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9화. 앞으로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by 기록하는 엘리

3부. 미래 ― 아직 오지 않은 무지개 (Day 21~30)

21~25일 : 나를 지탱하는 문장

Day 29. 앞으로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유: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사계절의 기록

― 너라는 계절을 지나, 나라는 숲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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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마음속 어린아이, 과거의 나에게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고 있던 어린아이, 즉 '과거의 나'였다. 20대와 30대 초반의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남들보다 앞서가야 했고,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으며, 쉴 때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공학도로서, 연구원으로서의 삶은 늘 '효율'과 '성취'라는 잣대로 나를 평가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나는 뜻밖의 거울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숨 쉬고 웃는 것만으로도 온전한 사랑을 받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때의 너도, 박사 학위를 따지 못했어도, 완벽한 기획안을 내놓지 못했어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어." 아이를 돌보는 행위는 사실 과거의 결핍되었던 나를 돌보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성취를 위해서만 살아가지 않는다. 내 마음속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그 아이가 그토록 원했던 '여유'와 '인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그것이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첫 번째 이유다.



2. 사계절의 시간 속에 피어난 두 갈래의 기억

1) 봄부터 겨울까지, 너를 담다: 엄마로서의 기록


아이와 함께하는 사계절은 이전의 계절과는 완전히 다른 질감을 가졌다.


봄: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아이의 첫걸음마를 응원했고,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아이와 함께 땀 흘리며 생명의 에너지를 느꼈다.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내려놓음'의 미학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배웠고,

겨울: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본질적인 온기를 확인했다.


"너라는 계절에 머물다" 보면,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에게 이 계절들은 '엄마와 함께한 빛나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나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한 인내의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공유된 기억들은 우리가 세상을 버티게 하는 가장 단단한 정서적 유산이 된다.


2) 계절의 숨결이 스며드는 순간: 나 자신을 찾는 여정

하지만 이 계절들은 오롯이 '엄마'만의 시간은 아니었다. 육아휴직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나에게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탐구할 귀한 틈을 내어주었다. 아이가 잠든 고요한 계절의 밤, 혹은 아이가 유치원에 간 짧은 계절의 낮 동안 나는 잃어버렸던 나의 취향과 갈망을 다시 꺼내 보았다.


내가 어떤 문장에 가슴 설레는지, 어떤 차의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리어가 아닌 내 영혼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지식은 무엇인지. 계절의 숨결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복원되었다. 아이를 위해 커리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나를 만나기 위해 잠시 '우회'했을 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3. 사계절의 시간, 세 가지 나 (과거, 현재, 미래)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는 세 명의 내가 공존한다. 기록은 이 세 가지 시간을 하나로 엮는 마법 같은 도구다.



과거의 나: 연구실 불빛 아래서 번민하던 '결핍의 나'를 안아준다. 그 시절의 치열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깊이가 있음을 인정하며, 과거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현재의 나: 아이와 비눗방울을 불고,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록하는 현존하는 '현재의 나'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가장 생동감 넘치는 존재이다.


미래의 나: 이제 나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기록으로 내 인생을 디자인하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린다. 30대 중반의 진로 고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커리어(기획자로서의 통찰, 작가로서의 시선 등)로 진화할 준비 과정임을 믿는다.



이 세 가지 내가 사계절이라는 순환 속에서 조화롭게 춤출 때, 나는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가졌다고 느낀다. 세 가지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



4. 휴식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창조적 복원'

많은 이들이 육아휴직을 커리어의 공백이나 손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나를 다시 세우는 창조적 복원의 시간'이었다.


만약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 쳇바퀴 위를 달렸다면, 나는 결코 '비눗방울의 찬란함'이나 '계절을 기억하는 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고, 스스로를 도살장으로 몰아넣는 기계적인 삶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육아휴직 기간의 휴식은 단순히 일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영혼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본질적인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직함이나 연봉이라는 외피를 벗어던지고도 내가 충분히 빛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 여정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어떤 환경에서도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가 정해준 정답이 아닌, 내가 스스로 정의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고, 손실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이 확신이 바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5. 맺음말: 너로부터 배운, 계절을 기억하는 법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계절을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단순히 달력을 넘기는 일이 아니라, 순간의 공기를 음미하고 그 안에서 내 존재의 울림을 듣는 일이다.


너라는 계절에 머물다보면, 세상 모든 것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내 안의 상처들이 아물어가고, 기록을 통해 내 인생의 디자인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신의 직장은 없을지라도, 내가 신처럼 창조해나갈 '나의 하루'는 매일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아가고 있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계절이 어김없이 순환하듯, 나의 성장 또한 멈추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아이와 함께 빛나는 추억을 만들고, 동시에 단독자로서의 나를 치열하게 탐구하는 이 이중주야말로 내가 생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다.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다시 정의한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라는 계절을 정성껏 지나며, 마침내 나라는 숲을 울창하게 가꿔가는 삶."


오늘도 나는 기록한다. 내일의 내가 오늘을 보며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이 기록을 읽으며, 엄마가 자신을 키우며 얼마나 더 큰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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