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5분 거리의 병원이 왜 이리도 춥고 멀게만 느껴지던지.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자 싸늘한 반응에 마음이 더 얼어붙었다. 랑이 구조 때와 마찬가지였다. 당황함을 가득 안고 병원에 들어선 구조자 앞에 내리 꽂히는 테크니션의 싸늘함은 얼음송곳처럼 예리했다. 잠시 나를 보던 그는 한숨을 푹 내려 쉬고는 원장에게 우리를 안내했다.
원장의 미간 또한 일그러졌다. 1년 전, 랑이의 수술을 맡아준 것은 참 고맙지만, 이러한 냉대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예전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화가 난 나는 그가 무언가 물을 새도 없이 줄줄이 설명을 이어갔다. 다친 아기 고양이를 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것을 시작으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혈액검사와 엑스레이만 찍어주길 원한다는 결론까지 얘기했다. 원장은 잠시 나가서 대기하라고 말한 후 아기 고양이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수분의 적막이 흐르고 그가 우릴 다시 불러들였다.
"좋지 않네요. 골반이 조각났어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의 방광이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부풀어 있다는 겁니다."
"그럼 어떡하죠?"
"저희 병원은 24시가 아니기 때문에 돌봐줄 수 없습니다."
안다. 당신들이 이 작은 생명체를 거부할 거라는 건 이 병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알았다고. 나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알아요. 처음부터 맡길 생각 없다고 했을 텐데요. 저희 애들이 가는 24시 병원으로 옮길 겁니다. 다만, 저녁 8시 이후에나 옮길 수 있는데 그때까지 방광이 버틸지만 알려주세요."
"뭐 그때까지 터지거나 할 정도는 아닙니다."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도 이러한 문전박대식 응대를 받아야 함에 화가 났다. 아이가 많이 아파서? 아니면 길고양이니까?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안고 병원비를 납부하려고 데스크 앞에 섰다. 테크니션이 말했다.
"길고양이니 병원비 할인했어요."
이런 식으로 응대할 거면 차라리 할인을 하지 말든지! 허름한 박스에 든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터벅터벅 병원을 나왔다. 혜주 님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저녁에 아이를 잘 옮겨 치료하겠다는 말 밖에는.
사무실로 돌아오자 병원과는 상반된 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아기 고양이가 든 박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들의 따듯한 마음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걱정거리는 여전했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마음속 어디선가 피어올랐다. 회사 1층 카페의 매니저인 소리 님이 아기 고양이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올라와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아직 못 정했어요."
"그럼 강이 어때요? 건강하라고 강이. 랑이랑 비슷하기도 하고 괜찮지 않아요?"
안 그래도 병원에서 이메일로 방사선 사진을 보내며 압축 파일명을 '고등어'라고 해둔 것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정했다. 강이. 너는 이제부터 강이다! 강이는 소리 님이 가져다준 불린 황태와 건사료를 조금 먹었고, 우리가 들여다볼 때마다 부지런히 하악, 하고 자기 방어를 했다. 아이의 힘 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외면하지 않은 나를 조금은 칭찬해 주고 싶어졌다.
'저녁까지만 기다려. 퇴근하면 말끔한 입원실로 옮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