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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Feb 10. 2023

노력하고 노력해서 또 실패했습니다만,

결과보다 과정을 봐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삶이 참 얄궂다. 말하자면 지금이 그렇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미국 상담심리대학원 박사 과정에 지원을 하고 있는 재수생이다. 최근 하루에 11시간 30분에 달하는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 받아본 결과는 불합격 - 대기번호 1번이다. 여기까지 온 것도, 결과적으로 2등이라는 성적도 분에 넘치는 결과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대기자라는 결과를 받아본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최선을 다했던 나날들....


   지원한 교수님이 뽑는 사람은 단 1명. 2년이 넘는 준비 과정의 결과가 앞서 합격한 누군지 모를 사람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게 속이 상했다. 내 인생이지만 내가 손쓸 수 있는 것이 없다. 합격한 그 사람은 누굴까? 뭐가 그 사람을 합격하게 했을까? 나는 뭐가 부족했을까? 영어일까 학점일까 추천서일까 연구 실적일까? 그 사람이 혹시 다른 곳도 합격해서 가진 않을까? 언제쯤 결정을 내릴까? 그 사람이 여기 오겠다고 하면 재수도 끝이겠구나? 누군지 찾아가서 여기 오지 말아 달라고 할까? 미드처럼 조용히 암살할까? 별의별 생각이 하루 종일 꼬리를 물고 괴롭힌다.


   앞으로 남은 두 달의 시간 동안은 합격한 사람이 결정을 내릴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력하게 한다.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고 언제 쳐질지 모른 채 기다리는 기분이랄까. 가만히 집에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고, 준비하며 고생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 마음이 일렁인다. 섣불리 희망을 가지기도 싫고, 완전히 놓을 수도 없는 그런 상태다. 정말 싫다. 올해 새해 목표 중 하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씩씩하게 겪어내겠다는 다짐이었는데, 전혀 씩씩하지 않다. 지금 현재 긍정적인 생각이라고는 0.1%도 없다.





   스스로 결과보다 과정을 봐주는 사람이고 싶은데 어쩌면 또 결과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과정에서 잘했던 부분도 충분히 들여다보고 싶어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절망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가장 먼저, 용감했다. 완전한 타지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무작정 이메일부터 보내고 연구실에 얼굴을 들이밀어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과정이었다. 임금이나 보상? 당연히 없었다. 그렇지만 화장실 청소라도 시키면 할 마음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불만이라곤 없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서였는지, 연구실 일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점점 많은 업무를 받으며 교수님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도 내심 기대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김칫국이었던 것 같다. 그저 부리기 좋은 무급 노동력, 그뿐이었을까? 어쨌든, 스스로 타지에서도 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확인한 경험이었다. 그런 것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앞서 이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분들을 찾아 컨택했고, 그 과정에서 감사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다들 상담을 하셔서 그런 건지 도움 주는 일에 너무나 진심이셔서 놀랬다. 덕분에 모의 면접도 여러 차례 연습하고 피드백을 바탕으로 보완하고 연습하면서 인터뷰 준비도도 높아지고,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왜 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고자 하는지, 어디에 기여하고 싶은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움 주신 분들께 좋은 결과로 보답하면 더 좋았을 텐데, 참 아쉽다. 모쪼록 놀랍게 친절한 상담심리대학원생들이셨다. (상담 심리 만세!)


  세 번째로 준비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다시 도전한다고 한들,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 했다. 하여, 결과가 어찌 되었든 삼수는 없을 것 같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과정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기 때문이다. 고생 정말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이 지난했던 과정을 함께해 준 사람들이 있다. 매 순간 힘이 되어주고, 좋은 일에 나보다 더 기뻐하며 떨릴 때 같이 호달달 떨고, 오늘의 절망까지 함께하고 있는 남편에게 가장 먼저 큰 공을 돌린다(보고 있나?). 입시생이 벼슬도 아님에도 남편의 전폭적인 친절과 봉사에 감명받은 시간이었다. 입시가 끝나면 가장 그리울 왕대접이다. 두 번의 입시 전쟁을 같이 치르면서 전우가 되어버렸다. 아직 남은 무료한 기다림의 시간도 함께 잘 지나갈 것이고, 결과도 같이 맞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두 번째 입시까지 결국 실패로 끝나버린대도 다시 일어나 같이 터벅터벅 걸어나아갈 것이다.


  또 한국에서부터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해 준 오솔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대기번호를 받고 낙심했을 때, 누구보다 애쓰고 고생한 거 안다고 토닥여주어 큰 힘이 되었다. 매번 크고 작은 퀘스트들 앞에서 늘 잘 될 거라고, 잘 할 거라고 확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너무 든든했다. 빨리 같이 다시 모여서 어벤저스처럼 날아다니며 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 외에도 가슴 졸이며 행여나 기분이라도 건드릴까 조심스레 기도해 준 가족들, 한국에서 소식 전해주는 친구들, 블루밍턴에서 만난 친구들 모두 큰 힘이 되었다.





   글을 쓰며 차분히 정리해 보니 마음이 한결 났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롤러코스터처럼 널을 뛰는 기분 상태에 고통받을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삶의 한복판이라 이 전쟁통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나 아쉬움만 남는 경험보다는 의미롭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경험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훗날 나이가 들어서 '내가 사실은 말이야~ 이것보다 한참 더 잘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쉽게 떨어져서 그런 거야'라는 류의 아쉬움 신화를 늘어놓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는, 노력하고 노력해도 실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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