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되갚아 주는 편인가.
영화나 드라마라면 조목조목 명대사와 함께 통쾌한 한방을 날린다.
시원한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후련함을 선사한다.
마지막 퍼즐까지 깔끔하게 끼워 맞춰지며 명쾌한 권선징악, 해피엔딩에 이른다.
하지만, 현실은?
흥분한 상태로 두서없이 하고픈 말을 쏟아내기 바쁘다.
머릿속에 있는 말을 다 해소하기 전에 감정이 차올라 울분을 터뜨리기 일쑤다.
미디어 속 후련함과는 달리 엉망진창 진흙탕 싸움이 되기 쉽다.
현실의 나도 최선을 다해 복수를 꿈꾼다. 복수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시시한 뒤끝시전에 가깝지만 말이다.
1개를 받았으면 이자까지 톡톡히 얹어서 두 배 세 배 갚아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어디까지나 힘의 균형이 비슷할 때 얘기다.
한번 해볼 만한 상대일 때, 잘하면 내가 이길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드는 가해자일 때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거나, 가해자가 여러 명일 때, 원인이 확실하지 않을 때 우린 벽에 부딪친다.
누구에게 분노를 해야 하는지, 답답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그저 속만 타들어간다.
복수할 상대가 너무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춤하게 된다. 복수를 하려다 더 큰 화를 입을까 겁이 난다.
힘의 균형이 상대방 쪽으로 너무 기울었을 때 마음과 행동은 엇박자가 난다.
나는 무엇이 인간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드는지
또 그 폭력에 직면해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 한강, 뉴욕타임스 기고문 중, 2017.10월 -
무엇이 인간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드는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것이 펼쳐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같은 사람들, 사리 분간이 안 되는 꼬맹이들, 말도 못 하는 갓난쟁이까지.
머리에 겨눈 총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피해가지도 않았다.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른 채 희생당했다.
갓난아이에게 까지 총을 겨누는 그런 광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광기를 승인하고 허락한 권력자는 누구인가.
풀리지 않는 의혹과 명확하지 않은 진실규명.
가혹한 피바람 속에 가족을 잃고 속시원히 원망도 못했던 세월이 수십 년이다.
억울함을 내비치는 순간 붙잡혀가 곤욕을 치르던 시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은 없어지고 기억은 가물해진다.
생존자와 유가족은 병들고 나이 들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도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여전히 진실은 어두운 곳에 희생자들과 함께 묻혀있다.
1948년 4월 3일 사건이 발생하고, 55년 만인 2003년.
노무현대통령이 최초로 국가원수로서의 공식 사과가 이뤄졌다.
반군 집압을 명분으로 한 대량 학살,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무고한 민간인.
국가가 잘못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300명 정도의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1만 4천여 명이 죽었다.
희생자 숫자도 정확하지 않다. 추정치는 3만에서 8만 명으로 보고 있다.
유해발굴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희생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이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경하, 인선, 인선의 어머니인 강정심 여사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로 병원에 입원 중인 친구 인선.
앵무새 '아마'를 살려 달라는 친구의 부탁으로 서울에서 출발해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간다.
제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폭설로 한 치 앞이 안 보이고 사람도 차량도 지나지 않는 황량한 곳이다.
원래도 한적한 곳이지만 악천후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추위와 어둠, 오랜 지병인 편두통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이다. 사람도 아니고 한낱 새를 구하러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도 나아가는 경하. 이게 맞는건가?
너에게(앵무새 또는 진실) 가는 길이 왜 이리 멀까.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려고 하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치러야 하는 건가.
위험하고 어렵고 무섭고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려면 이런 험난한 고통쯤은 치러야 자격이 되는 듯이 경하는 그렇게 나아간다.
제주에 도착해서 꿈을 꾸는 듯, 환상인 듯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찾아온다.
인선과 경하의 대화를 통해 인선의 가족사가 밝혀진다. 인선의 가족사를 들으며 4.3 그날의 참상을 체험하게 한다.
역사는 누구나 관통하지만 각자가 겪은 1인분의 경험이다. 모두 다를 수 있다.
서로 소통하고 조율하면서 지나온 과거를 약속된 하나로 완성시켜야 한다.
팩트 체크가 되어야 하고 어떤 조미료도 들어가서는 안된다.
죄가 있으면 묻고, 반성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억울함은 위로하고 풀어줘야 한다. 숨김없이 따져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고통을 치유하는 존재도 사람이다.
사람이 병도 주고 약도 준다.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