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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Feb 13. 2023

좌절을 애도하는 시간

슬플 때 슬퍼하기

   오늘의 감정은 슬픔이다. 아직 좌절 경험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지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슬픔은 떨치려 하거나 덮으려 할수록 자기의 존재감을 인정받으려는 듯 점점 커지기만 하는 친구다. 슬플 때 시간을 두고 원 없이 슬퍼해야 천천-히 사그라지며 페이드아웃되며 물러나는 그런 친구다. 오늘은 시간도 많겠다 작정하고 슬픔이랑 놀아주는 하루가 되려나 보다.

출처: https://movie-phinf.pstatic.net/20151105_225/1446691851863hWGxP_JPEG/movie_image.jpg?type=m665_4



   여유로운 일요일이라 점심을 먹고 나서 창가에 앉아본다. 집이 조금 썰렁한 편이라 털신과 담요를 꼭꼭 두른다. 느리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스피커에 연결해 재생한다. 창문 블라인드를 밖이 보이게끔 조절한다. 이제 창밖을 바라보며 힘을 빼고 멍하니 있으면 된다. 어떤 생각이든, 상상이든 상관없다. 그저 가로막지 않고 무엇이든 일렁이다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멍-하니 생각 없이 보내기도 하고, 중간중간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기도 한다. 다시금 속상하고 아릿한 생각이 찾아온다. 일이 잘 풀렸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얼마나 좋았을까...... 어떤 미래가 있었을까, 구체적으로 상상도 해본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염원하던 게 다 잘 풀리는 모습이다. 제일 이상적으로 꿈꾸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미련이 철철 흘러넘친다. 부질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가장 솔직하고 모습으로 감정을 만나볼 뿐이다.







   그렇게 한동안 창가에 멍하니 앉아 알뜰살뜰하게 가꿔왔던 바람들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여태까지 이런 희망을 가득 안고 여기까지 달려왔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목표가 주어지면 얼마나 신나고 투지 넘치게 정진하는 사람인지 알기에 더 그렇다. 이때쯤이면 기쁜 소식을 받아보고 신나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동시에, 오늘처럼 슬픈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 봐 누구보다 많이도 두렵고 불안해했다. 불안해하면서도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서 그 시간을 다 지나온 스스로가 아련하고 애틋하다, 에휴.


    기나긴 레이스가 끝이 나고 이제는 자유롭게 뭐든 할 수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그다지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 뭔가를 다시 열심히 하고 싶지도 않고, 신나게 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안 난다. 당장 힘을 내서 밖을 돌아다니면, 잠시나마 울적함은 잊을 수 있음을 잘 알지만 왠지 진심으로부터 달아나는 느낌이라 썩 내키지 않는다. 당분간은 슬픔이와 잠시 같은 시공간에 머물며, 희망과 바람의 상실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될 것 같다.


때가 되면 다시 일어나 부지런 떨며 살아갈 스스로를 기다리며, 이만 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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