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화.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가

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by 기록하는 엘리

2부. 현재 ― 살아내는 시간 (Day 11~20)

11~15일 : 내 삶의 전환점

Day 13.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가


— 무너진 성벽의 잔해, 상실의 숲을 지나 발견의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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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라는 이름의 감옥]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나의 정체성은 내가 쌓아 올린 '결과물'과 동일시되었다. 공학박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 업계에서 인정받는 연구원이 되어야 한다는 열망은 나를 지탱하는 거대한 성벽이었다. 하지만 그 성벽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지배했던 가치관은 '완벽'과 '성취'였다.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험난한 길을 선택해 보란 듯이 성공해내는 것이 내 존재 증명의 방식이었다. 이과를 선택하고, 공학도의 길을 걷고, 밤새워 코드를 짜던 시간들은 나를 보호하는 단단한 성벽과 같았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신조는 나를 지탱하는 종교였고, 그 종교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성벽 안에서 나는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나 자신과 나의 일에 엮인 이들에게는 서슬 퍼런 잣대를 들이댔다. 내가 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존재의 결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잃어버렸고, '지금 이 순간'의 공기를 즐기는 감각을 상실했다. 성벽은 높아졌지만, 그 안의 나는 점점 고립된 채 말라가고 있었다.




['박사'라는 이름의 미완성 교향곡]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은 대학원 시절에 찾아왔다.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으며 나는 당연히 박사가 되어 포닥까지 마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학위가 아니라 내 인생의 설계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연구실의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재능의 한계'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했다. 아무리 시간을 쏟아부어도 메워지지 않는 공백, 수만 번의 시도 끝에도 보이지 않는 결과물 앞에서 나의 의지는 산산이 부서졌다.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박사 학위'라는 나의 첫 번째 꿈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포닥까지 꿈꾸며 설계했던 나의 20대는 석사 졸업이라는 마침표와 함께 미완성으로 남았다. 재능과 능력의 한계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나는 단순히 학위를 잃은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잃었다. 30대가 되어서도 그 미련은 가슴 한구석에 덧난 상처처럼 남아, '패배자'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곤 했다.


결국 석사 졸업으로 과정을 마무리하며 연구실을 나오던 날,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패배'였다. 30대가 되어서도 그 미련은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았다. 남들은 좋은 회사에 들어갔으니 성공한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는 여전히 그 연구실 구석에서 나오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나는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을 잃었고, 한동안 거울 속의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직업적 이름표와 사회적 쓸모의 상실]


두 번째로 잃은 것은 '사회적 쓸모'에 대한 확신이었다. 취업 후에도 상실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 높은 연봉, 화려한 직함은 나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언어였다. 연구원으로서, SW 설계자로서 밤낮없이 일하며 얻었던 연봉과 타이틀은 나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언어들은 내가 원하던 직무와 실제 업무 사이의 괴리 속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연구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지만, 정산과 기획의 언저리를 맴돌며 나는 나의 '전문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출산과 육아휴직은 나에게 '사회적 사형선고'처럼 다가왔다. 육아휴직과 함께 그 이름표가 떼어졌을 때, 나는 거울 속에서 낯선 이를 마주했다. 동료들이, 후배들이, 신기술의 파도를 타고 앞서 나갈 때, 나는 멈춰 서 있었다. 커리어의 연속성을 잃었다는 공포, 내가 없어도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간다는 허무함,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 뒤로 사라져버린 '나'의 존재감. 나는 내가 쌓아 올린 모든 사회적 무기들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것은 자발적인 선택이었으나 과정은 강제된 상실에 가까웠다. 나는 그렇게 내가 알던 '나'를 잃어버린 채, 낯선 계절의 문턱에 홀로 서 있었다.


많은 내 주변 지인들이 신기술 트렌드를 쫓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경력 단절'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유기당하는 듯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완벽주의라는 갑옷의 균열]


나는 타인에게 엄격했던 만큼 나 자신에게도 가혹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바엔 시작하지 않겠다는 고집은, 사실 내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무거운 갑옷이었다. 하지만 육아라는, 도저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 서자 그 갑옷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못난 나를 발견했고, 내가 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상을 보며 '통제권'이라는 마지막 자부심마저 잃어버렸다.



[절망의 늪에서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용기]


나는 과연 나는 이대로 침몰하는 배에서 익사하고 말까? 절망의 늪에서 쓰러지며 이대로 삶의 미련없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놓고 싶은 심정으로 심연의 바다로 빠져들고 말았다. 소중한 가족들이 나로 인해 망가져가고, 불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 속에서 나는 다시 일어나보고자 했다. 어떻게든 헤엄을 치고, 호흡을 해서 세상 밖으로 다시 한 번 살아가고자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나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도록. 아니,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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