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은 마이 아파....

by 문득

강의 제목이 좋았다. 강의 제목을 보는 순간, ‘그래, 내 문장은 클리닉이 필요하지. 내 문장에 더 큰 병이 들기 전에 클리닉 수준에서 치료하고 깨끗하게 낫자.’ 다짐했다. 깨끗하게....

늘 그렇듯 다짐할 때는 비장하지만 정작 공부를 시작하려니, 퇴근 후 늘어지는 몸에 꾀가 나서 약속 시간에 달강해서 몸을 일으켰다. 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는 일은 문만 열면 되는 일이 아닌지라, 기계나 인터넷 상황에서 크고 작은 변수가 생기곤 한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강의가 시작된 지 2,3분 정도 지난 듯했다. 내가 입장하자, 순서는 바로 자기소개로 이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시작하는 강의를 떠올리며 ‘혹시 인사하는 시간이 있으면 국어 선생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해 두었던 터였다. 선생인데, 심지어 국어 선생인데 쓰는 문장 꼬라지가 비문임은 물론 비표준어와 비속어가 넘쳐나고 있으니 다른 건 몰라도 내 직업은 한국 교육의 위상을 생각해서 숨겨주어야겠다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탓하지 않은 늦은 입장에 스스로 계면쩍은 나머지 적잖이 당황해서 결국 버릇대로 직업부터 불쑥 말하는 자기소개를 하고 말았다.

‘아! 직업을 말하지 않고는 내 정체를 밝히기가 어려운 거니?’

스스로 탓하며, 본의 아니게 강의에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국어 교육계를 홀로 대표하며, 나로 인해 우리나라 국어 교사들의 위상을 구길 수 없다는 비장미를 두르게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국어 교사 대상 연수를 했을 때, 받아쓰기 시험에서 48점을 받은 그때의 아픔을 상기하며...

같이 공부하게 된 인연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모두, 이 강의를 듣게 된 사연(?)이나 동기가 밝혀지자 결국은 모두 무언가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보였다. 번역을 해서 우리말로 옮겨 쓰든, 출판을 하면서 쓰게 되든, 공부를 하면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며 쓰든, 문장을 써야 하고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문장을 쓰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비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비문을 피할 생각을 하면 쓰기가 어려워지니 처음부터 그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은) 씁니다.”

물론, 정확한 녹취록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듣고 정리했다.

그렇다. 나에게 필요한 말씀은 저거다. 듣자마자 내가 저 말을 들으려고 이 강의를 신청했구나 싶었다. 강의 신청 후에야 내가 강의를 신청한 이유를 찾았다.

내 문장은 많이 아프다. 오죽 아프면 클리닉을 보자마자 반가웠을까. 쓰고는 싶은데, 문장이 부끄러워 내놓지 못했고 내놓지 못하는 문장들은 사멸되거나 흩어지고, 그래서 결국 쓰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곤 했다. 그래도 마음에 문장이 차오르면 또 끄적이다, 아픈 문장들을 부끄러워하다가 내놓지 못하고 글들이 여기저기 내 비밀공간만 떠다니다 사라지면 다시 한동안 쓰기를 멈추기를 반복했다.

내 문장은 그 주인의 원대한 바람처럼, 김훈의 호방함이나 김소연의 논리적 섬세함 또는 신영복의 깊은 재치를 흉내 내는 수준이기는커녕 일단 말이 되는지를 살펴야 하는 지경이다. 그 원대한 바람과 종이에 내려앉는 내 문장의 현실 사이는 참 멀다. 그 원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원래 계획은 내 아픈 문장들을 클리닉을 통해 완치시킨 뒤, 멋지게 내 문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계획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어떤 문장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선생님이 알아주셨다. 클리닉 맞다. 좋은 처방은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한다.

내 문장은 아프더라도 세상에 태어나 살고 싶어 한다. 내 안에서 늘 고물고물 그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끔 소심하고 약한 나를 뚫고 올라와서 종이에 안착을 해도 내가 세상에 닿지 않게 꽁꽁 싸매 어둠에 가두어 둔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슬금슬금 삐져나오려고 용을 쓴다. 비문이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문장을 종이 위에 태어나게 하고 아프면 잘 들여다봐서 수술이 필요하면 적당하게 도려 내주고, 자주 살펴서 약 처방 정도로 좋아지면 그걸로 다시 건강하게 만들면서, 평소에 잦은 쓰기 연습으로 운동도 시키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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