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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Sep 16. 2019

시간이 지나면 '노바디'가 되려 한다

썸바디보다는 노바디

한국은 추석이지만, 또 출장을 갑니다. 9월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달인데, 이번해에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달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 삶의 많은 부분이 희생되어야 하고, 또 셀프 동기부여를 통해 지치지 않고 일을 해 나아가야 하는 주재원의 고달픈 삶을 반증하는 달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에 지나지 않는데, 가끔 이렇게 몰아붙일 때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내 인생이라는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지 않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특별한 "썸바디"가 되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주재원으로 선발되고 적을 두었던 팀에서 송별회를 할 때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게으르지 않은 주재원이 되겠습니다.” 그때 이 말을 했을 때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체하는 전임 주재원은 주재 생활 내내 맡은 국가에 대한 전략이나 아이디어를 담은 보고서를 본사로 송부해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본사팀에서는 주재원에게 단기, 중장기 전략을 요구하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보고서를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전략 수립의 주체가 해외 거점에 있으며, 본사는 그에 따라 자원 배분을 하고 경영층 재가를 받아 지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해외 거점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전임 주재원은 보고서를 요청할 때마다 이메일로 의견을 간단히 통보하였습니다. 요즘에는 보고서의 간략화, 이메일 보고화를 전파하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경영층의 재가를 받기 위해서는 파워포인트 형태의 보고서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전임 주재원이 경영층 보고를 위한 형태의 문서를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본사 카운터 파트너인 지역 담당자가 보고서로 정리하여 본사 윗 라인에 보고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어떤 의견이나 전략도 보내주지 않아, 본사 담당자가 알아서 전략을 수립하고 보고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본사 지역팀에서는 그 전임 주재원이 담당하는 국가를 카운터 파트너로서 담당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지런한 주재원이 되겠다고 선언했었던 것 같습니다. 시장 상황을 반영한 전략적 보고서를 잘 만들어 본사에 적절하게 공유함으로써, 신속한 의사결정 바탕 위해 시장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특별한 “썸바디”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주재원으로서 근무를 시작하고 저는 많은 보고서를 만들어 냈던 것 같습니다. 주말을 기꺼이 반납하고 출근하여 멋들어진 보고서를 ‘양산’하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습니다.  보고서의 디자인에 신경 쓰다 보면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무시간 별도의 시간 확보가 필요했고, 그러려다 보니 주말을 활용하거나 야근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초심’의 마음으로 6개월은 정말 많은 보고서를 양산하며 썸바디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본사에서도 ‘와 이런 보고서 주재원한테 처음 받아봐요” 라며 감사함과 신기함을 표현해주며, 나의 노력에 대해 심리적인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나의 상사도 전임 주재원과 다르게 보고서를 기꺼이 만들어 주니,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나는 내가 특별한 “썸바디”가 되어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보람찼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흘러감을 느껴 '흥'도 났던 것 같습니다. 


담당 국가의 판매가 어려워지면서 나의 확신에 금이 가기 시작하게 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담당 국가의 우리 파트너사는 갑자기 주문 중단을 선언하였고, 본사에서는 큰 물량을 담당하는 나의 국가에서 주문이 들어오지 않자, 그때부터 큰 사달이 났습니다. 나에게 전화며 이메일이며 추궁의 화살이 공격적으로 날아왔습니다. 파트너사는 시장 상황이 어려워서라고 해명했고 나 또한 시장 상황의 어려움에 대해서 신속히 보고서를 써서 본사에 송부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도 주문이 다시 시작되지 않자, 나의 전 팀장이기도 했던 본사의 창구 팀장은 전화를 해서 ‘네가 주재원이 되니까 주문이 안 들어오는데, 네가 파트너사 관리를 똑바로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를 포함하여 제 기준에서는 해서는 안될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내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며, 자존감이 높은 만큼 자존심에 금이 가면 회복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긴급 점검 출장을 가서 파트너사와 미팅을 하였고, 파트너사는 솔직하게 ‘네가 담당하기 전까지 그동안 팔지 않은 재고를 팔았다고 본사 시스템에 거짓 입력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보다 훨씬 많은 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주문을 할 수가 없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습니다. 전임 주재원이 월별 주문량에 따라 목표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목표 달성 인센티브를 주었기 때문에, 파트너사는 그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거짓 입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전임 주재원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고, 오히려 매달 이 물량만큼 입력하라고 본인들을 압박했다고까지 했습니다. 

파트너사의 심각한 비즈니스 모럴에 대해 어이가 없었지만, 그 보다 내가 비난받았던 억울함,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한다고 단기간에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좌절감이 몰아치면서 그 자리에 철썩 주저앉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전임 주재원은 현재 승진하여 인사권한이 있는 막강한 본사의 주무 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저 혼자 허무함, 후회감, 무엇보다 좌절감에 힘들어할 뿐이었습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이렇게 업무를 처리해도 승진이 되기도 하고, 도덕성과 순수함이 평가의 잣대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이 상황을 피하고 싶기도 하고, 왜 하필 나인가 피해의식이 극에 달하면서 정신적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는 그 수많은 재고들을 치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만 매달 출장을 가서 소진 내역을 점검하고 보완할 사항을 꼼꼼히 챙기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혼자 방안을 찾고 파트너사를 끌고 당기며 쓰레기 치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본사에서는 아무도 이 쓰레기에 대해서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부서가 눈치만 보았으며, 마치 그 주무 팀장의 눈에 거슬리지 않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렇게 모질게 추궁하던 사람들의 연락도 뚝 끊겼습니다. 우리 상사도 이 사건에 대해 본인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인사평가에서 위기를 맞을까 두려워 쉬쉬하고 싶어 했고 아무 디렉션도 주지 못했습니다.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어떻게 실행을 해야겠다는 세부 전략을 꼼꼼히 수립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사람은 신기하게도 위기에 몰리면, 오히려 담담해지고 냉철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오히려 침착해지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 본능을 강하게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본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발 빠르게 보고서를 써서 상사에게 보고했습니다. (나의 상사는 존재의 위기감으로 인해 보고를 안 하고 사건을 덮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고자 합니다) 그러고 나서 파트너사로 날아가 현황 파악 및 점검 대책을 공유하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알아서 수립하여 재빠르게 실행해갔습니다. 본사에 있는 나의 카운터 파트너 담당자에게도 보고서를 공유했지만 ‘공식적으로 윗 라인으로 보고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서를 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보고서… 보고서… 보고서… 전략... 전략... 하더니, 정작 중요한 보고서는 안 받은 것으로 하겠다고 하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지요. 세상일이 그렇지요. 비겁함과 열정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직장인들의 '생각'의 변화는 사회생활하면서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지요. 이래서 '사람'처럼 나약한 존재가 없다고 했구나라고 새삼 깨달기도 했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저는 저의 스텝을 밟아가며 쓰레기를 열심히 치워나갔습니다. 


주문이 계속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태는 덮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나의 보고서는 본사 경영층에게 보고되었습니다. 그제야 본사 유관부서에서는 눈치 작전을 끝내고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부 전략을 또 내놓으라 하기에, 이미 다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는 전략을 공유해줬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자료들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바로바로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이너 한 부분 가지고도 부정적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고, 지적의 총구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재고를 치우기 위해 정말 파트너사와 머리를 짜내며 고안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두고 비용의 적정성에 대해 지나치게 관여하기도 하고 대안 없는 비판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통에 시간은 가고 재고는 쌓여가고 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 채 요구하는 자료 대응에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와중에도 부단히 도 "썸바디"가 되려고 안간힘을 썼었던 것 같습니다. '겸손' '청렴함' '모럴'같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념들이었지만 앞으로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는 정말 베이식 프로세스부터 파트너서와 재 정립하려고 애썼습니다. 베이식이 잡히지 않으면 미분/적분으로 진도를 나갈 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미분/적분/응용 함수를 빨리 마스터하고 싶어서 베이식을 짚고 넘어가지 않았고 '허술했던' 성은 이렇게 금방 무너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모래를 다시 모으고 쌓고 단단하게 하는 지루한 작업을 해야만 하고, 내가 마침 주재원이 되었을 때 그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본사의 추궁을 넘어 결국 나의 아이디어는 실행되고 있습니다. 아직 결과를 점치기는 어려운 과정의 단계이지만, 결과가 어떻든 간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는 (노바디) 뭐라도 하려고 했던 내가 (썸바디)가 저는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상사도 내가 했던 과정에 대해 인정을 하였고, 그대로 본사에 보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이렇게 혼자 굿하고 장구 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돌이켜보면 감정적으로 체력적으로 정말 힘든 것을 알기에 선뜻 다시 뭐라도 하려고 기를 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전략을 내는 순간 숟가락을 얹는 사람, 무턱대고 비판하는 무리들에게 공격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내는 순간,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과 나를 안쓰럽게 보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며, 다시 비판의 들판에 놓이며 이리저리 물어뜯기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한 회사의 회사원이고 나의 업무만 하면 되는데, 담당도 아닌 마케팅 아이디어까지 내면서 이렇게 공격받으며 일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세월이라는 시간을 타다 보면 방어할 벽이 없는 들판보다는 안락한 방에 조용히 갇혀있고 싶어 지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썸바디’가 되겠다는 치명적인 욕망과 열정을 내려놓고 조금만 나 스스로 비겁해지면 아무에게도 공격당하지 않고 최소한 마음은 다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내면이 점점 강하게 자리 잡으며 그렇게 '노바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그 전임 주재원도 어떤 전략적인 보고서도 본사에 송부하지 않았으며, 철저히 ‘노바디’로 주재 생활하다가 안전하게 귀임하고 승진하여 팀장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바디'로 살았던 많은 주재원 선배님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내가 본사에 있을 때 그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던졌던 비판과 비난의 화살들에 그들이 받았을 상처도 생각해보니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주재 생활 1년 차인 제가 아직 경험이 미천하지만, 이렇게 ‘노바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슬프게만 느껴집니다. 새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고 성공시키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인재들이 대중들에게 받았을 공격, 서러움을 생각하니 그 위대함에 진심 어린 존경과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위대한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평가받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아 후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노바디' 보다는 아픈'썸바디'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정말 '인정받는 썸바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부질없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희망고문이라고도 합니다. 최소한 무엇이라도 하면서 보낸 나의 시간이 작은 것이라도 깨닫는 배움, 성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에 나는 시끄러운 부산한 조금은 불편한 '썸바디'가 돼. 어. 보. 려.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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