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HABANA에서 띄운 단상 #1
다시 수요일이 되었고 예전에 레미와 함께 갔던 La Gurta 클럽에 가다.
함께 가기로 했던 한국인은 오지 않았고
그냥 혼자 갔다.
입구에 몇몇 사람들이 서성이거나 앉아서 친구를 기다린다.
작년에 혼자 들어가려다가 혼자는 안된다고 해서 일행들과 함께 들어간 기억에 일행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다.
입구에 서 있으니 크고 마른 체형에 두꺼운 안경을 낀 흑인이 이쪽에 와서 앉으라고 한다.
대뜸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놀라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다고 자랑을.
그는 라파엘. 아.. 대체 친구 라파엘만 몇 명인 건지.. 브라질의 백인 라파엘, 멕시코의 라파.. 뭐 모르겠다.
그의 친구 서넛이 나타난다.
백인 피가 더 많이 섞인 다니엘. 많이 까분다.
가장 어리고 더 마른 물라토 데니스.
콜롬비아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난 이름이... 뭐더라 암튼 베다도에서 뭔가 상점에서 일한다던 흰 옷을 빼입은 친구.
혼자 왔냐고 해서 친구를 기다린다고 했다.
실은 레미와 파올라가 다니던 학원의 강사들을 기다리는 거였는데, 그들은 막연히 한국인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동양인만 지나가면 네 친구 아니냐며 가서 말을 붙인다.
안 오는 것 같다고 하니까 걱정 말라고 자기들과 함께 들어가서 놀자고 한다.
그런데 그들도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한 시간여 수다만 떨고 들어갈 생각을 안 한다.
몇몇의 엄청 풀 메이컵을 한 여자아이들이 오가면서 죄다 아는 척을 하고 그들에게 담배를 얻어간다.
모두 하나같이 같은 질문.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는다.
항상 그렇듯 전 남자 친구를 또 판다. (D군.. 매번 미안. 하지만 뭐 어때.. 지금쯤 인도양 어딘가 바닷속에서 행복한 다이빙 중일 테니~)
그럼 쿠바노 남자 친구는 없는거잖냐고 오늘 자기들 중에 한 명 고르란다.
어느새 옆에 와서 앉은 이마가 완벽한 원형을 그리고 있는 귀엽게 생긴 흑인 여자애가 계속 내 팔을 두들기면서
라파엘이 가장 크다고 알려준다.
난 큰 거 싫어. 나빠.라고 하니 그럼 다니엘이 제일 작단다.
데니스는 어때?
노노 난 됐어. 싫어. 원치 않아. 하는데 그 여자애는 내 말을 안 믿는다.
왜 내게 남자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건지..
그리고 그 아이는 그들을 전부 검증해보았다는 건지..
그들의 욕망에 대한 이해와 내 이해가 엇갈린다.
남자애들은 그들끼리 크기 비교에 신이 나서 셋 다 보여줄까? 고를래? 하며 신나게 웃는다.
비웃는 느낌은 아니고 배려는 감사하지만 이런 배려는 필요 없고..
내가 궁금한 건 그들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인데.
쿠바인들에게 성이란 마치 숨 쉬듯 아주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마치 리듬이 흐르면 몸이 움직이듯이..
춤은 숨이야.
라며 숨 쉬듯이 춤추기 원했던 나인데.
이들에겐 춤은 원래 존재하는 공기이고 사랑을 숨 쉬듯 나누는 것일까.
한참 그 얘기만 하다가 라파엘이 해변에서 사랑을 하는데 모래 때문에 여자가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온갖 모션을 다 동원해서 설명하고 다들 웃고.
나만 안 웃고.
뭔가 재미없어하는 듯 하니 자꾸 오늘의 남자 친구를 고르란다.
싫어. 난 나쁜 여자거든.
이 말이 안 먹힌다.
다들 어리둥절.
왜 자신을 스스로 나쁘다고 하는 걸까 이해를 못한다.
그러지 말고 자기랑 애인 하자며 다니엘이 까불어댄다.
어서 키스를 하라고 입술을 들이대서 손가락으로 튕겼더니
진짜 나쁜 여자네~ 하며 모두 웃는다.
데니스가 한국에서는 다 핸드폰 쓰지? 하고 묻는다.
내 핸드폰이 뭐냐고 묻는다.
오늘 안 갖고 나왔는데 아이폰이야 하니까
6야? 하고 눈이 똥그래져서 묻는다.
5야. 하니 그거 자기 달란다.
하하하
그냥 달란다.
나 또 사라고? 하니까 넌 6을 써.
알았어. 그럼 500 쿡 가져와.
아 너무 비싸. 그냥 선물해줘.
(말인가 막걸리인가 싶어서) 손사래를 치다.
데니스는 핸드폰이 없다.
손목시계를 차고 있길래 시간을 물어보니 다른 이에게 묻는다.
시계는 그냥 폼이었다. ㅎㅎㅎ
핸드폰이 없으면 일을 해서 하나 사. 나한테 LG 중고가 있어.
얼만데?
200 쿡.
히익~ 비싸.
난 없고 넌 있으니까 나한테 줘.
난 월급이 적고 넌 나보다 많이 버니까 나한테 돈을 줘. 1 쿡.
쿠바에서 정말 흔하게 듣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백분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복지가 그들과 같지 않은 곳에서 그들보다 백 배 이상의 월급을 받아도 살아가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설명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고.
이제는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그저 한마디만 한다.
노 뜨라바하, 노 디네로.
20년 전 노래로 부르던.
한 때는 슬로건이었던,
일 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실상은 자본가를 향해 외치는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었던
그저 그 말이 떠올랐었다.
쿠바노들이 구걸을 익히는 것은 정말 싫다.
그들도 이제 자본의 세계에 편입될 것이므로.
돈을 버는 여러 방법을 더 배워야 한다.
나이도 어리고 제일 어리둥절해하는 데니스의 손을 잡고 우리 춤추러 들어가자라고 하니
다니엘이 진짜 상처받은 표정으로
내 사랑, 어디가~ 이런다.
둘이 먼저 들어갈게 하고 입장하는 줄에 섰는데
데니스가 나더러 얼마 있냐고 묻는다.
입장료를 빌붙으려는 것.
그들은 지금 같이 입장료를 내 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다.
내가 가진 돈은 모두 4 쿡.
입장료는 3 쿡.
내가 1 쿡은 내줄 테니까 가서 2 쿡 가져오라고 말하다.
빛의 속도로 뛰어가더니 친구들에게 1 쿡짜리 동전 두 개를 받아온다.
쿠바노에게 앵벌이를 시키다니.
클럽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그득하다.
살사 학원 강사들, 그들이 데려온 제자들, 단체 관광객, 유러피언, 현지인, 노인들, 젊은 이들, 그냥 구경만 하러 온 몇몇 동양인들..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있다.
아는 얼굴을 찾아보려는데 어두운 클럽 안에서 그들의 얼굴엔 명암이 없다.
눈의 흰자위만 번뜩일 뿐.
찾는 것은 포기하다.
조금 한적한 곳에 서서 데니스와 춤을 추다.
이 친구 아직 박자를 제대로 맞출 줄 모른다.
리드도 서툴고.
할 줄 아는 패턴이 딱 세 개.
무엇보다,
아직 즐길 줄 모른다. 엄청나게 긴장을 했고.
평소 안 입던 옷인지 배기바지를 무척 불편해했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리드가 내게 잘 맞아떨어졌는지
뭔가가 이뤄진 듯한 표정으로 점점 기분 좋아한다.
그 서툰 모습이 귀여워서 계속 웃자 내가 뭔가 만족해하는 줄 알고 혼자 의기양양하다.
원으로 움직이게 여자를 계속 리드해야 하는데 스텝은 룸바 스텝을 밟으면서 계속 한자리에서만 춤을 춘다.
어느 틈에 클럽에 들어와 럼을 마시던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다른 친구가 옆에서 알려준다.
그러다가 내 손을 낚아채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하며 설명을 하다가.
내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너.. 왜 이렇게 빨리 돌아?’
쿠바에서 언제나 듣는 이야기...
아.. 난 턴스피드를 높이는 연습만....... 얼마나 했던가. 기억도 안 난다.
느리게 도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리듬과 안 맞을 수밖에.
신경 써서 슬로우 모션을 하듯 천천히 돌아 보인다.
그제야 만족하며 잘하네~ 한다.
그 날은 데니스의 새로운 패턴 연습 상대가 되었다.
그 후에 홀에 가서 더 추고
다른 아저씨들과 몇 곡을 더 추고
마치 보디가드처럼 주변을 맴도는 데니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 먼저 갈게.
놀라서 왜 벌써 가냐고 술도 안 마시고, 춤도 더 춰야 하는데.
난 약 먹는 게 있어서 술 안 마셔. 그리고 지금 갈 거야.
입구까지 따라 나온다. 집이 어디냐며 바래다준단다.
에스코트를 받으면 좋지만,
예전에 레미의 남자 친구인 치노가 먼저 가는 나를 위해 택시를 잡고 함께 숙소까지 데려다 주고 그 차로 돌아간 적은 있지만.
그는 학원 원장이었고 데니스는 그만큼 여유 있는 친구는 아니다.
괜찮다고 넌 여기 있으라고 하니 뺨에 베소를 준다.
순둥이 데니스가 본격적으로 세상과 담배를 배울 때 즈음엔
쿠바는 지금과는 또 다르게 변해있겠지.
다시 방문하는 나를 길이나 클럽에서 만나면
또 못 알아보겠지.
그들에겐 그저 스쳐가는 관광객 중 한 명일 뿐이고.
내겐 잠시 통성명을 한 쿠바노들 중 한 명일 뿐이고.
춤을 함께 춘 인연은 꽤 깊다고 나름 생각하는데
그들에겐 숨 쉬는 공기와도 같으니 그 의미는 다르다.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노곤함에 오랜만의 숙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