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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ㄴㅈㅇ Sep 24. 2017

아버지란 존재는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저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솔직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누구라고 말해본 적도 없습니다. 몇 번의 용감한 시도가 있었지만 당신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저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른 지방에서 다니게 되어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점점 더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취업으로 꽤 힘들었을 때에는 엄마를 통해서 겨우 근황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고 싶던 회사에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수화기 너머로 한껏 취하신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아들. 좋은 곳에 취직하고 바르게 살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장남인 니가 우리 집안 자랑이라고. 니가 있어서 아빠는 참 든든하다고. 아버지의 취기를 빌려 우리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많이 나누었습니다.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후련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에게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전화기를 들고 있던 저는, 아버지에게 좋은 아들이자 자랑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당신이 누구라는 것을 말한 적이 없는 것처럼. 영원히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는 지하철 건너편 플랫폼처럼. 아버지와 저 사이에는 그 만큼의 거리가 존재했습니다.


  자라면서 이따금씩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이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같은 질문이 되었지만, 요 근래 들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나곤 하네요. 오늘은 제가 자라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가장의 이야기를 쓴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을 소개합니다.



‘American Dream'이라는 신기루

  

  20세기 초 미국에는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인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습니다. 서민이라면 누구나 'rags to riches(넝마에서 부자로)' 라는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슴에 품었고, 그들의 꿈이 이뤄지는 곳이 미국이라는 나라였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윌리도 본인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멋진 차, 좋은 집, 훌륭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밤 낫 없이 일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윌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것은 한 호텔에서 나이 든 세일즈맨인 데이브 싱글먼을 만나고부터입니다. 80 넘은 독거노인이 그 나이에도 전화 한 통으로 바이어들을 구워삶는 모습이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관을 정확하게 반영한 아메리칸 드림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윌리가 세일즈맨이 되고 나서 부터는 상황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그가 하워드에게 하소연하면서 말하듯 ‘존경과 우정과 감사가 있던 시절(96p)'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의 앞에는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요‘라고 말하는 고용주만 있을 뿐입니다.


  윌리는 자신의 모든 삶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고자 달려온 인물인데 반해 결승점에 도달한 그가 확인한 것은 참담한 현실이었습니다. 할부로 샀던 냉장고는 고장이 나서 그의 주급을 갈아먹었으며, 자동차는 폐차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가 교외에 집을 처음 샀을 땐 안락하고 편안한 집이었지만 할부금을 다 내어 갈 무렵의 집은 이미 너무 낡았고, 주위에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하면서 물질적인 풍요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임이 드러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했던것만 같았던 과거로 달아나려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윌리는 수령과 절정의 중간 거리에 좌초하여 메마른 추억 속에 버림받은 채, 방황하는 망령으로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세일즈맨의 죽음' 연극 중
윌리 : 헤이스팅스 냉장고라니, 들어나 봤어? 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고장 나기 전에 내 것으로 가져 봤으면 좋겠네! 만날 고물만 내 차지야! 막 자동차 할부가 끝나니 폐차 직전이지. 냉장고는 미친 듯이 벨트나 닳아 없애고 있어. 그런 물건들은 유효 기간을 정해 놓고 나오나 봐. 할부가 마침내 끝나면 물건도 생명이 끝나도록 말이야.   -86p


  하지만 저자는 ‘윌리’라는 캐릭터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비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품 구조상 찰리와 그의 아들 버나드의 성공이 윌리와 두 아들의 실패와 정확히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성실하게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며 윌리의 최근접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또한 저자는 찰리와 윌리의 대화를 통해 둘의 삶의 철학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는데, 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찰리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윌리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극 중 찰리가 주당 50달러를 주겠다고 하며 자신의 밑에서 일해보라고 권유를 하지만 윌리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찰리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끌어왔던 삶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싸메고 있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백기투항할 수 있는 용기가 윌리에겐 없었습니다.


  윌리는 분명 대단한 위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의 성(姓)인 로먼(lowman = 하층민, 서민)이 암시하듯, 조직의 말단에서 평생 일만 하다 방황을 거듭하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기루만 쫓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벤을 따라서 일확천금을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며 평생을 후회 속에 사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역만리의 외국인인 윌리의 삶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와닿는 이유는 오히려 그의 삶이 너무나도 어리석고, 평범하며, 후회스럽고 때로는 그 때문에 고통받는 우리사회 일반적인 가장의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요.


  윌리가 평생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리라는, 한 개인이 마주하는 비극적 현실이 극의 가장 초반부에 윌리에 의해서,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린다에 의해서 강조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인생일지도 모르겠네요.


윌리 : 집을 사려고 평생 일했어. 마침내 집이 생겼는데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요.   - 14p
린다 : 여보,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오늘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제 우리는 빚진 것도 없이 자유로운데. 자유롭다고요. 자유...   - 174p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팍팍한 현실에서, 어쩌면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윌리는 장남인 비프를 그의 꿈을 이루어 줄 대행인으로 여깁니다. 비프를 욕망 수행의 대행자로 삼는 것은 비프가 명문 대학에서 스카웃이 쇄도할 정도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였고 외모도 뛰어나 많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비프는 윌리에게 절망적 현실에 대한 커다란 위안이었고, 낙이었으며, 인기와 개성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그의 철학의 충실한 대리인이었기에 비프 그 자체가 윌리에게는 희망이자 아메리칸 드림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큰 희망을 걸었던 나머지 비틀어진 방식으로 가르치게 됩니다. 수학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낙제를 시킨다는 선생님의 말을 전하는 버나드에게 오히려 면박을 주거나, 비프가 공을 훔쳤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용기라고 부추기면서 절도하는 습관을 지니게 만듭니다. 나아가 벤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해 정상적이면서 일상적인 것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품게 만듭니다. 이처럼 자신을 우상화하도록 부추기면서 비프가 진정으로 성장하는데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극이 진행되면서 윌리의 우상화가 처절하게 깨지게 되며 내연녀와 밀회를 나누는 현장을 비프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윌리는 아이들에게 ‘바이어를 보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자신의 내연녀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윌리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윌리 : 나를 봐. 나는 바이어를 보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어. “윌리 로먼이 여기 왔네!” 그러면 알아서 모셔 가지.
비프 : 완전히 케이오시켰어요, 아빠?
윌리 : 프로비던스에서는 완전히 쓰러뜨렸고 보스턴에서는 죽여줬지   - 37p

윌리 : 음, 다음번 보스턴에 올 때 만나자고.
여자 : 줄도 안 서고 바이어들에게 들어가게 해 줄게.
윌리 :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며) 좋아. 그럼 엉덩이 떼셔!
여자 : (가볍게 윌리를 떄리고 소리 내 웃는다.) 자기는 진짜 죽여줘.   - 43p


  물론, 윌리가 실패한 노동자이자 가장임에는 틀림없지만, 어쩐지 저는 그에게 돌을 던지기가 힘듭니다. 윌리의 노력과 근면성의 대의명분은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34년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외길 인생의 회환을 린다에게 털어놓는 장면이나 하워드로부터 퇴사 권고를 받았을 때 비프에게 말하는 대사는 그가 자신보다 가족들을 더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비프가 버나드보다 앞서 나가길 바라는 윌리의 독백에서는 가슴 저리기까지 했습니다.


윌리 : 그래, 그래. 간다고! 굉장히 현명한 생각이지, 여보? 형님조차도 그렇다고 하시네. 가야 해. 안녕! 안녕! (춤추듯이 벤에게 다가간다.) 생각해 봐요! 보험사에서 우편이 오면 다시 버나드보다 앞서 가게 될 거에요!


  윌리가 성공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허황된 일확천금을 꿈꾸는 윌리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성실하게 일평생을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삶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형님을 따라 갔다면 좋은 기회가 한 번은 있었을 거야’, ‘만약 내가 그때 형님을 따라 알래스카에 갔다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지는 건데.’ 라며 말하는 윌리는 근면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평생을 바쳐온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에 와서야 후회하고 있습니다.


  윌리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는 벤의 결단성도, 찰리의 현실감각도, 싱글맨과 같은 인품도, 아버지와 같은 재주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윌리는 비록 그것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꿈을 꾸기로 선택합니다. 윌리의 선택에서 엿 볼 수 있는 것은 끔찍할 정도의 숭고함입니다. 무의미를 넘어 의미를 선택한 윌리는 자신의 삶을 방어하기 위해 살아 왔고 그의 꿈이 현실이 되도록 애썼습니다. 윌리는 비프에게 준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윌리는 비프에게 죽지 않는 환상, 다시 말해 행복의 가능성과도 같은 것을 주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자살은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치관을 가장 강하게 웅변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내 린다에게는 고통을, 비프에게는 그가 허황된 꿈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윌리를 비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총평 _ We can love


윌리 : 나는 과거에 이랬느니 저랬느니 하는 데는 관심 없다. 숲이 불타고 있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온 사방으로 산불이 번져 오고 있어. 난 오늘 해고되었다.   - 128p


  극의 종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윌리는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려 숲을 만들고 산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이켜 보니 그 숲이 모두 불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아들에게 항상 영웅이고 싶던 그는, 단 한 번도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프에게 진실을 말합니다. 자신의 깜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될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를 이렇게 만든, 내가 지켜온 숲을 불태우고 있는 방화범이 싱글먼인지, 벤이었는지 혹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였는지를 찾기보다 우선 어떻게든 불을 진압하고 한 그루의 나무라도, 희망이라도 살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설사 방화범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그렇게 망가진 원인을 그제야 찾았다고 하더라도 윌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삶 전체에 산불처럼 번져오는 참담함 앞에서 그에게 ‘더 현명한 대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사람일지언데, 세탁기나 자동차나 집이나 할부로 결제해왔던 그는 종국에는 자신의 목숨밖에 팔 것이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의 남은 목숨이 마지막 할부 결제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먹먹하고 씁쓸합니다. 어쩌면 내가 비프였더라도 윌리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국에 비프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듯,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덮고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저에게 윌리는, 아버지란 존재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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