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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a Dec 20. 2022

2022 카타르 월드컵 감상 후기

카타르 월드컵은 메시의 대관식으로 마무리되었다.

*

월드컵은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는 특수성 때문에 그 어떤 스포츠 이벤트보다 찐한 스토리를 지닌다. 그렇게 치면 올림픽도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하겠지만 그냥 필자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월드컵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4년에 한 번이라는 것이 왜 대단하냐면,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5번을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서 아주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 기량을 유지해야만 가능한 기록이기 때문에, 메시와 호날두를 비롯해서 여태껏 8명의 선수만 그것이 가능했다. 선수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한두 번, 많아야 세 번 정도 찾아오는 기회에 선수들이 투지를 불사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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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월드컵마다 다른 스토리가 있었던 것 같다.


1994 월드컵 때는 초딩이라 스페인전 무승부 후 경기가 끝난다는 점도 모르고 연장전을 기다렸고,

1998 월드컵은 끝나고 나서 나이지리아 오코차, 네덜란드 베르캄프 등을 위닝으로 즐겼다.

2002 월드컵 때는 경기가 끝나고 독서실로 향하면서 '와 나 진짜 모범생이다' 싶었고,

2006 월드컵 때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보느라 막상 경기가 잘 기억이 안 난다. 스위스전 끝나고 시청에서 동대문까지 걸었던 것도 생각난다.

2010 월드컵은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으로 집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2014는 처참했던 성적과는 대조되게 박사 어드미션 받은 이후라 마음이 가벼웠고,

2018은 처음 아내와 내 집에서 본 대회이고,

2022는 우리 딸내미와 같이 본 첫 월드컵이 되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어떤 형태로 어디에서 감상하게 될까? 지금 마음 같아서는 꽤 자란 아기와 함께 한국 경기가 있는 도시를 방문해서 직관하고 싶지만,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장담을 못 하겠다.


***

만약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시아 최종예선에서의 성적과 피파랭킹을 근거로 벤투는 성공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의 딜레마는 아시아에서는 양학을 잘해야 하고 월드컵에 가면 존버 후 역습을 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 동안 월드컵에서 사용할 전술을 연습할 수 없다. 아시아 예선에서 우리보다 전력이 약한 팀을 상대로 역습 전술을 구사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교과서적인 답은 "한국이 주도적인 축구를 하면서 우리보다 낮은 팀들은 야무지게 이기고, 월드컵에서 우리보다 강한 팀을 상대로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자"이다. 한국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것이 정답임을 알 것이다. 만약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시아에서 주도적으로 이겼어도 월드컵에서는 존버 후 역습을 해야 한다 쪽일 것이다. 그건 선택 가능한 영역이라고 본다만, 개인적으로 우리보다 전력이 낮은 팀을 잘 이기는 것도 역대 감독들이 쉽사리 해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만 잘했어도 이미 합격이었다고 생각한다. 월드컵 때만 축구를 열심히 보는 라이트 팬들은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둘 것이므로, 그러한 팬들도 만족시키려 노력해야겠지만, 그래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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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월드컵을 보면서 음바페가 떠오르고 메시와 호날두가 졌다는 생각을 했는데, 끝난 것이 끝이 아니었다. 비록 호날두는 말년에 많이 추해지면서 팬들을 잃어가고 있고 메시는 아름다운 대관식을 치름으로써 완전히 다른 레벨에 올라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날두가 주는 시사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항상 왕으로 살았고 왕으로 마무리한 메시보다, 왕의 자질은 아님에도 왕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 호날두의 삶에 더 마음이 많이 간다. 그렇게 무모하고 맹목적이고, 스스로의 최면에 사로잡혀야만 인간이 본인의 클래스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설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냥 클라스대로 사는 게 나도 좋고 주위 사람도 좋고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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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도 경제적으로 막장이고, 이란도 신정정치를 끝내겠다며 나라가 혼란스럽고, 한국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가나며 카메룬 등등의 32개국이 모여서 하나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니, 정말 축구는 매력적인 스포츠이다. 축구를 비롯해서 점점 스포츠의 인기가 시들해진다고 하는데, 앞으로 30년 후에 월드컵의 위상은 어떨까? 나이 든 사람만 즐기는 세계바둑축제 정도가 되려나... 부디 남은 생애 동안 축구의 인기가 유지돼서 메시를 뛰어넘는 인재도 보고 싶고, 지금처럼 이런저런 스토리로 몰입과 감동을 느끼고 싶다. 하나와도 같이 축구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즐거웠던 2022년 월드컵 후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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