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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Feb 15. 2023

삶이 안풀릴 땐 밥을 합니다

어쩌다 방구석 요리사


  언제부터 요리였을까? 기분이 복잡할 때 요리를 시작한 것이. 가끔 생각이 너무 많을 때면 유튜브나 넷플릭스 한 편도 집중해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삶이 안 풀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때 그렇다. 기분도 꿀꿀하고 귀찮으니 대충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고 싶다가도, 삶이 거지 같은데 음식이라도 좋은 걸 먹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신중하게 메뉴를 엄선해 부엌으로 향한다.


  요리는 과정이다. 과정에 온 정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재료를 손질해 다듬고, 지지고 볶다 보면 세상 복잡한 일들이 그렇게 잘 잊힐 수가 없다. 그 시간이 너무 좋다. 하나에 골몰해서 복잡함을 다 잊고 집중하는 시간. 몰입을 겪고 나면, 정신도 맑아지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덤으로 맛있는 음식이 결과물로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요리는 정직하다. 인풋을 넣은 대로 아웃풋이 나온다. 어쩌면 통제감일지도 모르겠다. 삶은 노력을 투입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운이고 랜덤이다. 통제할 수 없다. 때로 최선에 반하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다. 요리는 그렇지 않다. 배신하지 않는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빨간색이 나오고, 간장을 넣으면 갈색이 나온다. 재료가 부족했으면 부족한 맛이 나고, 충분하면 차고 넘치는 맛이 난다. 이 단순한 정직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요리는 위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고시에 실패하고 귀촌 한 김태리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이것저것 부지런히 해먹었는지 요즘 들어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마음처럼 안되는 세상 속에서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분주하게 요리한 음식이 입안으로 골인해 맛을 내면 위안이 된다. 거기에 함께 먹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그 또한 기분 좋은 일이 된다.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시작한 것이 어느덧 꽤 모여 집밥 컬렉션을 만들어보았다. 힘든 삶에 푸근한 위안과 정직한 보상이 되어준 친구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식

  한국에서부터 국물을 좋아하기로 유명(?) 했던지라, 미국에 와서도 쌀밥에 국물요리를 가장 많이 해먹게 된다. 역시 주식은 바뀔 수 없나 보다. 미역국, 돼지국밥, 된장국, 육개장,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등 국물요리와 간단한 반찬들을 곁들여 먹는다. 한 가지 에러가 있다면 미국에서 밥그릇 다운 밥그릇을 못 구해서 접시에 퍼서 먹고 있다는 점이다. 양해의 말씀을 구한다.


  한식은 동시에 국, 밥, 반찬 이렇게 여러 가지 요리를 해야 해서 가장 어렵기도 한데, 그만큼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 스트레스 해소에 제일 좋고, 차렸을 때도 만족도도도 높다. 동시에 여러 음식을 하느라 정신을 엄청 집중해야 타거나 말아먹지 않는다. 한식을 해보면서 옛날 엄니들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생겨났는지 모른다. 한식은 사랑이다.

남편 생일상. 미역국, 닭 안심 볶음, 계란말이, 시금치무침, 김치
손쉽게 즐겨 해 먹는 돼지국밥. 미국 마트에서 돼지 머리뼈를 판다.
얇은 삼겹살 구이와 쌈 채소, 된장찌개
소고기 구이와 파 상추겉절이, 된장찌개, 참기름. 포커스가 조금 나갔다.
챙겨 먹기 귀찮을 때 제일 소탈한 밥상. 배추 된장국, 시금치, 김치
국수 귀신 남편을 위한 잔치국수와 새우 파전
국밥 매니아 스스로를 위한 육개장
불고기 쌈밥
두유 노 비빔밥?
비 오는 날 두부김치와 된장찌개, 해물파전
불고기 쌈밥과 계란찜, 된장찌개
목살 가지 덮밥
간장 제육과 김치찌개, 쌈 채소
한참 솥밥에 꽂혀서 연어 솥밥과 상추 겉절이
향기가 좋은 소고기 버섯 솥밥.
미역국에 연여구이, 양파 채
소고기구이, 쌈 채소, 된장찌개




분식

   미국에 와서 생각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분식 종류였다. 블루밍턴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도 사 먹을 수 있지만 김밥 같은 경우는 속이 부실하고 밥만 많거나, 떡볶이는 매운맛이 덜 나거나 하여튼 한 박자씩 아쉬움이 있어 결국 직접 해먹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재료를 사서 해먹는 게 훨씬 혜자롭고 가격도 덜 나간다. 외식을 최소화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봐주면 될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신전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카레 가루와 후추를 활용한 신전떡볶이 레시피를 찾아 직접 해먹기에 이르렀다. 너무 행복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정신이 요리를 하게 만든다. 미국 시골이라도 먹고 싶은 것은 죄다 먹고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들을 만나보자.

속이 꽉 찬 김밥. 3색 파프리카가 포인트
홈메이드 신전 떡볶이 소스와 밀떡. 카레 가루와 후추가 핵심이다. 너무 맛있다.
쫄면에 치킨너겟. 요리하기 귀찮은 날이었던 것 같다.
짜장면. 춘장을 직접 사서 볶아 만들었다. 군만두는 서비스.



라볶이에 반숙 계란. 무슨 말이 필요할까.
김치말이 국수에 반숙 계란. 입맛 없을 때 치트키다.



양식


나름 그래도 미국에 있다고 양식도 꽤 해먹는다. 한식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양식 파라서, 거의 균등한 비율로 해먹게 되는 것 같다. 양식은 한 그릇 음식으로 해먹기가 참 편하다. 또 마트에서 버거 패티나 번도 팔아서 집에서 재료를 많이 때려 넣은 수제버거를 해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근에는 오븐 사용방법을 익혀서 스테이크의 신기원을 경험 중이다. 무자비한 양식 퍼레이드를 시작해 보겠다.

멕시칸 보울. 치폴레에 도전장을 내미는 초폴레
오븐에 구운 스테이크와 적양파, 토마토 모짜렐라 카프레제, 샐러드
베이컨 아보카도 샐러드, 딸기. 가끔 채소를 충전하는 그린데이를 갖는다.
토마토 파스타. 간고기와 치즈도 잔뜩 넣어서, 3인분 같은 2인분이요
오븐 스테이크와 구운 양파, 샐러드, 체리. 유난히 맛있었던 고기였다.
위의 사진과 동일한 스테이크를 오븐에서 갓 꺼낸 비주얼.
그린데이 - 스테이크 샐러드, 허니듀, 딸기.
미국스럽게 무자비한 스테이크, 구운 고구마, 감자, 허니듀와 오렌지 디저트
오븐에 구운 폭립과 샐러드, 파프리카
크리스마스 특식 1 - 양념치킨과 리스 샐러드, 허니듀, 체리
크리스마스 특식 2 - 폭립과 리스 샐러드, 체리
홈메이드 더티버거와 수제 감자튀김. 집에서 갓 튀긴 감자튀김이 끝내준다.
내용물이 잘 보이게 한 장 더.
그린데이 - 치킨너겟 샐러드
게살 병아리콩 샐러드. 바야흐로 건강식.
토마토 치즈 파스타. 치즈를 실수로 부었지만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크림 파스타. 재료를 많이 넣는 게 취향이다.
오일 파스타와 샐러드. 느끼하게 먹어야 맛있다.



브런치


  주말 아침에는 희한하게 호텔 조식 같은 아침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최대한 흉내 낸 브런치를 차려본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 형편에 고급 호텔 조식은 사치지만 흉내 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말이다. 약간 인스타 감성의 브런치 가게들을 흉내도 내본다. 토스트기에 구워서 향과 풍미를 살려낸 빵에 머신에서 갓 내린 커피만 있으면 우리 집이 호텔이고 브런치 카페다. (또 이렇게 스스로 세뇌를 시켜본다. )

크로아상과 요거트보울, 허니듀와 사과
마늘 바게트와 오믈렛, 딸기
크로아상과 요거트보울, 커피, 햄 치즈와 스크램블 에그, 과일 조금
미국식 엄청 큰 팬케이크와 메이플 시럽, 청포도, 블루베리와 사과
크루아상, 요거트보울과 반숙 계란, 오늘은 밀크티
크로아상 참 자주 먹는구나. 크로아상과 요거트 보울, 과일
 호텔 조식 따라한 베이글 브런치. 색감이 너무 좋다.
호텔 조식 버전 2 - 여러 종류의 빵과 햄, 살라미, 스크램블 에그.


  나열해놓고 보니 그간 참 열심히도 차려먹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와도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 가능했던 나날들이었다. 외식 물가가 비싸서 의지와 무관하게 집에서 많이 해먹게 된 배경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뭐가 됐든 요리를 좋아하고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도 힘든 나날들에 요리와 음식이 위안이 되어줄 것이라 조심스레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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