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거주지가 자주 바뀌었던 나의 집]
어린시절 나의 거주지는 종종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낯가림이 없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다. 생판 모르는 남일지라도, 나이와 성별이 다를 지라도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어서 친근하게 대화를 건네고는 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3년, 경상북도 구미시와 칠곡군에서 2년, 3년, 2년 단위로 3군데에 거주했다. 그러다 2002년,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여름날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왔다. 경상북도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가니, 다들 서울간다며 손을 흔들며 아쉬워하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만남은 짧았지만, 기억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친구들과 연락되지 못하는게 아쉽기도 하다. 오래도록 함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했다면 함께 더 많은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을텐데.
아쉽지만, 그렇다고 어딘가에서 잘 지내겠지라며 종종 경상북도 출신이거나 경기도 용인, 경기도 분당/죽전/수지, 경기도 동탄, 인천광역시, 경기도 안양/평촌/의왕/군포,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독산 근처가 집이고 그곳에서 자랐다는 친구, 선후배, 회사 직장동료, 직장 선임/책임님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몇년도 언제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경기도 분당에서는 5년을 거주하고,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는 10년을 거주했다. (부모님은 17년 거주)
대학교/대학원에 가고, 회사에 취업을 하고, 자취를 하고, 신혼집에 거주하고, 아이를 낳고 이사를 또 반복하며 계속해서 거주지가 이동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이사 계획이 있으니 어쩌면 내가 자주 이사를 다녔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추억할 장소가 많아지는 것 같다.
이처럼 내가 자라나고 지내온 동네가 많아서일까. 나와 같거나 멀지 않은 곳에 거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세 대화의 물꼬를 트고, 친근하게 동네사람마냥 대화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고는 한다.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한다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인연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과거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우리가 지금 다시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달맞이꽃이 참 예뻤던 강변의 동네의 풍경]
주로 뛰어다니며 놀던 유년시절과 초등학교 시절이 드문드문 기억나고는 한다. 교실 바닥에서 했던 공기놀이와 반짝이는 구슬, 색깔이 변하는 반지, 문구점에서의 불량식품들, 육교나 횡단보도를 건너 등하원 했던 기억들, 친구네 집을 놀러가거나 마당에서 실컷 뛰어놀던 옛날의 추억들, 시골 할머니네서 보물찾기를 하겠다며 그림을 그려가며 나만의 보물지도를 만들던 기억도 모두 추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과 쪽지나 편지, 교환일기를 쓰며 매일 주고 받는 것을 좋아했다. 반복되는 매일이지만 조금씩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친구마다 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진정한 우정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소울메이트(soulmate),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 일명 베프), 단짝친구를 만들고 싶어 상대에게 진심을 다해 대하였다.
내가 전학을 왔던 만큼 전학을 가는 친구들도 가끔 있었다. 내가 전학을 가면서 이별 선물을 주던 친구를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꽤 고급스러운 나뭇잎이 그려진 하얀색 프레임 액자를 선물 받았는데,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생각해주던 마음이 고마워서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학교까지 꽤 멀어 등하교를 버스를 타고 하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도 1시간 남짓 걸렸던 기억도 떠오른다. 눈이 많이 오던 날에는 등교를 못하던 날도 있었다.
낙동강에는 커다란 방파제가 많았고, 강변에는 달맞이꽃이 피어있었다. 주말농장을 하였어서 체험을 했던 기억도 기억에 남아있다. 아직도 그때 보았던 달맞이꽃이 생각나고는 한다. 어딜가면 달맞이꽃을 볼 수 있을까.
[어린시절의 경험들]
수도권 도심지가 아니여서 교육열은 덜할 것 같았지만, 의외로 초등학생 때 이전부터 사교육 열풍이 있었다. 영어 웅변대회를 나가기 위해 친구를 우리집 차에 태워서 같이 대회에 나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면, 나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고 한다. 동네 피아노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고는 한다. 사과 동그라미에 표시나 색칠을 해가면서 반복해서 연습을 했는데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대충’하지를 못했다.
그시절 필수였던 태권도도 다녔는데, 또래에 비해 사교육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몸과 마음 깊이 남고, 정서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수영 학원도 다녔었는데 YMCA 아기스포츠단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학원을 마치면 친구 집에 가거나 놀이터에서 놀았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낮이였지만, 고학년 때부터는 놀려고 하면 깜깜한 밤이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도 자기전에 윤선생 영어듣기 테이프를 하고 자야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파닉스를 배우며 카세트 테이프를 계속 반복 청취했었다.
어쩌면 1990년대, 2000년대 그 시절에도 지금과는 그리 다르지 않게 당시에도 교육열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스포츠댄스를 하기도 했고,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워드 자격증반에 들어가서 워드 3급, 워드 2급을 취득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종종 놀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모래 놀이터가 많았고, 타이어가 모래에 박혀있어 그걸 타기도 하고, 모래성을 만들기도 했다.
[집 초대하는 문화 속에서의 일화들]
친구 집에 초대받거나, 우리 집에 초대하는 문화도 많이 있었는데, 어떤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었다.
친구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기로 하고 집에 친구 부모님이 계시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공무원이셨는데 6시도 안되어 집에 계셨고(5시쯤이었던 것 같다.), 6시도 안되어 저녁 밥을 먹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면 집집마다 밥먹는 시간대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함을 느꼈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는 나만의 침대와 방을 소유하고 있었고, 애착 물건은 책상에서 지우개 가루가 발생하면 '핸드형 청소기'를 이용해 쉽게 청소를 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친구와 함께 공중전화를 썼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였는데, 대화는 잘 통하지만 마음에 상처가 많고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해 하면서 엄마, 아빠에게 각각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목소리를 옆에서 기다리며 들어주고 있을 때 이혼은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눈치를 보면서 양쪽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한편, 인터넷과 티비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포켓몬과 디지몬 어드벤처, 각종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자라났고, 버디버디 인터넷을 하던 친구의 영향을 받아 나도 버디버디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게임 속 세상에서 만나기로 약속해서 게임을 켜고 계속 기다렸던 때도 있었다.
친한 친구 집에서 김치볶음밥을 해먹던 기억이 난다. 1층에 위치한 친구 집에 종종 놀러가고는 했다. 층을 올라가지 않아도 되서 편하기도 했고, 1층에는 나름대로 특별한 메리트가 있는 집이기도 했다. 1층 집들은 화단에 식물들이 예쁘게 심어져있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특별히 테라스가 가꾸어져있었다.
어떤 부자 친구의 집은 50평대 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전실이 엄청 길어서 으리으리한 규모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초등학생인 어린 나이에도 아파트 '평'에 대해 알게 되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대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보다 잘 사는 친구들의 집에 마냥 부럽다기 보다는 견문이 넓어지기도해 나와 모두 똑같은 집에 사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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