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코레아 후라! (대한민국 만세)
1909년 10월 26일 세발의 총성.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30살의 청년 안중근.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각색되고 편집된 경향이 있다. 어릴 적 읽은 위인전 느낌이 있다. 나와 같은 인간이면서 같은 인간이라고 동일선상에 올려 견주기에는... '감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인간 안중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가 기대되었다.
안중근은 말수가 적고 우직한 사람이다. 어떤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행동으로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자상하고 세세하게 살피기보다 대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진작에 받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소설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기 전, 후의 짧은 기간이 주된 내용이다.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구별은 잘 안되지만 충분히 몰입하며 읽었다.
"저는 10월 26일에 이토를 쏘았는데, 저의 처자식이 27일에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처자식이 미리 도착해서 저를 만났다면 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겁니다.
저는 이 하루 차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p268)
10/26일 거사를 치르는 동안 아내 김아려는 두 아들과 함께 남편에게 오는 중이었다.
휴대폰이 있거나 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연락은 안 되고, 또 오는 과정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남편 안중근은 26일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김아려는 27일 아침에 하얼빈에 도착했다. 김아려를 기다리는 건 남편이 아니라 하얼빈에 있는 일본 경찰들이었다.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었을 테다. 아내와 아들을 만났더라면 아무리 감정표현이 적은, 나그네 같던 안중근이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을까.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p89)
천주교도였던 안중근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주저함이 있었다. 과거에 한 전투에서 잡은 포로를 풀어준 일화도 나온다. 그랬던 그였지만 이토의 악행을 멈추기 위해서는 죽이기로 한다. 소거하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거침이 없었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빌렘 신부에게 모든 죄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옳은 일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후회도 자책도 없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안중근의 거사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뮈텔 신부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에서는 살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개인(혹은 국가)의 증오를 살인의 방식으로 표출한 안중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교계에서도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 취급을 받은셈이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당방위에 손을 들어주며, 최초의 추모미사가 이루어졌다. 안중근 의사 서거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소설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짧고 담담하게 묘사한 반면, 체포된 이후의 재판 과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의 소망도 이토 히로부미 제거에 있지 않았고, 이토를 쏴야만 했던 죄목을 서방세계에 널리 고발하고 싶어 했다. 더 나아가 동양평화론을 주장하기까지 하며 보다 큰 정치적인 명분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이토 히로부미도 동양평화론을 주장했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문명개화의 이름하에 자행된, 수탈과 억압을 통한 철저한 식민지화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한국, 중국, 일본 등 각자의 나라가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며 서로 협력하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주의였다.
안중근의 가족은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을 두었다. 자녀들의 이야기는 짧게만 언급되는데 특히 둘째 아들 안준생은 배신자라느니 친일을 했다느니 하는 얘기도 간단하게 사실적으로만 언급되고 있다. 두루 함께 엮었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쉬웠다.
안준생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로 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거 같다.
실제 내용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친일파 라기보다 안타까운 이야기가 상상된다.
안분도(첫째 아들)는 7살에 일본 밀정에 의해 죽은 것처럼 보인다. 안준생은 살아남았지만 평탄한 삶은 아니었을 테다. 직업이나 제대로 얻었을까. 뭘 해 먹으며 살았을까. 협박과 감시, 훼방이 평생을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친일을 했다면 죽고 싶지 않은, 생존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주위에선 온통 찬양하는 이야기뿐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이름이 아니었을까.
협박과 감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상이 이어지면 원망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으로 변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칭송하는 말이 삶을 1원어치도 바꿀 수 없었다. 좋은 칭찬이 쌀이 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습니다.
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안준생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 소설로 안중근에 대해 또 그 가족에 대해, 독립운동을 했던 영웅들에 대해 담담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역사적인 인물이 주인공인 책은 자발적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김훈 작가가 썼다고 하니 이목을 끌게 되는듯하다.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된 영웅들은 잊히면 안 된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 한 명 한 명의 영웅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억하고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