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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n 22. 2019

안정감이 옮겨 퍼질 때,

불안을 견뎌준 덕분에


나는 관계에서 늘-항상-매우 불안한 사람이다.


어쩌겠는가? 이런 기질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을.

더 이상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음을 안다.

그냥 나는 불안한 사람일 뿐이다.




한편 남자 친구는 관계에서 꽤나 안정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남에 있어서 매우 불안했다.

남자 친구는 특유의 안정감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주었음에도

나는 그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멀어질 것만 같고,

떨어져 있을 땐 없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스스로도 불만스럽고 짜증스럽지만 어찌하지 못하는 그런 불안이었다.



공원을 닮았다- 건강하고, 평온한



불안한 마음에,

또 좋아하는 마음에

상황을 불문하고 연락이 자주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만났다가 헤어질 때마다 보내주지 못해 한참을 붙들고 투정을 부리고,

하루를 같이 잘 보내고도 마음을 확인받지 못한 날이면 부족해하고 아쉬워했다



이런 나를 보며 그는 퍽 난감하다고 했다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답답한 마음에

그 무던한 사람이 화를 적도 있다

남자 친구에게 불안을 쏟아내기를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참 많이도 고민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묘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관계 불안은 '믿어지는' 순간부터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마음을 바라보고

한 번쯤은 믿어보려 애썼다



내가 불안한 마음에 얼마나 요구를 많이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남자 친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원한다는 이유 하나로 기꺼이 요구들을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가 내게 노력해준 것들,

그것은 작은 것들이 아니었으며,

쉬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비로소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내게 너무 충분한 마음들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불안이라는 롤러코스터를 수 없이 타고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멀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다만 내 불안이 마음의 거리를 늘 의심했을 뿐이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변했어'라는 내 바보 같은 말에

그는 아니라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



무엇보다 그는 나에 대해 지치지 않고

늘 무덤덤- 똑같은 모습으로 관계에 임한다

백 가지 서운함에 대해 들으려 하고,

백만 가지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해 준다








비로소,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루 종일 그의 마음이 그 자리에 있을까 고민하던 시간이 없어졌다

불안한 느낌 대신,

평온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자리 잡았다

평일 낮시간 공원을 거니는 그런 느낌 말이다





나도 이런 시행착오나 희로애락 없이도

사람이 잘 믿어지고,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이 나인 걸 어떡해-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곁에서 불안을 같이 견뎌줄 사람이라면,

백 번 정도 올라오는 불안에 대해 백 한 번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다면,

또 그게 너라면,

나는 비로소 믿을 수 있게 되는 걸





이토록 불안한 나에게 안정감을 옮겨 퍼뜨리는 당신,

나에겐 너무 충분한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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