 있는 근무 제도 등 기성세대의 기업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체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새로움과 도전 정신은 사회에 막 발을 디딘 이들에게 구미를 돋게 만든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으로 작은 회사의 설립을 이끌었다. 스타트업에 종사했던 이력은 후에 더 큰 발돋움을 위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직접 경험했던 바로는 미디어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과 괴리가 컸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던 걸 수도 있었겠지만, 함께 종사했던 직원들의 경험을 비추었을 때도 득 보다 실이 더 컸다. 


  대개 스타트업은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체계가 통용되지 않는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는 건 업무 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화된 역량에 따른 업무를 배정받지 않고 역량과 관련된 전반적인 범위를 담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토리보드 작가가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일임받을 수 있다. 또한 수평적인 조직구조는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집체 교육을 이수받지 않은 신입사원이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있으며 구성원 간 역할의 경계가 모호하다. 


  대표에게 비용적 이익은 평사원에 있어 악순환의 반복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그러므로 사내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최소화를 이루는 게 유리하다. 종사했던 스타트업에서는 디자인 프로그램과 오피스 프로그램, OS를 모두 불법 소프트웨어로 사용했다. 또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높은 가격의 경력직보다 저렴한 계약직을 지속적으로 회전시켰다. 이런 비용적 이익은 불행으로 다가왔다. 가르치고 관리해야 할 하위 직원들이 바뀌거나 추가될수록 업무의 양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회사의 이윤을 위해 업무가 분담되기보다 추가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디자인 역량을 계발할 수도 없었거니와 원하는 수준의 급여도 받지 못했다. 한 개 회사의 토대를 마련하고 성장시켰던 것에 대해 회의감이 그득했다. 이뤄왔던 것을 뒤로했을 때는 이상과 미래에 대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손에 쥐었던 미래는 먼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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