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아들은 초등 5학년
토크리시(Talklish)가 한창 열풍이었다. 온라인 교육과정이었는데, 영어 공부를 게임처럼 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어도 영어 공부는 끝이 없다. 자격증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닌 입이 트이고, 회화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 주로 들었다. 일방적인 교육형태에서 게임과 대화를 유도한 형태여서 더 인기를 끌었다. 유행에 힘입어 나도 두세 달 수강했었다.
회사에서는 부끄러워서 할 수가 없다. 집에서 이어폰과 마이크 기능이 있는 헤드셋을 쓰고 '뉴욕스토리'를 시작한다.
처음엔 문 닫아놓고 혼자 하다가(집에서도 부끄러워서 ㅎ) 나중엔 아들과 함께 번갈아가며 했다. 나보다 발음 상태가 훨씬 좋은 아들은 Next 버튼 누르는 속도가 빨랐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모든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정확도나 스피드에서 나와는 수준이 달랐다. 나는 목소리가 작았고, 발음이 이상한지 상대가 잘 못 알아 들었다. 대화 형식이어서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줘야 한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시간이 당연히 더디었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반복할수록 공부가 조금 더 되는 듯했지만 흥미는 점차 떨어졌고 스트레스는 쌓여갔다. 역시 칭찬은 중요하다.
아들도 해보라고 권했다. 한 번에 넘어가고, 발음이 좋으면 잘했다고 상대 캐릭터가 칭찬을 해준다. (excellent, very good...) 나는 가뭄에 콩 나듯 'very good'이다. 쳇, 사람 차별하고 있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건 배 아프고 샘이 난다. 그 상대가 아들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흐뭇했다. 오히려 더 많이 하라고 부추기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학습 진도 빼서 좋고, 아들은 재밌어서 신나 했다.
"쟤가 내 말은 잘 못 알아들어. 이것 좀 해줘"
"이 화면이 잘 안 넘어가네, 미션 클리어 좀 해주라"
"쟤가 나보고 I can kill you 래, 나 죽는 거야?"
(I can kill you 가 아니라 나중에 생각해보니 I can't hear you 인 것 같다. OTL)
아들은 재밌어했다. 한번 잡으면 진도가 팍팍~ 나간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 전부인 윤선생 영어공부를 하다 게임처럼 말하면서 퀴즈도 풀고, 미션을 완수하면 stage 가 하나씩 올라간다. 성장이 눈에 보이니 당연히 신날 수밖에 없다. 딱딱하고 지루한 공부도 이렇게 게임과 접목시키면 성공 확률이 높다. 왜 진작에 이렇게 안 만들었을까. 이런 재밌는 방식으로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처음에 책상에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열심히 미션 클리어 중이다.
조금 지나면 자세가 불량해진다. 책상 위에 두 다리가 올려지고, 발은 까딱까딱.
처음 초보단계는 참 쉬웠는데, 두어 달을 넘어가니 지문이 길어지고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와 난이도가 높아진다. 아들도 조금씩 호기심이 떨어지고, 나는 진작에 두 손 들었어서 토크리시(Talklish)와는 이별했다.
서너 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알아가는 건 희소성이 있어 가치는 높지만 부담스러운 구석이 있다. 뭔가를 깊이 파고드는 일도 희소가치는 높지만 복잡하고 공략하기 쉽지 않은 부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