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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an 02. 2018

(2일) 때밀이 2만 원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2017년 12월 31일 아침에 눈을 뜨니 다른 가족들은 아직 자고 있다. 한두 시간은 더 고요할 남자들을 남겨두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온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대중목욕탕에 다녀왔다. ‘한 해에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지’ 근사한 명분을 끼워 맞춰본다.


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행도 없어 혼자 들어갔다. 나처럼 혼자 온 이도 있지만, 가족단위가 많이 보였다. 대충 샤워를 하고 38도 되는 ‘이벤트 탕’에 먼저 들어간다. 예전엔 뜨거운 물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젠 ‘시원하다~’는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얼굴만 내밀고 노곤해지는 몸의 상태를 즐긴다. 뜨거운 물이 점점 따뜻하게 느껴진다. 탕을 옮길 차례다. 바로 옆에 있는 ‘열탕’으로 들어간다. 43도를 가리킨다. 좀 뜨겁지만, 역시 얼굴만 내밀고 몸을 모두 담근다. 온몸의 세포가 ‘차렷’ 자세로 모두 깨어난다. 안경을 안 써 희미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다. 혼자 때 미는 중년의 여인, 딸내미를 씻겨주는 엄마, 장난감으로 물장난치는 꼬맹이, 냉탕과 열탕에서 물을 퍼 나르며 노는 아이 다양하다. 오른쪽에 목욕탕 입구에는 때 밀어주는 사람이 보인다. 오늘은 손님이 둘이나 있다. 


벽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본다. 때밀이 2만 원, 마사지는 종류별로 가격대가 다르다. 때밀이를 돈 내고 받아본 적이 없다. 몸에 각질이 많은 지우개 수준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때밀이를 받다가 간지럼 타며 몸이 꼬일걸 상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또 한 번 받으면 계속 받아야 할 것 같아 망설여진다. 낯선 사람에게 내 몸을 맡긴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 이유가 제일 크다.


망상을 그만두고 이제 때를 밀 시간이다. 탕에서 나와 찜 해둔 자리로 돌아온다. 갑자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톡톡 건드리신다. 


“나는 이제 가니까, 여서 해요. 거기는 서이 왔어. 복작거릴 거여” 하신다. 


이심전심, 혼자 온 내가 짠했을까? 말을 걸어주고 배려를 해주신다. 내가 있는 자리는 엄마와 두 딸이 사용하던 자리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고 했다. 


자리를 옮기고서 있자니, 진짜로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엄마는 나보다 젊거나 또래로 보인다. 큰 딸은 제법 숙녀티가 난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되었을까. 앉자마자 본격적으로 때밀이가 시작된다. 큰 딸이 먼저다. 들리지는 않지만 모녀는 조곤조곤 대화를 한다. 아이의 기분은 좋아 보인다. 하루의 대부분을 동생에게 빼앗겼을 엄마다. 지금 시간만큼은 나를 봐주고 내 얘기를 들어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는 내 차지다. 큰 딸의 마음이 읽힌다. 


엄마 자신의 몸은 2만 원을 줘야 밀지만, 딸은 혼자 씻을 수 있는 나이어도 엄마가 도와준다. 팔, 다리, 몸통 온몸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나는 고작 내 몸 하나 미는데도 허기지는데, 딸1, 딸2, 자신까지 3인분의 때밀이는 대단해 보였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어른이 되면 자유와 독립이 생기는 대신, 의무와 책임도 주어진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철없던 시절이 가끔 그립다. 그리운 이유는 어른이 되면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가 싫어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 청소, 빨래, 설거지가 모두 내 역할로 할당되어 있다. 하면 본전이고, 안 하면 욕먹는 일이다. 어릴 땐 모두 엄마가 무료로 해주던 일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편하면 또 다른 사람의 불편이 있어야 한다. 

잠깐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금방 현실로 돌아온다. 그 귀찮고 수고스러운 일을 더 이상 젊지 않은 엄마가 대신해 주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옛날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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