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이제 막 젖을 뗀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걱정보다는 마냥 설레었다. 어두운 집에 이제 나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같은 것도 생겼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내 목 뒤에 올라가서 쿨쿨 잘도 잔 순하디 순한 아기 강아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아이를 엄마한테서 데리고 왔다. 젖을 떼자마자 6주 만에 데리고 왔으니. 내가 떠나고 자기 새끼를 얼마나 찾으러 다녔을까. 너무나 미안하다.
그런데 이 아기 강아지가 너무 꼬질꼬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엄마가 아기들을 핥아서 씻겨주지 않았다 했다. 찌린내가 진동해서 씻기기는 해야겠는데 집에 강아지 목욕 샴푸는 있을 리 없었고 난 고민하다가 내가 쓰던 샴푸를 살짝만 묻혀 애를 우선 씻겼다.
밥은 먹던 밥을 조금 얻어왔고 한국에서 아기 강아지를 키워봐서 대충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강아지가 새 집에 처음 입양된 날 엄마나 형제를 찾고 불안해서 밤새 끙끙거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시계를 수건 같은 거로 말아서 곁에 두면 엄마 심장 소리 같아서 아기 강아지한테 안정감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내 배게 위에서 원래 자던 거마냥 불안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아주 잘 잤다. 참 특이한 아이임에 틀림없었다.
‘태풍’이라고 이름을 계속 불러 봤는데 아무래도 얘랑 어울리지 않았다. 태풍은커녕 아침햇살 같이 밝고 예쁜 아이였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 아이의 이름을.
태양
애 이름 때문에 내가 빅뱅 팬인줄 아는 사람도 여럿 있었는데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혀 관계없고 난 빅뱅에 태양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이름 따라 자란다고 했던가. 정말 내가 지었지만 이름은 하나 잘 지었다.
우리 태양이.
누나가 데리고 오자마자 사람 샴푸로 목욕시켜서 미안해.
하루 기다렸다가 강아지 샴푸 사다가 씻겼어도 되는데.
미안해 누나가 그때는 모든 게 다 서툴었어.
그런데도 너는 처음부터 밝고 예쁘기만 했지.
너무 순하고 착한 아기 강아지였어.
거기다 눈치도 엄청 빠르고 똘방 졌지.
마치 누나 말을 다 알아듣는 거 같았어.
너를 데려온 그 첫날 보송보송한 너를 안고 자는데
누나는 너무 행복했어.
혼자일 때는 어둡고 차갑던 공기도
너랑 있으니 따뜻하고 밝은 거 같았어.
엄마 찾지 않고 처음 보는 내 옆에서도 잘 자줘서 너무 고마웠고
그 이후에도 너는 마치 내 삶의 원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잘 적응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
요즘에는 내가 아무리 크게 불러도 네가 못 듣는데
누나는 사실 너무 속상해.
머리로는 괜찮다 오히려 천둥 치고 그럴 때는 안 들리는 게 낫겠다 싶은데
사실은 부르면 멀리서도 촐랑대며 뛰어오던 네가 아직 눈에 선해서
내가 집에 들어가도 모르고 앉아있는 너를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
나이 먹는 건 당연한 거지.
늙으면 어쩔 수 없지.
나를 아무리 다독여 봐도 사실 누난
슬프고 속상해.
뭐든지 참견해야 하는 네가 요즘 얼마나 불안할까.
잠도 깊게 못 자고 자꾸 주변을 확인하는 너를
누나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그래도 태양아.
다 괜찮아. 네가 아프지만 않다면.
다른 건 누나가 더 노력하면 되니까.
누나가 방법을 찾을게.
아프지만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