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말한다.
언젠가부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몇 년 전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여주인공 연재가 젊은 나이에 시한부 암 진단을 받는다. 그제야 그동안 자기가 하고 싶었던 걸 하나도 못하고 현실을 살아왔다는 생각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나 또한 그동안 정말 스펙터클 판타지 소설 같은 삶을 살았다. 나를 돌아볼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보게 된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속 연재는 작은 수첩을 하나 마련하고 한 페이지에 한 가지씩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 적고 보니 별게 아니었다 산다고 제쳐둔 작은 일상이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려고 나도 펜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바늘구멍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한 가지만 시작해 보자 싶었다. 그것이 2015년 가을이었다.
처음 한 것은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부 3학년에 편입이었다. 영어에 대한 갈증은 아직도 넘치고 있다. 나는 2016 학번 사이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부 3학년 학생이 되었다. 아마도 연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다시 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누비며 순수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작은 시작이었다. 내 생활에 지장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등록금은 한국장학재단 국가 장학금을 이용해 무료가 가능했고, 받을 수 있는 다른 장학금을 찾아서 다른 경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산다고 제쳐두었던 일들이 이렇게도 이룰 수 있는 일이었는데 시도하지 않아서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후로 나는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김민식 작가님의 매일 아침 써봤니? 란 책을 우연히 접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데 종이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어 e북을 결제하고 읽었던 책이다. 그 책에서 나는 딱 해답을 얻었다. 이 두 문장, 더 이상 내가 바라는 게 없구나 나의 버킷 리스트는 이것이면 완성되겠구나를 알았다.
'지금 이 순간 제게 가장 즐거운 일은 독서, 여행, 글쓰기 세 가지입니다.'
'은퇴 문제에서 최고의 해결책은 은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써 봤니? 중에서 - 김민식 저
내가 관에 눕혀지는 순간까지 읽고 사색하고 쓰고 산책하며 낯선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고 담소를 나눌 친구 한 명 곁에 두는 게 나의 은퇴이다.
나는 지금 더 많이 가지길 바라지 않고 더 적게 쓰며 살 수 있기를 실천해 나가며, 내 곁에 남겨질 친구 한 명을 두기 위해 남편을 친구화하고 있는 중이다. 혼자 놀든, 둘이 놀든, 여럿이 놀든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잘 놀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남편을 조련하는 중이다 지금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배우라고 지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행동하라고 내 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미래'라는 이름으로 소홀히 대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가지라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순간 옆에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라고 그렇게 남편을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완성되었다. 독서, 여행, 글쓰기
어디서든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머물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옆엔 항상 처음엔 설렘이었고, 조금 시간이 지나선 세상천지의 웬수였고, 조금 시간이 더 지나니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지가 되었고, 지금은 모진 세월을 함께 헤쳐오고 헤쳐갈 전우가 된 옆지기 친구가 있다. 관에 눕혀지는 그 순간엔 서로에게 최고의 조문객이 되어 떠나는 모습까지 잘 지켜보며 보내줄 친구가 되었다. 이러니 지금 내가 무얼 더 바라리오?
맛있고 시원한 커피 한 잔과 한적한 곳을 거닐 수 있는 시간과 그 옆을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홀가분한 인생으로 마감할 수 있으리라.
비로소 나의 버킷 리스트의 끝은 정해졌다.
지금 바라는 것은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수 있기를...
조금 더 건강할 때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이 모든 걸 글쓰기 할 수 있을때까지 나의 정신이 온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