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 전까지 눅눅하고 텁텁했던 공기가 확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건조하고 차가운 기운에 입술과 콧속이 바짝 말라 있다. 이맘때가 되면, 선생들은 마음이 번잡해진다.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해야 할 일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온다. 뭐든지 일일이 서류로 제출해야 한다. 1년 선생질에 대한 평가도 대비해야 한다. 중3 담임을 맡은 해라서 중학교 3년 생활 마무리하는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도 만만치 않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들과 학부모 상담부터 원서 작성까지 할 일이 쌓이기만 하고 줄지는 않는 때이다. 이런 때에 나는 또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나는 내년에 학교를 옮긴다.
명리학을 겉핥기로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나와 남편, 아이들의 여덟 글자(팔자)에는 역마가 많다는 말이었다. 나는, 명리학을 예언이나 점성으로 보지 않고 어떤 성향이나 내적 에너지에 대한 해석으로 배웠다.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많이 떠돌며 사는지, 그것이 불편하고 번거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웠는지…… 명리를 배우면서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한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라 그 지역에서 대학까지 다녔다. 그때까지 가장 멀리 여행한 곳이 고등학교 수학여행지인 제주였다. 우리 동네 가장 높은 산에 오를 때마다 그 시내를 내려다보며 '여기가 분지라서 답답한가?'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대학교 졸업식도 거르고 캐리어 하나를 싸 들고 서울로 갔다. 무계획의 계획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때, 남에게 신세를 져서 민망해하거나 매번 짐을 싸고 옮기며 고단해하기보다 공연히 해방감을 느끼며 좋아했다. 그러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미국에 가겠다면서, 연세어학당 강사 양성 코스를 다니기도 했다. 일단 가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한국어 강사 자격이라도 있어야겠다 싶었다. 사범대학을 나왔으니, 임용고시를 보고 선생이 될 것이라는 어른들의 기대는 피해 다녔다. 교생 실습할 때 만났던 선생님들의 생활은 심심하고 지루해 보였다.
나는 원래 끈기가 없어 뭐든 조금 하면 바로 지루해했다. 나이를 먹어도 모든 면에서 그 버릇이 여전한 것을 보면 이것도 명리학에서 말하는 역마 기운의 발현일까 싶다. 공부뿐 아니라 운동이나 어떤 취미 활동도 시작만 하고 그 끝을 보지 못한다. 내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이만하면 됐어'다. 남이 들으면 뭐 한 분야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처럼 말한다며, 아버지가 어이없어하시며 웃었다.
"아부지, 내가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거 전문가야."
"그건 그렇지. 뭐 새로 시작하는 거, 그거를 우리 딸내미가 참 끈기있게 하지.“
이렇게 끌리는 대로 옮겨 다니기만 하다가, 자궁암에 이어 위암까지 걸린 어머니와 갑자기 퇴직하게 된 아버지의 소원대로 임용고시를 보고, 정착한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졸업하고 5년을 마음대로 살아봤으니 잠잠해질 때도 된 시기였다. 그리고 3년 만에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으니 그야말로 안정감 있는 생활의 시작인가 싶었다. 하지만 나의 역마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1, 2년 새 이사를 서너 번하고 학교를 몇 번 옮겼다. 그 후에도 충북에서 경기도로 근무지와 거처를 옮기고 결국은 미국에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18개월 사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북아메리카를 헤집고 다녔다. 자동차와 텐트가 집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늘 꼬질꼬질한 몰골로 신나게 돌아다녔다. 도로 경찰에 걸릴 때마다 불법 체류자의 향기가 난다며 심한 검문을 당하기 일쑤였지만 그조차 즐겼다.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홍콩으로 두바이로 거의 10년을 나가 살다가 이제 돌아온 지 4년 되었지만, 돌아와서도 이사를 4번 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서 이제 각자의 역마를 감당하며 각각 떠돌고 남편도 자신의 역마 기운을 타고 다시 해외로 떠돌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17살이 되자 남들보다 일찍 내 곁을 떠났다. 같이 떠돌던 시절에 단련이 되어 괜찮은지, 다 낡은 캐리어를 끌고 들고 비포장도로를 두어 시간씩 걷는 아이들이 되었다. 이민 가방 잘 싸기를 특기란에 적어 넣는 딸도, 학기 중간에도 틈만 나면 야간버스를 타고 6, 7시간 걸리는 곳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들도 움직이는 일만큼은 익숙해진 듯하다.
이제 역마 기운은 여전한데, 장기 기능은 시원찮고 낡은 관절이 삐그덕대는 50대 아줌마가 홀로 살아갈 일이 문제다. 기운은 부족한데, 역마는 여전해서 새로운 것들을 좇아 다니며 뭔가를 시도하고, 학교 일만도 버거워하면서 교육청에서 뭐 새로운 사업이라도 함께 하자 연락이 오면 수업을 당겨서 해놓고 출장을 나선다. 먼 출장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학교에서 4년째 근무 중이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한 학교에서 5년이 되면 꼭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경기도 교사들은 한 지역에서 10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나는 아직 그 지역 만기가 남아있어서 지역 안에서 내가 가고 싶은 학교로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점을 쥐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아주 멀리 경기도의 남동쪽 끝, 죽산으로 간다. 내가 멀리 가고 싶은 이유는 내가 이 학교와 이 지역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이다. 4년이나 되었다. 친구나 동료들이 자꾸 묻는다. 왜 그렇게 멀리 가느냐, 시골일수록 학생들 가르치기도 힘들고 일도 많은데 괜찮겠냐.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떠돌고 싶은 이상한 본능 같은 것이 늘 안에서 꿈틀거린다.
"선생님, 다른 분들이 선생님 죽산으로 가시는 거 걱정들 많이 하시는데, 선생님은 어쩐지 설레어하시는 것 같아요."
맞은편 자리에 젊고 예쁜 선생님이 파티션 넘어 고개를 쏙 내밀고 내 표정을 읽었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환하게 그득해진다.
"어머, 그게 보였어요? 맞아요. 나 분위기가 전혀 다른, 새로운 동네로 가서 개고생할 것이 좀 기대돼. 나이가 있어 걱정도 되는데, 걱정하는 마음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커요. 우리 전 선생님이 내 마음을 알아주네. 나, 이 나이에 이 정도 도전은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