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숲속의 두 갈래 길: 2005년 가을의 예감]
13살,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05년의 가을을 기억한다. 교내 시·그림 전시회를 준비하며 우연히 만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당시의 나에게 단순한 문학 작품 그 이상이었다. 노란 숲속에 놓인 두 갈래 길, 그리고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시인의 고백은 어린 나의 심장을 묘하게 울렸다. 그때는 인생의 무게를 다 알지 못했음에도, 왠지 나 또한 남들이 가지 않는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타자 연습기를 두드리며 외웠던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프로스트의 시구들은 내 감성의 토양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정서적 풍요로움 뒤에는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자라나고 있었다. 진정으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했고, 일단 시작했다면 남들보다 더 어렵고 험난한 길을 택해 나를 증명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오래된 습관.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에서 내가 '이과'를, 그리고 '공학자'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하게 된 근원적인 동력이었다.
[가시밭길을 자처한 공학도의 열망]
나는 늘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화려한 길보다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의 자취가 적어 더 걸어야 할 것 같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20대의 나에게 그 길은 '연구원'이자 'SW 설계자(개발자)'의 직무였다.
박사 학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 해외 포스닥(Post-doc)까지 거쳐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스무 살의 굳은 의지는 나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대학원 시절, 나는 스스로를 시간에 가두었다. 부족한 틈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고, 주말을 반납하며 연구실의 불을 밝혔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시처럼 낭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석박사 통합과정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했던 나의 항해는, 결국 '재능과 능력의 한계'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쏟아부은 시간만큼 비례하지 않는 성과를 마주하며 나는 처음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결국 박사가 아닌 석사로 과정을 마무리했을 때, 내 자존심에는 깊은 스크래치가 남았다. 20대의 미련은 30대가 되어서도 마음 한켠에 덧난 상처처럼 자리 잡았고, 나는 내가 가지 못한 '박사의 길'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현재의 나를 부정하곤 했다.
[꿈꾸던 직장, 그러나 닿지 못한 이상향]
실패의 쓴맛을 본 뒤에도 나의 완벽주의는 멈추지 않았다. 높은 연봉,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 내가 원하던 분야로의 취업에 성공했을 때 나는 비로소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선 길은 내가 상상했던 풍경이 아니었다.
공고에 적힌 화려한 직무 내용과는 달리, 현실의 업무는 생하고 혼란스러웠다. 자신 있다고 믿었던 기술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신기술 트렌드 앞에서 무력해졌고, 고도화되는 시장 속에서 나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 역량의 구멍을 발견하며 괴로워했다. 워라밸이 무너진 채 다시 시작된 야근과 밤샘 속에서 나는 자문했다.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했던 그 길인가?"
완벽해지려는 욕망은 나 자신을 숨 막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했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에게는 부드러웠으나,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나를 대하듯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나는 완벽이라는 신기루를 쫓으며 정작 소중한 사람들과 나의 현재를 잃어가고 있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반복적인 삶 속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신호가 몸과 마음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용기 있는 포기: 쳇바퀴에서 내려오다]
포기할 용기가 없어 꾸역꾸역 버텨오던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 "왜 그렇게까지 살고 있느냐"며,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라"는 그들의 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쳇바퀴에서 내려오면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그 쳇바퀴 위에서 피 흘리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삶의 일부를 포기해보는 '도전'을 시작했다. 공학박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을 내려놓았고, 직무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을 때 과감히 기획/정산 직무로의 변경을 시도했다. 물론 그 선택 또한 장밋빛은 아니었다. 기획자가 되고 싶었으나 정산 업무에 치중된 현실을 마주하며 '기획을 하지 않는 기획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완벽이라는 허상을 쫓기보다, 현재의 나를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새로운 길: 커리어보다 소중한 시간]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아이의 탄생과 함께 찾아왔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나는 출산 후에도 뒤처지지 않으려 애썼다. 동료들과 나를 비교하며 아이가 생겨도 내 자리는 굳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그리고 내 삶에 생긴 균열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육아휴직."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선택일지 모르나, 커리어의 정점을 꿈꾸던 나에게 이것은 '내 인생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무게였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사람이 적게 간 길, 혹은 내가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그리고 30대 중반까지 이어져 온 지독한 진로 고민의 매듭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휴직을 결정했다.
이제 나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 "신의 직장은 없다. 신은 회사를 다니지 않기에"라는 말처럼,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직장이나 완벽한 커리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겪는 이 고민과 힘겨움이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임을 깨닫는다.
[다시 숲속의 갈림길에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의 마지막에서 말했듯,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적게 간 길'의 의미가 이제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것이 '남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마음이 시키는 길'을 의미한다.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던 나는 이제 없다. 높은 이상을 향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대신,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오늘 하루의 평범한 행복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는 여전히 두렵고 힘겹지만, 그 불투명함 속에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려 한다.
나는 여전히 삶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미련조차 내가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생긴 무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과거의 나를 안아주고, 위로하며, 기록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디자인해 나가는 과정. 자서전을 쓰는 이 30일의 시간 또한 내가 선택한 '새로운 길' 중 하나다.
오늘도 나는 숲속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어느 길이 맞는지 번민하지 않는다. 내가 걷는 이 길이 곧 나의 길이 될 것이며,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주제어'를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30대의 중반,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직이 속삭여본다.
"괜찮아, 지금 이 길도 충분히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