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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n 22. 2019

양극의 연애

예민함과 무던함이 만나 사랑할 때


  '무던하다'는 말이 너무나 정확하게 어울리는 남자 친구는 웬만하면 다 괜찮다고 하는 편이다. 무던하다는 것은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다. 그는 웬만해서는 쉽사리 힘들어하지 않고, 짓궂은 농담에도 기분 나빠하는 적이 없다. 화나는 것도 잘 없고, 그렇다고 딱히 기쁘고 행복하고 들뜨는 법도 없다. 평지를 칙칙폭폭 평화로이 달리는 기차 같다.


   남자 친구는 깔끔을 꽤 떠는 편인데, 한 번은 내가 커피를 입에 물려주려다 남방에 온통 엎은 적이 있다. 원최 깔끔하고 깨끗한 상태를 좋아하는 터라 짜증을 낼 법도 한데도, 그는 좀처럼 기분이 나빠하질 않는다. 나 같았으면 짜증이 그득그득 했을 텐데 말이다.

깔끔쟁이에게 커피 왕창 엎은 날.....

 

  남자친구가 정서의 KTX라면 나는 롤러코스터다. 기쁠 땐 조증이냐는 말을 들을 만큼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지만, 슬프거나 힘들 땐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기도 잘 운다. 힘든 것도 많고, 서운한 것도 많으며 불편한 것도 많고 그런 것들을 말하기도 잘 말한다. 때문에 참 요란스럽고 지랄 맞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며, 주변으로부터는 '색깔이 뚜렷하다'는 완곡한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숨만 쉬어도 서운하다'라고 할 만큼 섭섭한 것도 많다. 그렇지만 남자 친구는 늘 서운한 것이 없는 쪽이다. 이 '다름'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대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오빠는 왜 나한테 서운한 게 없어?"

"서운한 게 없으니까~"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서운한 게 없을 수가 있어. 서운하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크다는 것일 테고, 서운한 것이 없다는 말은 곧 무관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의 크기가 커질수록 바라는 것도 많아지고 자연스레 서운한 것도 많이 생기곤 했다. 내가 표현하는 서운함은 결국 좋아함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무던한 그에게 배워가고 있는 것은, 이게 나만의 공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함=서운함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를 재고해보고 있다.


   남자 친구는 내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늘 말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당황스러울 때는 있지만)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괜찮다고,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어떤 틀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저런 사람이면 좋겠다거나, 혹은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저렇게 해주면 좋겠다 하는 기대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노력해준다. 자주 만나면 좋겠다거나, 목소리가 더 듣고 싶다거나, 애정표현이 많았으면 좋겠다거나,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말은 넣어두라거나, 실질적인 해결보다 마음부터 알아달라는 것 등등. 이런 나를 대하는 남자 친구는 내가 바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해 노력하려고 한다- 자기는 바라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는 불공평한 줄도 모르는 바보다.


 그런 바보를 바라보며 한없이 불안에 떨었다. 괜찮을 리 없다고, 나랑 만나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말했다.


"나는 정말 괜찮아. 네가 스스로 말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아. 그리고 네가 주고 있는 것도 많아"



   이 말을 믿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나는 대체로 괜찮지 않은 상태를 더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믿어지려 한다. 그가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괜찮다는 말임을. 안 괜찮지만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말 괜찮다고 느끼고 있는 것임을.






   어쩌면 남자 친구는 '으른'의 연애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서로 물고 뜯고 서운하고 스파크 튀는 전쟁 같은 사랑을 주로 해본 나로서는 새로운 국면이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잘 모르겠지만, 직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아마도 그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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