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4화. 나를 위로하는 말

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by 기록하는 엘리

3부. 미래 ― 아직 오지 않은 무지개 (Day 21~30)

21~25일 : 나를 지탱하는 문장

Day 24. 나를 위로하는 말




Copilot_20260105_004631.png?type=w773


[위로가 닿지 않았던 이유]


위로(慰勞)는 타인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 주기 위해 건네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힘들 때 자연스럽게 위로를 기대한다. 누군가가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그 말 한마디로 다시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많은 위로를 받아도 마음이 잠시 풀릴 뿐, 깊은 곳까지는 닿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오래 고민하다 답을 ‘위로의 방향’에서 찾게 되었다. 타인의 말은 마음의 표면을 어루만질 수는 있지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닿기에는 한계가 있다. 내 마음의 가장 안쪽,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결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 그 안에는 위로받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마치 충분히 달래지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혼자 버텨왔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다그치고, 몰아붙이고, 채찍질하는 데 익숙했다. 잘해내지 못한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모난 말을 던졌고, 그 말들은 쌓여서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나를 위로하는 말은 위로를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에, 허울 뿐인 말이 되어 위로가 와닿지 않고는 했다. 내면의 나를 오롯이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나를 이해하고 진짜 위로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내면의 아이를 마주하다: 나를 이해하며 시작된 위로]


진짜 위로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날, 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내 감정을 바라보기로 했다. 왜 이렇게 지쳐 있는지,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나를 조급하게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힘들었던 당시에 가장 듣고 싶은 위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의 끝에서 마주한 나는, 생각보다 많이 애써온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 버텼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숨 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이해하기도 전에 판단했고, 위로하기도 전에 채점했다.


“이 정도로 힘들어할 일이야?”


“이 정도도 못 해내면 어떡해?”


이 말들은 모두 나에게 향한 말이었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날카로운 말로 나를 찌르고 있었다.


내면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건넨 위로는, 그래서 늘 겉돌았다. 그렇기에 내면의 나를 외면한 채 받는 위로는 잠깐의 진통제일 뿐, 상처를 돌보지는 못했다. 진짜 위로는 문제를 덮는 말이 아니라, 그 문제를 겪고 있는 나를 이해해주는 말이었다.


[내가 나에게 건네고 싶은 문장]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나에게 건네고 싶고, 건넬 수 있고, 건네야만 하는 위로는 “잘하고 있고, 무엇이든 나는 해낼 것이니 조급해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를 하면서도 하고 싶어하면서도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고는 한다. 잘하고 싶다라는 이면아래 차분하게 마음의 결을 정돈하지 못한 채로 내 스스로를 벼랑끝까지 몰아붙이며 쉽게 조급해지고는 한다. 누군가가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지라도 스스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더욱이 나를 소중히 대하는 법을 몰라 위로조차 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며 나 자신을 보듬어주면서 그렇게 나아가야겠다.




이전 23화[3부] 3화. 내 인생의 좌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