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건 앤 아버, 텍사스 어스틴, 그리고 캘리포니아 얼바인
필자는 미시건주 앤아버에서 2년, 텍사스주 어스틴에서 2년을 거주했고, 그리고 가주 얼바인에서 2년+ 거주 중이다. 문득 찬바람이 불면서 앤아버 생각도 좀 나고 해서 세 도시에서의 경험 정리와 함께 미국 거주 자체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 Ann Arbor, MI: 아름다운 캠퍼스 타운
앤아버는 작은 시골 도시이다. 예전에 디트로이트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더불어서 같이 성장한 대학교 도시이다. 필자가 앤아버에 처음 갔을 때 한국 나이로 27살이었고,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한 때였다. 도시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도 경험하는 사람의 인생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27살 남자의 첫 자취처였다는 점을 감안하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장점 1: 초록이 무성한 환상적인 자연
아마도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 시간을 보내기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인 8년 정도 동안에 살면 가장 좋을 것 같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는데,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4계절이다. 대략 11월부터 4월까지는 눈이 왔던 것 같다. 어디를 가도 길가에 사슴도 많고, 스컹크도 많고, 반딧불도 많다. 정말 무공해 청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연이다.
장점 2: 당연하겠지만 저렴한 집값
https://www.redfin.com/MI/Ann-Arbor/2905-Corston-Rd-48105/unit-260/home/182537936
갓 지어서 따끈따끈한 콘도며 정원 딸린 하우스 등등 취향대로 골라 잡아도 평당 가격이 강남과 비교하면 25% 정도...? 그렇다고 환경이 안 좋으냐? 하면 아니다. 범죄도 없고 살기 좋은 동네이다. 기본적으로 캠퍼스 타운인지라 깨끗하고 조용하고, 날씨도 추워서 노숙자도 거의 없다. 또한 대학교 근처에 항상 렌트 수요가 있기 때문에, 투자용으로도 괜찮다.
장점 3: 친절한 사람들
예전 남북전쟁 시절에 남부에 속했던 주와 북부에 속했던 주들은 지금까지도 이미지가 확실히 다르다. 북부에 속했던 주들이 보다 인종적으로 다양하면서 차별이 없는 느낌이 있다. 그런 부분과 더불어 아름다운 시골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했다. 필자는 처음 미국에서 산 곳이 미시건이었어서,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확실히 캘리포니아로 오고 나니까 안 그러는 사람도 많은 것을 보면서 미시건이 시골은 시골이었구나 느낄 때가 많다.
단점 1: 너무 시골이고 대도시 접근성도 낮다
위에 서술했듯 앤아버가 디트로이트와 함께 성장한 도시였기에, 디트로이트가 몰락하면서 오갈 데 없는 섬같이 되어버렸다. 물론 디트로이트 공항은 여전히 델타가 허브로 쓰고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의외로 비행 편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살아가면서 즐길만한 대도시는 4시간 거리의 시카고가 유일하다. 물론 마찬가지로 5시간 거리의 토론토도 있지만, 그래도 국경이 있어서 자주 오가기는 불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근처에 대도시가 없는 작은 시골 도시라는 점이 큰 단점이다.
단점 2: 일조량 부족과 자비 없는 추위
미시건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 혼술을 안 하다가도 미시건에 살면서 혼술 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게 대학원 생활이 만든 것인지 미시건 날씨가 만든 것인지 확실히는 몰라도, 날씨도 확실히 한몫했을 것 같다. 겨울이 너무 길고, 겨울이 아닌 때에도 해가 쨍쨍이는 날이 많지는 않다. 여름에는 나름 덥고 따뜻하기도 한데 그 시간이 너무 짧다. 필자는 눈과 겨울을 좋아해서 미시건 날씨가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일조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상당히 괴로워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2.Austin, TX: 미국 남부의 상징
앤아버에서 2년 거주한 이후 어스틴으로 넘어와서 2년을 거주하였다. 무려 24시간 운전을 통해서! 어스틴은 젊고 역동적인 도시인만큼 장점과 단점이 상당히 분명했으나, 한국인인 필자의 관점에서 서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장점 1: 텍사스와 어스틴 모두 매우 매력적인 브랜드이다. 이들을 경험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역사가 짧은 미국엔 오리지널 문화 컨텐츠가 매우 적은 편이지만, 그 와중에 텍사스는 상당히 컨텐츠가 융성한 편이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실제 주인공인 크리스 카일도 텍사스 출신이고, 심지어 게임 the last of us의 주인공 조엘과 그의 딸 사라가 사는 집도 텍사스 어스틴이다.
미국 내의 식문화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스틴의 바베큐 문화가 빠지지 않고, LA의 코첼라와 더불어서 어스틴의 SXSW 역시 빠지지 않는 문화 컨텐츠이다. UT 역시 거대한 학교라서 미국 어딜 가도 동문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텍사스를 경험해보지 않고 미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고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실제로 주별 인구는 1위 캘리포니아 12%에 이어서 미국 전체 인구의 9%를 담당하며 미국 내 인구 2위인 주이다. 살아보진 않더라도 어스틴 여행 정도는 한 번 해 보는 게 미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장점 2: 도시라는 것은 감안했을 때 저렴한 물가
텍사스는 기름도 많이 나고 땅도 넓어서, 전체적으로 물가가 저렴하다. (참고: https://www.numbeo.com/cost-of-living/region_rankings_current.jsp?region=019)
위 사이트를 보면 뉴욕시를 100이라고 했을 때, 어스틴의 물가는 70밖에 되지 않는다. 렌트비를 고려하면 66으로 오히려 내려간다. 그만큼 렌트비도 저렴하고 물가도 저렴하다는 뜻이다. 앤아버와 비슷하거나 조금 싼 디트로이트의 물가가 74인 것을 고려해 보면 위에 적은 시골인 앤아버보다 물가가 저렴하다는 뜻이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현재에도 어스틴의 기름값은 평균 $2.7인데 반해 캘리포니아 얼바인은 $4.2이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어스틴 생활이 그립다 ㅎㅎ
장점 3: 엄청난 일조량과 친절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미국은 시골로 갈수록 사람들이 친절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어스틴은 도시이면서도 사람들이 상당히 친절했던 것 같다. 이건 그냥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 저렴함에서 오는 풍족함과 충분한 일조량에서 오는 것 아닌가 싶다. 너무 더워서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기름값도 싸고 전기값도 싸고 수도도 싸고 다 싸기 때문에 에어컨 비용 걱정도 없고 자동차 이용도 부담이 없다. 외출할 때 에어컨을 켜고 나가도 전기값이 엄청 저렴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인지, 혹자들이 말하는 southern hospitality의 전통 때문인지, 아무튼 사람들이 꽤 친절했던 것 같다. 물론, 미시건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인종차별을 처음 경험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곳은 없듯 어스틴 사람들 모두가 친절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비슷한 규모의 도시인 포틀랜드나 시애틀과 비교해 봤을 때 확실히 사람들이 밝고 친절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단점 1: 자비 없는 바퀴벌레 발견 빈도
(근거를 추가하고 싶지만 바퀴벌레 혐짤이 너무 많아서 차마 링크를 걸 수가 없다) 어스틴에 살면서 정말 괴로웠던 부분이 바퀴벌레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많다는 부분이었다. 그로서리에서 나가는데 앞에 걸어가던 모녀 중 딸의 등짝에 바퀴가 날아와서 앉은 사건도 있고, 집에서 마주친 몇 번의 경험 등으로 바퀴벌레 공포증이 생긴 시기이기도 하다. 이곳의 바퀴들은 서울처럼 검은색 집바퀴가 아니라 밤색 바퀴로 밖에 사는 동물이라 쉽게 컨트롤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참고로 서울의 바퀴가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라면 이곳의 바퀴는 엄지손가락 크기이다. 아무튼 날아다니는 바퀴가 득실득실한 도시라서... 모르고 살면 모르고 사는데 필자같이 걱정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다니면 정말 바퀴와 함께 사는 도시인 것을 알 수 있다 ㅎㅎ
단점 2: 서쪽은 사막 북쪽은 원주민 거주지 남쪽은 멕시코
공항으로 치면 댈러스 공항이 꽤 허브이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자동차로 운전해서는 댈러스, 휴스턴, 그리고 샌 안토니오 외에는 딱히 갈 곳이 없다. 10시간 운전해서 뉴 올리언스 정도 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자동차 여행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어스틴, 댈러스, 휴스턴, 샌 안토니오만 해도 충분한 컨텐츠들이 있어서 꼭 굳이 다른 델 가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로드트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단점 3: 동양인 문화는 많이 약하다.
텍사스 사람들의 텍부심이 매우 매우 강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재밌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 백인 외의 인종이나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좀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원래 멕시코였던 곳이기 때문에 멕시코는 제외하고, 한국, 태국, 베트남, 일본, 중국 등 미국 내 곳곳에 자리 잡은 동양 문화들이 텍사스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들도 별로 맛이 없고 옵션 자체가 많지도 않았다. 댈러스에는 꽤 발달한 한인타운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도시의 규모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동양 문화가 자리 잡을 틈이 없는 분위기이긴 하다.
3. Irvine, CA: 미국에서 한국인이 살기 가장 좋은 도시(라고 생각)
마지막으로 현재 거주 중인 캘리포니아 얼바인에 대해서 정리해본다. 중서부(미시건), 남부(텍사스)를 거쳐 서부(캘리포니아)에서 살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인종 구성이다. 앤아버는 동양인이 17% (캠퍼스 타운이라서 동양인이 많다), 어스틴은 8%인 것에 반해, 얼바인의 동양인은 전체의 43%를 차지한다. 바야흐로 미국 내 동양인의 도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68%를 차지하는 호놀룰루를 제외하면 미국 내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장단점은 무엇일까.
장점 1: 동양인들을 위한 도시. 그런데 품질이 좋은.
얼바인을 제외하고도 동양인 비중이 백인보다 높은 도시들, 소위 말해 한인타운이라고 불리는 동네들이 미국 곳곳에 있는데, 이들은 전체적으로 치안이나 조경 등 쾌적함 면에서 보통보다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부유한 상태에서 이주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얼바인은 예외인 것이, 신도시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인들이 많이 몰려 살아서 도시도 깨끗하고 살기에 쾌적하다. LA와 얼바인을 한국에 맞춰 비교하면 서울과 판교 같은 관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쾌적해서 치안이 좋은지 치안이 좋아서 쾌적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치안 역시 미국 내 최상위권이다. (참고: https://www.irvinestandard.com/2018/how-irvine-became-americas-safest-big-city/) 그렇다 보니, 아무 제약 없이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살 도시를 정해보라면 얼바인만 한 도시를 생각하기 힘들다.
장점 2: 도시다! 그런데 두 번째 티어인.
사실 이건 얼바인을 어디에 비교하느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얼바인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LA에 비해서는 할 게 없는 동네이고, 샌 디에고, 시애틀에 비해선 더 신문물이 범람하는 도시이다. 맛집이든 패션이든 뭐든, 뭐가 좀 핫하다 하면 일단 LA에 도입되고 그다음 얼바인(을 비롯한 오렌지 카운티)으로 흘러들어온다. 한국 관련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서 비비큐 치킨이 미국에 지점을 낸다고 하면, 우선 LA나 뉴욕에 1호점을 내고, 그다음 고려해보는 곳이 얼바인이다. 이 포스팅에서 중점을 두는 앤 아버, 오스틴과 비교하면 훨씬 훨씬 훠얼씬 트렌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장점 3: 물가는 비싸도 부동산은 아직 괜찮다
https://www.numbeo.com/cost-of-living/region_rankings_current.jsp?region=019
위에도 링크를 걸어놓은 이 페이지를 보면 뉴욕시를 기준으로 물가와 부동산비를 나눠서 지표로 정리해준다. 얼바인은 물가가 84이고 (뉴욕시의 84%라는 뜻) 부동산이 71이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을 살펴보면 얼바인에서는 신축 콘도 1500sqft을 아직은 $150만 이내로 구입이 가능하다. 비슷한 삶의 퀄리티를 가지는 북서쪽 LA에 비교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정확한 이유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캘리포니아 부동산을 좌지우지하는 큰손들이 바닷가를 선호해서 바닷가와 나름 거리가 있는 얼바인은 거품이 덜 낀 것이 아닌가 싶다.
단점 1: 미국인데 미국 것들이 약하다
한국과 비교해서 미국이 훌륭한 점이 무엇일까? 자유, 자연, 등등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미국 백인 문화 vs 동아시아 문화에서 오는 차이점을 주로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교육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게 조성되는 분위기라든지,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실용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분위기라든지... 그런데 얼바인은 한중일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느낌이 있다. 미국 치고 굉장히 경쟁도 치열하고 교육열도 강한 느낌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이런 게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은 교육보다 음식에서 그러하다(좀 생뚱맞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음식이 치즈버거, (뉴욕) 피자 정도일 텐데, 얼바인은 맛있는 버거 집도 없고 맛있는 피자집도 없다. 맛있는 딤섬집이나 맛있는 순두부 집은 있어도... 맛있는 베이글도 없고.. 아무튼 미국인데 미국을 느끼기 힘든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단점 2: 겨울을 원하는 사람은 지루할 수도?!
1년 내내 눈이 오질 않는다. 눈을 좋아한다든지, 4계절을 느끼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겨울에 추운 곳으로 놀러 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상으로 미국 세 도시에서 살아본 후기를 장단점으로 나눠서 정리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유익함이나 흥미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