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시절로 돌아가본다면]
만약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져,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머신에 오를 수 있다면 나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가볼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로 가서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지금의 기억을 안고 과거에 도달한다면 나는 과연 똑같은 선택을 다시 할까?
['최선'이라는 이름의 서툰 발버둥]
그때의 선택들이 항상 최고는 아니었을지라도 그 순간의 나에게는 가장 최선의 결정이었다. 이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 가느다란 어깨 위에는 그 나이 때만 느낄 수 있는 삶의 무게가 얹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비록 최고(Best)는 아니었을지라도 그 순간의 나에게는 가장 치열한 '최선(Most)'이었다.
당시에는 먼 미래는 보이지 않기에 뒤돌아 보았을 때는 후회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결정을 해야할 순간들이 분명히 마주하게 되기 마련이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하지만 그때 그때 나의 상황에 맞추어서 미숙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하고는 한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그 과정 속의 고민까지 '틀린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어린 날의 나는 갈 곳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안개는 걷히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
우리는 흔히 어른이 되면 인생의 안개가 완전히 걷힐 것이라고 착각한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준이 생기고, 모든 선택이 명쾌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어떤가.
어린시절은 경험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경험이 쌓인 이 순간조차도 언제든 흔들리고는 한다.
수많은 선택을 거쳐왔고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어린 시절의 그 아이처럼 두렵고 막막하다. 경험이 쌓였다는 것은 정답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막막함은 그 시절만의 특수함이 아니라, 인간이 평생 안고 가야 할 본질적인 고독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 어린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미숙했니?"라고 묻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너는 왜 아직도 방황하니?"라고 묻는 것과 같다.
삶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다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안개속에서도 묵묵히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는 '체념 섞인 용기'를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그 시절의 나 또한 미숙했지만, 그 안개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건네고 싶은 말]
이제 아이의 어깨를 감싸 쥐고,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이 말들은 과거의 아이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첫째, "실패해도 괜찮아. 어차피 그건 네가 처음 가보는 길이잖아." 어린 시절의 나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 실패가 너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너라는 집을 짓기 위한 단단한 지반이 될 것이라고. 넘어져 본 사람만이 바닥의 질감을 알고, 다시 일어날 때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지 배운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둘째, "너의 선택을 너무 미워하지 마." 후회는 늘 선택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때 네가 내린 결정은, 당시 네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용기를 짜내어 만든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너의 진심까지 폄하하지 말라고, 너는 그 순간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다독여주고 싶다.
셋째, "조금 더 천천히 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해하던 아이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시간은 생각보다 넉넉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려 애쓰다 숨이 찼던 아이에게, 잠시 멈춰 서서 들꽃을 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봐도 인생은 망가지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결국 너는 아주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이 말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할 너의 모든 과정이 결국 너를 특별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미래의 내가 아주 완벽하고 행복한 모습이라고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여전히 고민하고 흔들리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어른이 되어 너를 만나러 왔어"라고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다.
[다시, 오늘의 안개 속으로]
아이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타임머신에 오른다. 눈을 뜨면 나는 다시 현실의 고단한 선택들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져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를 긍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내린 서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무늬를 만들었음을 인정할 때, 나는 비로소 지금 내가 내리는 선택들의 무게도 견뎌낼 수 있다.
똑같은 선택을 다시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제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설령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나는 다시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 서툰 선택들을 사랑하며 살아내겠노라고. 그 미숙함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고, 성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도 여전히 짙은 안개가 깔려 있다. 내일의 내가 오늘을 돌아보며 또다시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고, 비록 흔들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그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안개 속을 걷는 법을 배우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먼 훗날, 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찾아온다면, 그는 오늘의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아마도 내가 그 아이에게 그랬듯,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고생 많았어. 네가 그때 그 안개 속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준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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