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 시공간을 넘어 전하는 진심
맺지 못한 인연의 계절을 지나온 너와 나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인연이라는 씨실과 날실]
자서전의 두 번째 장을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라는 존재는 결코 혼자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를 울게 한 사람의 '차가움'과 고마운 사람의 '따스함', 그리고 헤어진 이의 '그리움'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지금의 나라는 인생의 비단을 짜 내려왔다.
인연은 때로 폭풍우처럼 몰아치고 때로는 잔잔한 호수처럼 머물다 가지만, 그 모든 파동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었다. 이제 나는 타인을 대할 때 조금 더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또 나에게 어떤 무늬를 새길지, 그리고 나는 그의 인생에 어떤 색깔을 칠해줄지 기대하며 말이다.
과거의 인연들을 축복하며, 나는 이제 내 삶의 다음 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그들이 내게 준 눈물과 웃음, 그 모든 진심을 배낭에 소중히 챙겨 넣고서.
[서신을 시작하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한 밤, 오랫동안 마음속 깊은 곳 오래된 기억을 꺼내어 본다. 낯설어져 버린 생각과 기억이지만, 떠올리다보면 점차 선명해지면서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때의 잔상이 눈앞을 스친다.
과거의 인연을 다시 만나야 한다거나, 못다 한 미련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내 인생에서 당시에 가장 중요하고 소중했던 기억을 소중히 보관하고 싶다. 과거의 인연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 시절을 통과해온 나 자신에 대해 이제는 정직한 마침표를 찍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넘어,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만 내 진심을 담아서.
[우리가 공유했던 그 찬란한 안개 속에서]
기억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 우리가 함께 걸었던 거리, 그리고 마지막 얼굴을 마주하던 순간.
어른인듯, 어른 아닌 스무살 남짓의 청춘인 시절. 서툴고 미숙했고,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을 걷는 아이들처럼,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곤 했지.
당시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정답인 줄 알았어. 너와의 관계에서도 나는 내 방식대로의 최선을 다했지. 하지만 나의 최선이 때로는 너에게 부담이 되었을지도, 나의 뜨거운 열정이 때로는 너를 데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어.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거나, 혹은 너무나 필요로 했기에 오히려 서로를 아프게 했다고 생각해.
그 시절 우리가 나누었던 편지들, 실시간으로 주고받던 카톡 메시지들, 사소한 오해로 흘렸던 눈물들. 그 모든 조각이 지금의 나를 만든 모자이크의 파편이 되었어. 너와 함께했던 그 '미완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비로소 사람의 마음이 가진 복잡한 무늬를 이해하게 되는 듯해.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조차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고,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어.
[이별이라는 이름의 성장통을 지나며]
우리는 각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나는 끝내 인연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꼈어. "왜 끝까지 함께할 수 없을까"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지. 내가 꿈꾸던 인생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성숙'이라는 정거장에 도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경유지였는데 말이야.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전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가며 눈물이 차오르는 하루하루를 보냈었어. 네가 남긴 상처는 흉터가 되었지만, 그 흉터는 단단한 살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기도 해. 누군가를 보내주는 법을 아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아. 인연의 유통기한이 다했을 때, 억지로 붙잡아 서로를 상처내기보다 아름다웠던 순간을 가슴에 품고 기꺼이 뒷모습을 축복해줄 수 있는 여유를 배웠다면 오랜 기간 덜 힘들었을까? 이 성숙함은 아픈 계절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과도 같아서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지는 않아.
[현재의 내가 과거의 너에게 전하는 고마움]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또 다른 복잡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어. 일과 육아,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쫓으며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었지. 가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예전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고는 해. 누군가를 위하고, 작은 것에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과 그리고 너의 모습.
나를 울게 했고, 나를 흔들었으며, 끝내 내 곁을 떠나갔던 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삶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눈을 갖지 못했을 거야. 나의 서투름을 받아주었던 너의 인내에 감사하고, 나를 떠남으로써 나를 홀로 서게 했던 당신의 냉정함에도 고마워.
우리가 나누었던 그 모든 진심은 결실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자양분이 되어 남았어. 이제는 너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삶을 살든 알 수는 없지만, 너 또한 너에게 주어진 생의 안개를 꿋꿋이 헤쳐나가고 있을 것이라 믿어.
[편지를 마무리하며: 시공간의 문을 닫으며]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적으며, 나는 이제 너에 대한 내 마음의 서랍에 넣어두려 해. 가끔 삶이 너무 메마를 때, 혹은 내가 나를 사랑하기 힘들어질 때 한 번씩 꺼내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의 박물관으로 기억할게.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청춘의 한때를 공유했지. 비록 인연의 끝이 만남의 끝일지는 몰라도,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을 품어 안으며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 우리는 비록 남이 되었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내 안에서 아름다운 별로 반짝이고 있을테니까.
잘 가, 나의 시절인연. 너를 통과해온 덕분에 나는 비로소 지금의 내가 되었어.
2026.01.01(목)
행복을 응원하며, 기록하는 엘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