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업데이트없이 막 사용한 어떤 소프트한 하드웨어의 낡아감

by 문득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굳은 몸이 삐그덕대며 간신히 펴진다. 저절로 ‘으악’ 소리가 터져 나온다. 날이 추워지면 더 심해진다. 가끔은 밤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려다 아파서 깨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 날은 두통이 종일 몸을 흔들어댄다. 타고나기를 살집이 넉넉해서 평생에 날씬한 적은 없었지만, 근력도 제법 있었고 나름 날렵했다. 돌도 씹어 먹을 만큼 건강했다. 그래서 내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몸의 옛말은 ‘뮈욤’이라고 한단다. ‘뮈다’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움직이다’라는 뜻이란다. 더 깊게 고어나 어원을 연구하는 학자들 말로는 사물이나 생물이 ‘안으로 움직이다’라는 뜻이라는데, 마음의 형태를 몸이라 하고 몸(뮈욤)은 마음이 키워낸 열매 또는 그 열매의 운동체계(박현, 나를 다시하는 동양학, 1999, 비나리)라고도 설명한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서 지금 내 몸이 이렇게 된 거지? 아니면, 내가 몸을 돌보지 않아 마음이 어렵나?


나는 씩씩해 보이고 싶어 한다. 불안해하거나 외로움을 타는 것을 씩씩함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 명작동화’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일본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따라 부르다가 그 노랫말이 내면화된 것인지, 어쩌다 내 마음이 그 길로 걷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부쩍 외롭고 불안해진 지 3년 되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때는 오히려 괜찮았다. 내 나라, 내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도 나는 끝없이 흔들리고 외로워하면서 지쳐갔다. 아이들이 나를 떠나는 과정도 떠나 있는 상황에서도 걱정거리가 넘쳐났다. 매 순간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빠르게 닥쳐오고 미쳐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사이 무언가 할 일을 놓치고 있다며 불안했다. 내 일도, 아이들이 내 도움을 필요하다고 하는 일도, 집안일도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죄다 게으른 내 탓인 것 같았다. 세상이 무척 빠른 속도로 내 주위를 뱅뱅 돌았다. 새로운 곳, 새로운 것에 민첩하게 잘 적응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건 옛말이 되었다, 불과 3년 만에.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난 자리에 외로움을 두고 살게 되었다. 살면서 잘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은 그래서 더 낯설고, 어지간해서 친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외로움이 들어서지 못하게 정신없이 일을 그 자리에 채워 넣었다. 일이 없으면 아무 영상이나 소리를 채우기도 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으로 내 외로움을 가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내 외로웠다.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한참씩 떨어도 외로웠다.

그렇게 불안하고 외로워지면서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피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몸도 돌보지 않았다. 춤을 추는 순간, 음악과 몸이 하나 되는 느낌도 시들해져 그렇게 좋아하던 춤도 그만두었다. 아무 때나 아무거를 빨리 해치우듯 먹고 몇 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가 갑작스럽게 무리한 노동을 했다. 내 몸은 그 주인의 무심함에 지치고 낡아왔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든 ‘늙어가는 중’으로 설명했다.

나는 늘 아이들의 살냄새를 맡고 싶고 서로 비비대며 살고 싶다. 그걸 못해서 너무 헛헛하다. 외롭다. 아이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해서 홀로 어려워하거나 내 도움이 닿지 않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하다. 이 마음을 모르는 척하고, 되려 씩씩한 척하느라 마음이 지쳤고 몸이 같이 늘어졌다. 외로움과 불안을 알아만 줘도 제법 개운해진다. 고집스러운 내 마음들은 내가 알아봐 주기 전에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알아봐 줘도 떠나지 않는다. 그냥 데리고 살 결심을 하면 그것들이 괜찮다며 도로 나를 위로한다.

몸은 움직임으로써 그 정체가 완성된다. 내가 지금 씩씩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들고 몸을 움직이러 나가자. 찬찬히 들여다보니 들고 나가지 못할 만큼 무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내 뮈욤을 뮈자. 내 삶의 리듬을 도로 찾아오자. ‘뮈~’라고 입 안에서 작게 소리를 내보니 무언가 또르륵 굴러간다. 가만히 잘게 무언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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