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3화. 알록달록 모양을 가진 재료 썰기

도마 위에서 배우는 행복의 모양들: 반달처럼, 동그랗게 마음을 썰다

by 기록하는 엘리

Part 1. 도마 위 첫 이야기: 처음의 주방

[1부] 3화. 알록달록 모양을 가진 재료 썰기, 행복의 모양들

- 도마 위에서 배우는 행복의 모양들: 반 반달처럼, 동그랗게 마음을 썰다




도마 위에서 배우는 행복의 모양들: 반달처럼, 동그랗게 마음을 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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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썰기’에 도전했다.

감자 껍질을 벗겨내던 날처럼, 일단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당근을 씼어보았다.


흐르는 물줄기에 흙당근을 깨끗하게 씼고 감자칼로 당근을 슥슥 벗겨내자,

선명하고도 예쁜 주황빛 당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료 손질은 요리를 하기 전 단계로 그래도 종종 해보던 일이라 낯설지 않았다.

자신감 있게 재료를 빠르게 준비해보며, 결심을 굳히듯이 도마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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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 칼을 잡은 나의 손끝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했다.

칼 잡는 법부터 바꾸어야하는데, 제대로 칼 잡는 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기만 하다.


조리하는데 오래걸리면 어떠하리, 나에게는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있다.

쫓기지 않고 하나씩 하다보면 오늘 안에 요리는 가능하리라 믿으며 칼질을 시작해본다.

오늘은 꼬마 손님까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의 칼질을 바라본다.

초심자이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숙련된 일류 쉐프마냥 정갈하고 정교한 몸짓을 흉내내었다.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이를 향해

"봐, 엄마도 요리한다~! 엄마 요리 잘하지?" 하며 어깨를 으쓱대자,

아이도 "응 엄마 요리 잘한다~"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고,

세상 날아갈듯한 기분을 느꼈다.


언젠가 아이에게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실현되는 것이 오늘이라는 생각에 내 마음도 같이 들뜨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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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딸 뽀송이의 모습 - 엄마가 자른 당근을 먹어보는 뽀송이(좌), 칼질을 기다리는 동안 요구르트 먹는 뽀송이(우)

엄마가 심혈을 기울이며 썰은 당근을 맛있게 먹는 딸을 보니

새삼 요리하는 엄마가 되었구나 뿌듯해졌다.


아직 거창한 요리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그 준비과정을 딸과 함께하며

나만 바라보고 있는 이 작은 존재를 위해 썰기만 했는데도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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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모양으로만 길쭉하게 썰고있던 나에게 5살 딸 뽀송이가 말을 건넸다.

"엄마, 길쭉한 모양 말고 이번에는 난 동그란 모양이면 좋겠어."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썰어주면, 아이가 더 흥미를 보이겠구나 싶어

동그란 모양, 반달 모양, 길쭉한 모양 등등 다양한 모양으로 썰어주었다.


빨리 재료를 손질하려던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는 썰기 자체에서도 흥미를 느끼며,

잘린 모양에도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을 아이는 놀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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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모양을 만들어본다.

둥글게, 얇게, 세모나게, 그리고 반달 모양까지.

하나씩 썰어가다 보니, 그 작은 조각들이 마치 미술 시간에 자른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하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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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모양으로 썰어준 당근을 딸 뽀송이가 보더니,

"우와~! 나 통에 담을래"라며 통을 잔뜩 가져온다.


당근을 모양별로 분류하여 자신이 가져온 통에 나누어 담아야한다고 이야기하며,

칼질을 하며 내가 썰어주자마자 아이는 썰린 당근을 모양별로 분류하며, 자신이 원하는 통에다가 직접 당근을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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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모양은 지난 번에 보았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원하는 모양이기에 좋아했다.

이번에는 잘 보지 못했던, 반달썰기도 하여 변화를 주어보았다.


반달썰기한 당근을 보더니, 뽀송이는 옆에서 “이건 반달! 이건 토끼 귀 같아!” 하며 즐거워한다.

썰어놓은 당근을 종류별로 분류해 통에 담으며, 자기만의 질서를 세워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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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동그라미 통! 이건 반달 통!”


아이는 토끼에게 당근 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토끼에게 주는 당근만큼 딸 뽀송이도 당근을 먹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이사 전에는 매일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토끼를 만나 먹이를 주면서 토끼를 좋아했는데,

아직까지도 딸 뽀송이는 생당근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통에 넣을 당근 재료를 아직 썰고있는 동안,

모양 종류별로 여러 가지 통에 담은 생당근을 엄마 몰래 집어먹는 뽀송이의 입가에는 주황빛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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웍에 당근을 투하하는 순간, 지글지글 소리가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오늘 하루의 수고를 칭찬해주는 박수소리 같다.

처음에는 두렵기만 했던 칼질이었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조금씩 ‘요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토끼에게 당근을 나누어주는 마음처럼,
뽀송이와 함께 나눈 이 작은 주황빛 하루는 내게 또 하나의 성취였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했다.
모양을 갖추는 일은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을 담는 과정이 아닐까.


오늘의 당근 썰기 연습은,
요리 초보 엘리가 ‘손끝으로 마음을 다듬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Part 1. 도마 위 첫 이야기: 처음의 주방

[1부] 3화 fin.

《요리 초보 엘리의 고군분투 도전기》

[다음화 예고]
Part 1. 도마 위 첫 이야기: 처음의 주방
[1부] 4화. 볶음이라는 이름의 화합 - 불 위에서 피어나는 향, 요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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