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낸 건 감자껍질이지만, 어쩌면 내 마음의 겉껍질이었는지도
[1부] 1화. 감자 껍질 벗기며, 요리를 시작하다
- 벗겨낸 건 감자 껍질이지만, 어쩌면 내 마음의 겉껍질이었는지도
고요한 주방에서
오랜만에 식재료와 칼을 손에 쥐었다.
워킹맘으로 지내며
오래도록 비워두었던 주방 앞에 서니
낯설고도 어색한 마음이 밀려온다.
그동안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어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어졌다.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장 빠르게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상대가 나 자신일지라도 말이다.
첫 도전은 감자였다.
마트에서 사온 감자 몇 알을
물에 담가 흙을 씻고,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겨보기로 했다.
내가 감자를 씻은 날,
내 손끝은 도구 앞에서 낯설어하며 떨렸다.
식칼을 쥐는 일조차 상대방을 불안하게 해서
누군가는 내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왜 아무도 ‘처음’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둥글둥글한 감자의 껍질을 벗겨내며
내 마음도 한 꺼풀씩 벗겨졌다.
요리를 하며 나는, 나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무 세게해서도 안 되고,
너무 살살해서도 안 되며,
정확한 각도와 속도, 그리고 세기가 필요했다.
감자 껍질 하나를 벗기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감자 껍질 하나를 벗기는 일조차
요령과 요리 감각이 없는 나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어쩌면 하나의 도전이었다.
어떻게든 껍질은 벗겨지겠지만,
얼마나 깔끔하게, 얼마나 정성껏,
얼마나의 시간을 들여 할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요리에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더욱 기본기가 중요하다.
감자 하나를 씻고 껍질을 벗겼을 뿐인데 오늘 하루, 내가 해낸 작은 성취에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아직 능숙하게 요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 마음이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능숙하고 부드럽게 썰고,
레시피 없이도 따뜻하고 맛있게 끓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요리를 시작하는 이 마음도
누군가의 삶에는 레시피가 될 수 있을까.
오늘 나는 그 마음을 담아,
요리하고 싶은 초보의 삶을 기록해본다.
'벗겨낸 건 감자 껍질이지만, 어쩌면 내 마음의 겉껍질이었는지도'
수북이 쌓인 감자껍질, 그만큼 나도 조금은 자란 것 같았다.
작은 껍질 하나하나가, 오늘의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Part 1. 도마 위 첫 이야기: 처음의 주방
[1부] 1화 fin.
《요리 초보 엘리의 고군분투 도전기》
[다음화 예고]
Part 1. 도마 위 첫 이야기: 처음의 주방
[1부] 2화. 칼 앞에 선다는 것, 그 작은 용기 - 초심자의 마음으로 도마 앞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