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 비눗방울을 부는 마음으로: 선택 이후에 마주한 풍경
[견고한 성을 쌓으려던 시간들]
오랫동안 나는 내 인생이 아주 단단하고 거대한 '성'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공학박사라는 학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완벽한 커리어라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요새를 만드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 성의 높이가 곧 나의 가치라고 믿었기에, 벽돌 하나가 어긋나거나 균열이 생기면 내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Day 11에서 고백했듯, 나는 그 성을 쌓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대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나를 몰아붙였고,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 소리를 외면했다. 결국 '포기'라는 이름의 선택을 통해 그 견고한 성 쌓기를 멈추었을 때, 나는 내가 아주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줄 알았다. 커리어의 중단, 학위의 미완성,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감은 나를 어둠 속에 가두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나를 데려간 곳은 낭떠러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바람이 불면 언제든 부서질 듯 위태롭지만, 햇빛을 받으면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비눗방울의 세계'였다.
[비눗방울: 부서지기 쉬워서 더 눈부신]
아이와 함께 비눗방울 놀이를 하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는 '인생의 성취'들이 사실은 저 비눗방울과 참 닮아있다는 것을.
비눗방울은 허공에 떠 있는 짧은 순간 동안 온 우주의 빛을 머금는다. 그 투명한 막 위로 무지갯빛이 일렁이고,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유영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다. 손끝이 닿는 순간, 혹은 바람이 조금만 강하게 불어도 '탁' 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 부서짐이 허무해서 비눗방울 놀이 따위는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터질 건데 왜 공들여 불어야 해?"라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아이는 비눗방울이 터지면 슬퍼하는 대신, 까르르 웃으며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더 큰 방울을 불어낸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비눗방울이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비눗방울이 허공을 수놓는 그 찬란함' 자체였다.
나의 커리어도, 나의 꿈도 사실은 비눗방울이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박사 학위라는 비눗방울은 터졌고, 완벽한 연구원이라는 비눗방울도 모양이 변했다. 하지만 그 방울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던 순간 내가 느꼈던 열정, 그 안에서 보았던 무지갯빛 희망들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터져버려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순간의 빛남은 내 영혼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기록, 찰나의 방울을 영원으로 붙잡는 법]
그 선택은 나를 '기록하는 사람'의 자리로 데려갔다. 비눗방울 같은 인생이 허무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기록함으로써 마음속에 영원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자서전을 쓰고, 아이와의 일상을 메모하는 행위는 내 손에서 터져버린 비눗방울들의 잔영을 모으는 작업이다.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 느꼈던 그 쓰라린 미련도 기록하고 나면 한 편의 성장이 된다. 직무를 바꾸며 겪었던 혼란도 글로 적고 나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탐험의 기록이 된다.
기록은 나에게 '결과' 중심의 삶에서 '과정' 중심의 삶으로 옮겨가게 해주었다.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은 결과일 뿐이지만, 그것을 불어내기 위해 숨을 고르고, 예쁜 모양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입술을 오므리는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인생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결과가 어떠할지 두려워하며 시작을 망설이지 않는다. 설령 내일 터져버릴 비눗방울일지라도, 오늘 가장 예쁜 색으로 불어내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대한다.
[신의 직장이 아닌, 나의 일상을 선택한 대가]
그 선택이 나를 데려간 가장 구체적인 장소는 '아이의 곁'이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육아휴직을 선택했을 때, 나는 내 사회적 생명이 끝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마주한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다채로웠다.
"신의 직장은 없다. 신은 회사를 다니지 않기에."
이 우스갯소리 같은 문장은 나에게 커다란 해방감을 주었다. 내가 그토록 매달렸던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실은 나를 보호하는 성벽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나'라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남았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는 시간, 책 한 권을 느긋하게 읽는 오후, 내 삶의 궤적을 글로 정리하는 이 시간들.
물론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날 때도 있고,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막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막막함조차 '아직 불지 않은 비눗방울 용액'처럼 느낀다. 어떤 모양으로 불어낼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주도권을 되찾은 것이다. 내가 주인인 삶은 완벽한 삶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 선택이 나를 데려다 놓은 이 길 위에서 배우고 있다.
[결론: 가장 빛나는 방울은 아직 불지 않았다]
Day 11에서의 선택은 나를 '완벽주의자'에서 '예술가'로 바꾸어놓았다. 내 인생이라는 도화지 위에 고정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아름다운 비눗방울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예술가 말이다.
누군가는 나의 30대 중반을 '경력 단절'이나 '방황'의 시기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를 '나만의 무지개를 찾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더 이상 남들의 기준에 맞춘 성벽을 쌓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내 안의 상처와 굴곡까지도 오롯이 품고 기록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그 험난했던 가시밭길 선택이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이다.
비눗방울 같은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기적임을 의미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기에 지금 이 순간의 빛남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나는 오늘도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색깔을 담아, 또 하나의 비눗방울을 허공으로 날려 보낸다.
미래가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결정된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기록하며 나의 삶을 디자인한다. 그렇게 현재의 나를 그려가는 이 과정 자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빛나는 비눗방울이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