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제이 Nov 03. 2017

91 문제아는 없습니다

<엄마 반성문>을 읽고

"아들아, 엄마 이런 책 읽는다! 어떻게 생각해?" 

책 제목 <엄마 반성문>을 쓱 보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간다. '어, 왜 반응이 없지?' '왜 아무 소리 안 하지?' 의아했다. 

재미있는 일이 있거나 뭔가 얘깃거리가 있을 때마다 아들을 찾는다. 헌데, 올해부터 그게 쉽지 않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지방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얼굴 보기가 힘들고 전화통화도 여의치 않다. 두 달 만에 집에 온 아들. 며칠 있으면 다시 이별이다. 비싼 아들이기에 온종일 아들 주위를 맴돈다. 다만, 귀찮지 않을 정도의 빈도여야 하고, 아들이 흥미 있어야 할 대화라야 한다. 

아들을 따라 들어가 재차 질문한다. 

"어?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
"그 책을 안 읽어봐서 뭐라 할 말이 없어요"
"아아~ 그냥 책 제목만 보고 할 말 없나 물어본 거지. 뭐 '엄마는 필요 없는 책이지 않아요?'라든지, '엄마가 꼭 읽어야 할 책이네요'라든지?"


아들 입 꼬리가 씩 올라간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한 모양이다.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더니, "엄마는 잘하고 있어요. 필요 없어 보이는데요" 한다. 질문을 하기 전에 어떤 반응이 나올까 살짝 긴장했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긴 했지만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옆구리 찔러 절 받고 싶진 않았는데, 아들의 속마음을 엿보고 싶었는데, 실패다. 

<엄마 반성문>의 저자는 수십 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어느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계신다 한다. '공부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저자는 학교 선생님으로선 좋았다. 맡은 학급을 매번 1등으로 만들었다. 무조건 성적이 오르니 학부모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엄마로서는 빵점이었나 보다. 집에서도 '공부, 공부' 하는 억압형 엄마는 아이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전교 일등이었던 남매가 고3, 고2 때 자퇴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 학원 모두 끊고, 종일 게임만 하며 폐인처럼 산다. 부모의 자랑이었던 '엄친아', '엄친딸'이 하루아침에 불량 청소년이 되었다.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저자에 따르면, 협박과 회유를 거듭하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봤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분노와 스트레스였다. 실제로 대수술을 받기도 하고, 교통사고도 두 차례나 겪으며 일상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 아이들. 또 딸아이의 자해 소동까지 겪으면서 저자는 아이들이 무서워졌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을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엄마를 변하게 했다. 

아이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모 교육, 소통과 관련한 교육을 받고, 관련 자격증만 20여 개를 딴다. 한국코치협회 교사 1호라는 인증도 받았다. 저자는 절망에서 코칭을 만났다고 했다. 지금도 학부모와 교사를 상대로 코칭 강사를 하고 있다.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하는 부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코칭 강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실제 지옥을 경험한 생생한 체험담이라 강의 반응도 뜨겁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 회마다 문제가 있는 서로 다른 아이가 등장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양육자의 잘못이 크다는 점이다. 나쁜 아이는 없다. 훈육방법이나 부모의 말 한마디가 문제 있는 아이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억압형', '방임형', '감정코치형'. 나는 어떤 부모일까? 부모인지, 감시자인지? 내가 가진 잣대로 아이를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아이가 어릴 때 양육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많이 읽었다. 중간에 좀 쉬다가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 좀 예민하게 굴 때 다시 찾아 읽었었다. 아들의 나이 대에 맞게 참조할 만한 책으로 손이 갔다.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자녀 교육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와 똑같은 상황은 재현되지 않았고, 비슷한 상황이어도 아들의 반응은 책 내용과는 달랐다. 책은 써먹지 못하는 지식이었다. 이 책도 비슷했다. 우선 아들은 전교 1등을 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또 자퇴를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책 속에서 강조하는 '감정 코치형' 부모의 예시는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했다. 

"코칭은 '너와 내가 같이 가자. 내가 너와 함께할게'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p104)
"흔히 코칭을 설명할 때 마차와 기차를 비교합니다. 기차는 정해진 목적지를 정해진 길로 갑니다. 반면, 마차는 승객이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길도 승객이 원하는 대로 정합니다. 다만 승객이 길을 잘 모를 때는 마부가 승객을 도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게 됩니다." (p105)


우리 부부는 '억압형'은 아니고 '방임형'에 가깝다. 다행히도 방임과 감정코치가 조금 섞인 것도 같다. 물론 방임 쪽에 무게가 쏠린다. 남편도 나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 의견만 존중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결정권도 아들의 몫으로 미룬다. 

학원이나 교재 선택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진로도 철저히 주변인에 머물고 싶다. 그런 상태로 17년을 살아온 아들은 이제 결정해야 할 뭔가가 있을 때 조언을 구하긴 하지만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이 된다. 책임감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성공과 실패는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참조가 되는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내가 깨우친 지식과 경험을 아이에게 적용했을 때 꼭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건 맞지만, 좀 더 오래 살았다고 해서 내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래 살고, 많은 걸 경험했다고 무조건 지혜롭지는 않으니 말이다.



*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학교 인기 교사, 집에서도 "공부 공부" 했다가

매거진의 이전글 90 토크리시 (Talki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