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내 영혼의 지도를 넓혀준 사람: 나를 확장시킨 친구에 대하여
[관계라는 이름의 모자이크]
우리는 누구나 홀로 태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의 내면은 살아가며 만난 수많은 사람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 같다. 누군가에게서 배운 말투, 어떤 이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던 가치관, 그리고 소중한 친구와 나누었던 감정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
내 인생이라는 도화지 위에 가장 선명하고 굵은 색채를 남긴 반짝이는 조각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나의 20년 지기 단짝 친구일 것이다. 오늘 나는 내 삶의 가장 오래된 씨앗이자, 나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게 한 그 인연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겨보려 한다. 자서전의 여섯 번째 페이지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쪽지와 손편지, '기록하는 나'를 만든 가장 오래된 씨앗]
친구와의 만남은 같은 반이 되던 새학기에 "옆자리에 같이 앉아도 될까?" 라며, 용기를 가지고서 건넨 한 마디로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하교길에 매일 서로 기다렸다가 같이 걸어오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자식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친구와 함께 과외를 받기도 했고, 함께 방학기간 어학연수를 같이 다녀오기도 하던 마음이 잘 맞는 ‘친구’ 사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주 특별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학업과 성적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손으로 주고받던 쪽지와 손편지로 인해 더 소소한 추억을 공유하였기에 더욱 특별한 친구사이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종이에 글로 쓰고, 그림을 그리면 특별해진다. 그림으로 마음을 그리고, 글로 마음을 쓰면서 순간을 기록하던 것들이 어느덧 추억이 되었다. 20여년이 흘렀지만, 당시의 추억물들을 보는 순간, 당시의 내 마음과 감정을 기록하면서 어린시절 잊고 있던 감정들과 당시의 상황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주었다.
학업에 치여 숨이 가쁠 때도, 진로에 대한 막막함으로 가슴이 답답할 때도 우리는 서로에게 쓰는 글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책상 밑으로 오갔던 꼬깃꼬깃한 쪽지들,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어도 "그냥 쓰고 싶은 날" 주고받았던 빼곡한 손편지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했던 것들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 때, 종이에 글과 그림을 그리며 당시의 마음들을 온전히 종이에 담아냈다. 친구에게 전하는 마음을 써내려간 것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독백이기도 했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진심을 적어내려가며,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갔다.
편지 봉투를 열 때의 설렘, 상대방의 필체를 보며 느껴지는 안도감, 그리고 내 마음을 종이 위에 옮기며 다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고자하는 의지를 불태우며 사소한 것의 행복을 느끼고는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바로 그 그 시간이 바로 내 글쓰기의 원형이었다. 사소한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내고, 나의 감정을 단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습관은 어린시절 친구들과의 교환일기, 독서실과 학교 쉬는시간에 전달해주던 쪽지, 손편지들 속에서 싹을 틔웠다.
[닮아간다는 것, 그리고 나를 발견한다는 것]
지금 내가 자서전을 쓰며 삶을 반추할 수 있는 힘, 매 순간을 기록하며 나를 디자인해 나가는 주도적인 태도는 모두 그 시절 친구와 나누었던 조용한 기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친구는 나의 첫 번째 독자였던 셈이다. 서로의 문장과 문장 속에서 자라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토닥이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매우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내가 정해놓은 정답,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 세상이 규정하는 '착한 아이'의 틀을 벗어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친구도 겉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선하고 착한 친구였지만, 하지만 친구는 내면은 마냥 착하기보다는 훨씬 더 깊은 생각을 가졌고, 굉장히 차분하고도 객관적인 어른의 모습이어서 어른인척 하는 앳된 나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깜짝놀라기도 했다.
확고한 자신만의 길을 꿈꾸고 있었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이 분명했다. 공부도 잘하는 멋진 친구였는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나 많은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똑똑한 학생들이 나아가고자하는 정해진 길보다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샛길에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을 줄 아는 용기있는 아이였다. 친구가 읽던 만화책, 친구가 좋아하는 생소한 음악,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멋지다고 생각하며, 동경했다.
친구는 편지를 통해 나에게 '의문'을 갖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용기, 남들이 모두 “예스(YES)”라고 말할 때 나만의 “아니오(NO)”를 품을 수 있는 단단한 자아. 나는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내 마음이 진짜로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내 인생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밋밋하고 무색무취한 어른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취향을 닮아가는 수준을 넘어선다.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의 눈을 빌려 세상을 다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오는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하고 선물 같은 인연인 것이다.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나는 친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친구가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웃어넘길 때, 나는 자책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친구가 고양이와 같은 귀여운 동물이나 연탄재와 같이 타인의 따뜻한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작고 소소한 일상들을 들려주며 매일매일 일상을 들려줄 때, 나는 그저 공부만하며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것 보다는 어린시절의 감성을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감의 근육을 키웠다. 우리가 바쁜 학업 속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글쓰고, 그림 그리며 나누었던 어느 누구보다 진지했던 고민들은, 지금의 내 가치관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가 되었다.
신기한 점은, 친구를 닮아가면 갈수록 오히려 나는 '가장 나다운 모습'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친구는 나의 거울이었다. 내가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친구구는 나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주었고 그것을 밖으로 꺼내놓으라고 나를 믿어주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응원해주어 고마웠다.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이 부족한 나를 “넌 마르고, 총명하고, 노력파이며, 타인과 정답게 이야기 할 줄 알고, 컴퓨터도 잘하는 친근하고 귀여운 친구야.”라며 말해주던 친구의 문장은 훗날 내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어쩌면, 영향력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서로의 내면에 숨어 있던 씨앗에 물을 주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 덕분에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색깔이 숨어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비로소 나라는 도화지에 나만의 색을 칠할 용기를 얻었다.
[진통, 성장을 위한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
물론 모든 영향력이 달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깊게 유착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충돌과 상처를 동반한다. 서로의 세계가 너무도 가깝게 맞닿아 있었기에, 작은 오해나 가치관의 차이는 때로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서로를 찔렀다.
그 친구를 향한 동경이 때로는 질투로 변하기도 했고, 그가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아 조바심을 느꼈던 날들도 있었다. 내가 가장 믿었던 친구로부터 받은 비판은 그 어떤 적의 공격보다 아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아픔조차도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었다. 그와의 갈등을 통해 나는 타인과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나'라는 독립된 주체를 잃지 않는 법을 익혔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인 동시에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다. 서로의 밑바닥을 보이고, 가장 치기 어린 모습까지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겪었던 감정의 굴곡들은 사춘기 소녀의 변덕이 아니라,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치러야 했던 꼭 필요한 진통이었다.
[어린시절 이후에도 남겨진 것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서, 그 친구와 나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다. 각자의 삶이 바빠지고 서 있는 지점이 달라지면서 예전처럼 매일 소식을 주고받거나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일은 드물어졌다. 하지만 친구의 존재감은 내 안에 아직 남아있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혹은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생각한다. '그 당시의 나와 친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혹은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말해줬을까?'
친구는 이제 내 곁에 매일 있지는 않지만, 내 사고의 방식 속에, 내 말투의 행간 속에, 그리고 내가 세상을 대하는 온기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깊은 영향력은 이토록 깊이 스며들어있다. 사람은 항상 곁에 있지는 못하지만, 떠나더라도 친구가 남긴 '영향의 무늬'는 마음에 새겨져 평생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가끔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보게 될 때면, 나는 어린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되돌아가고는 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 지금은 해외 장기 출장에 떠나있는 나의 단짝친구 뚜비에게.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나의 친구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네가 내 인생의 그 시기에 나타나 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너라는 커다란 파도가 내 좁은 연못에 들어와 준 덕분에, 나의 바다는 비로소 넓어질 수 있어서 고마웠어.” 라고.
[이제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된다는 것]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 친구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관계란 서로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다.
나는 가끔 자문해본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가. 누군가의 숨겨진 빛을 발견해주고, 그의 세계를 한 뼘 더 넓혀주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고 있는가. 어린 시절의 그 친구가 나에게 주었던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선한 충격들을 떠올리며, 나 또한 타인의 삶에 선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영향을 준다는 것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진실한 부분을 나누는 행위다. 친구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을 맺으며: 친구에게,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편지]
자서전의 여섯 번째 페이지를 마무리하며, 나는 친구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이 글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흔들리고 고민하던 어린시절을 통과해온 친구와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서로가 있었기에 서투름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고, 나의 방황은 터널이자 탐험이 될 수 있었다.
학창시절과는 이제 각자가 처한 현실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안개 낀 미래를 향해 나란히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나 조차도 확신하기 힘들고, 나의 장점을 보아주고 나를 믿어주었던 친구야. 소나무처럼 늘 푸르고 늘 그자리에서 곁을 지켜준 나무 같은 너에게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나는 내 안의 불꽃을 피우며, 나의 길을 밝혀가고 있단다. 고마워, 나의 가장 소중한 소울메이트(soulmate)로 언제까지나 함께 인연을 맺어주길 바랄게.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랄게.”
2025.12.29(월)
2025년의 끝자락에서, 20년의 우정편지를 써내려가며
너의 영원한 단짝친구, 기록하는 엘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