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재원 엄마입니다.
출근길에 시동을 켜니 차 안에 만화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주말 동안 엄마 차 안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요즘 제일 좋아하는 만화 노래를 틀어줬었는데, 핸드폰 블루투스가 자동으로 연결되어서 재생되어 울려 퍼진 것입니다. 4살 아이의 엄마의 차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지요. 집에서 회사까지 15분, 오직 나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 3곡을 들을 수 있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 엄마의 일상에서 주재원으로 돌아가는 시간, 15분.
나는 주재원 엄마입니다.
주재를 나오기 전에는 새로운 극한 직업으로 불리는 '워킹맘'이었습니다. 물론 '육아 대디'들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지요. '워킹맘' '육아 대디'들의 하루란... 시간의 전쟁터이지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80년 대생들의 삶을 들여다본 다큐멘터리를 보며 백배 공감하면서 '다 똑같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조금 위로받았었고, '82년 김지영'책을 읽고는 '어머, 이건 내 얘기잖아, ' 하면서 구절구절 한 구절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 갓 지난 아이가 잠든 새벽에 출근하며 문을 닫고 나올 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몰려왔고, 대신 아이를 키워주는 나의 '엄마'가 내 아이를 보느라 눈에 띄게 늙어가는 것을 느꼈을 때 '아.. 내가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을 아닐까.'라는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나의 '엄마'를 조금 쉬게 해 줘야겠다 싶어 8개월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때리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공개하는 뉴스가 한창 떠들썩할 때였습니다.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 남의 손에 맡겨도 되는 걸까.' '나는 그래도 엄마인데, 좋은 엄마는 못 되더라도 책임감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줄어드는 인구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워킹맘'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일하는 엄마로서 살아가기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탄력적 근무제도, 남자 육아 휴직, 직장 내 어린이집 등 제도들이 정착되고 실질적으로 '실행'되려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나브로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의 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더 나은 환경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나는 많은 엄마로서의 '생각'을 뒤로하고 그래도 고집스럽게 직장을 다니기로 결정했었습니다. 내가 나의 '일'을 하지 않아 포기하게 되는 '인생'과 엄마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인생'을 저울질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두 가지의 삶이 나의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누가 뭐라든, 그 누가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니까. 대신 내 인생을 가치롭게 해 주고 풍성하게 해주는 비법 '타임 매니지먼트'를 좀 더 타이트하게 해 나갔습니다. 퇴근 후 돌아오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가는 느린 시간을 맞이합니다. 직장에서는 빈둥거림 없이 상사가 원하는 방향을 제깍 캐치하여 빠른 속도로 처리해갑니다. 보고서를 써야 하는 경우에는 타임라인을 정하여 오버 타임을 줄여나갔습니다. 집에 빨리 가야 하니까요. 남편도 퇴근 후 아이와 신나게 놀아줍니다. 부부간의 시간 차 '도움'으로 야근, 회식을 대비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정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빈 공간'이 없음을 느낍니다. 그럴 때에는 평일 연차 찬스를 써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자기만의 방식대로 '쉼'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부부간의 윈윈 도움으로 한국에서의 워킹맘, 육아 대디 일상을 잘 꾸려나갔었던 것 같습니다.
주재를 나오고, 가족이 오기 전 혼자 나와 있었던 4개월간은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하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갔지만,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보고 싶은 가족을 못 보는 향수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그렇게도 한 달만 혼자 있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혼자가 되어보니, 그리고 극한 주재원의 삶을 맞이하고 보니, 내 삶의 원동력은 가족이었구나를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자 주재원'을 그동안 선발하지 않았던 이유를 들어보면, 회사의 인사부문, 그리고 나의 상사들, 나의 남자 후배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여자 주재원은 안되죠. 그럼 애는 누가 키워요.' 였던 것 같습니다. '여자 주재원'을 선발하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회사 내 모든 분들의 우려는 '육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였던 것 같습니다. 그 질문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풀어서 쓰면 '네가 주재원 나가서 애를 데려가면 누가 애를 보냐, 남편이 직장 그만두고 같이 나갈 수 없잖아!'입니다.
또 다르게 해석하면 '남자는 주재원 나가면 일하던 와이프도 직장 그만두고 따라가서 애 봐도 되지만, 여자가 주재원 나가면 일하던 남편이 직장 그만두고 따라가서 애 볼 수 없잖아.'입니다.
제가 주재를 나와서 여기서 만나는 모든 한국인들은 '너는 남편이 어느 회사 주재원이니?'라고 물어봅니다. '내가 주재원이다'라고 대답하면 하나같이 다들 놀라긴 합니다. 그리고는 한국인, 일본인들은 '그럼 애는 누가 보니? 남편은 따라왔니?'라고 물어보고 유럽인은 '좋은 경험이겠네. 여기 생활을 즐겨.'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한국인은 아직도 '여자가 일한다는 것, 특히나 주재원으로 나와 일한다는 것에 매우 낯설어합니다' 그들의 호기심에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지만, 그저 나를 호기심으로 생각하며 오묘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만의 비법을 얘기해주고 싶지는 않아집니다.
그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애는 누가 봐?'에 대한 대답은 '엄마, 아빠가 본다'입니다. 누구 하나 희생해서 애는 엄마가 봐야 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방안을 찾으면 생각보다 많은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 아이의 아빠는 휴직을 하고 여기 생활에 합류합니다. 온전히 아빠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인생의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 선택으로 인해 풍성해질 해외 생활을 너무나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일해야지, 돈 벌어야지.라는 생각과 그래도 여자가 애를 봐야지, 그래야 애 정서가 좋아지지.라는 '남들의 하나도 도움 안 되는 편견'에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 선택한 주재원의 삶이고,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책임을 우리 가족이 지면 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가까운 친구가, 가족들이 우려를 하는 눈빛을 보낼 수는 있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우려를 담담하게 받아내고, 용기 있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 발짝 나아간다면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또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재를 나와서 직업적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주재를 나와서도 계속해서 아이와 남편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어찌나 다행스러운지요.
나는 주재원이고, 엄마입니다.
두 가지 삶 모두 가치 있는 만큼 힘든 길이지만
여기에 1등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내 방식대로 재미있게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