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에서 들숨

2015 HABANA에서 그리는 소묘 #1 커피와 사람들

by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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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uz에 커피를 마시러 들르다.


50원의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앞사람들이 커피를 모두 마시고 다음 커피를 내리고 컵을 씻기까지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바리스타를 둘러싸고 다닥다닥 들러붙어 서서 그가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나눠주는 모습을 일제히 지켜보고 있다.

얼른 빈자리를 찾았으나 사람들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쳐서 분주하다.

그냥 맨 끝자리, 주로 음료를 사는 자리에 대충 서서 바리스타와 눈인사를 하다.

옆에 서 있던 흑인 청년은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코레아라고 말해주니 중국 여자는 어떻고 일본 여자는 어떻고 한국 여자는 좋을까 하며 뭔가 야한 이야기를 하는 듯해서 아예 못 알아듣는 척했다.

그는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에 넣으라고 놓여있는 설탕을 계속해서 손바닥에 조금씩 받아 털어 넣곤 했다.


바리스타는 자신이 손님을 바라볼 때 맨 오른쪽부터 항상 커피를 나눠준다.

잔은 열 개뿐.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한 번에 나오는 커피는 딱 8잔 분량.

한 번에 서빙되는 커피는 언제나 8잔이다.

그리고 재빠르게 에스프레소 하나를 다시 내려 두 잔의 커피를 만들어 주고

뜨거운 커피에 설탕을 넣고 저어 마시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본다.

다 마신 이들에게 돈을 받고 빈잔을 싱크대에 던지듯이 넣고

커피 찌꺼기를 비우고 새로 커피를 간다.

물로 대충 헹군 작은 컵 열 개를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밀려오는 사람들이 모두 공유하며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커다란 먹이를 두고 몰려있는 개미들의 공동 위가 떠오르는 광경이다.


맨 앞에 있던, 햇볕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긴 스카프를 덮고 있던 흑인 청년 앞에 잔 받침 다섯 개가 놓인다.

아마도 다섯 명 분의 커피를 미리 주문한 모양이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할아버지와 이가 하나도 없는 할머니가 거세게 항의를 한다.

청년 앞에 놓인 커피를 가지러 온 여자 친구는 할머니에게 큰 눈을 위아래로 뜨며 뭐라 대꾸를 하고 무시하는 듯 커피를 가지고 뒤의 노천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에게 가버린다.

할머니는 바리스타에게 항의해보지만 그저 어깨만 올렸다 내릴 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에도 줄 서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불만을 표시한다.

맨 끝에 서서 순서가 더욱 한참 뒤쳐져버린 나와 내게 말을 걸던 흑인만 그저 멀뚱하고 쳐다볼 뿐이다.


혹시 그 청년의 독점이 미웠는지, 아니면 애초에 그렇게 커피를 사려고 했었는지

조금 전까지 항의를 하던 할머니는 갑자기 플라스틱으로 된 500g짜리 아이스크림 통을 꺼내 든다.

그 통에 커피를 채워달라는 듯 돈을 꺼내 바리스타에게 건넨다.

그러자 그다음 차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탄식을 한다.

나와 내 옆자리의 흑인은 서로 잠깐 마주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체념해버린다.


노인들은 쿠바의 생성과 쇠락을 온 몸으로 경험한 이들이다.

그 젊은이들은 이제 막 맛본 지본의 달콤함에 젖어들기 시작한 이들이고.

아마도 기성세대들보다 무언가 돈벌이를 하고 있음이 입성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검소함과 공평함의 가치가 돈이라는 달콤함에 점점 변화하고 있다.

쿠바의 변화는 길거리에 제니퍼 로페즈의 매장이 들어서는 것에 있는가.

그 매장에 줄 서 있는 젊은이들의 신상을 향한 눈번뜩임.

그들을 착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노인들의 날숨.

그 괴리감에 같은 햇볕이 내리쪼이는 아바나의 묘한 공기, 그 안에 변화가 있는가.

흔히 말하듯 쿠바에 스타벅스가 들어서기 전에 가보자 라던가,

맥도날드가 들어서기 전에 그 모습을 보자 라던가,

과연 거기에 변화가 있는가.

쿠바 노인들의 복잡한 표정에는

아주 오랜만에 몰려올 새로운 변화에 대해

자본이 쿠바노를 얼마나 천박하게 이끌어갈 것이지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이 가져다줄지 모르는 윤택함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

그들이 이룬 가난한 평등이 잘못된 선택이었던가에 대한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두 순번이 더 돌고서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기다리느라 목은 점점 타들어가고

커피는 뜨겁고 진하고 너무나 향긋했지만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갈증이 더 심해졌다.

그 상태로 햇볕 아래 달궈진 거리로 나를 다시 내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