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설렘은 먼 기억이 된 지 오래다.
사진 속 내 모습은 같으나 같지 않다.
지난 시간과 공기에서 짓는 표정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찾아볼 수 없다.
잊어버린 장면에서 잃어버린 순수.
처음 설렘은 먼 기억이 된 지 오래다.
먼지 쌓인 첫 시작은 나를 보고 있을까.
혹시라도 마주치면 어떤 인사를 건넬까.
의지가 발현된 욕망은 형태가 갖춰져 시작에 이른다. 매사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에 복잡한 과정이 얽힌다. 그것이 본능에 의해서든, 숙고에 따랐든 작은 기적을 이룬다. 동시에 책임 소재가 발로 되고 결과에 따라 개인은 평가된다. 실패로 벌을 받거나 성공으로 상을 수여받는다. 두 개의 대척점 사이에서 잣대는 갈린다. 현재는 과거의 선택, 시작과 결론이 중첩되어 쌓여있다. 오늘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지나온 어제들이 잘못된 출발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치기 어린 욕심으로 시작을 이룬 선택은 끔찍했던 지난날을 거쳐 지금에 다다랐다. 보람차고 기쁘기보다 힘들고 아쉬움이 지배적이다. 숭고하다고 여겼던 출발선은 혹독하고 참담한 모습을 반영했다.
‘처음부터, 시작부터 잘못됐다‘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겁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남기고 싶다란 의지와 욕망으로 비전공 디자이너의 삶이 시작됐다. 미래가 밝고 수입이 많은, 풍요로운 인생을 바랐다면 다른 길이 이어졌을 터이다. 바랐던 욕심대로 많은 작업물을 만들고 있다. 다만 물질과 감정의 부유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내 시작은 잘못되지 않았다. 다만 구체적이며 명확하지 않은 전제를 내세웠다. 비전공자임에도 인정을 받아 성공을 원하는 별개의 욕구가 조용히 시작됐다.
새로운 시작을 수용하고 감당할 자신이 없다. 미숙했던 시작에 따른 처참한 결과를 경험했다. 고상한 의지는 실현됐지만 내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원하는 대로 적지 않은 것을 창작했으나 자기만족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과에 따른 평가라면 성공에 가까운 벌이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감정은 따라가지 못한다. 괴리는 나를 좀먹었고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새롭게 만들어질 시작을 주저하게 됐다. 서투른 출발로 같은 현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두려웠다. 어찌 시작을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자라나는 욕심을 인지했으나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한다. 순수와는 거리가 먼 어중간한 자신을 만든다. 헐고 낡은 영혼은 오늘도 같은 걸음걸이로 내일을 향해 걷는다. 새로운 시작이 곁에 머물기까지는 아직 많은 계절을 보내야 할 듯싶다.
처음 설렘은 먼 기억이 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