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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Feb 17. 2023

삶이 안 풀릴 땐 쇼펜하우어를 찾습니다

삶은 고통 뿐이라는 위안


   한 가지 간사함을 고백을 할 게 있다. 삶이 힘들 때만 쇼펜하우어를 찾는다. 평소 평온할 때에는 염세주의를 보면 눈살부터 찌푸리고 본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사는 게 잘 안 풀릴 때면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그렇게나 위안이 되는 것이다. 줄곧 기분도 꿀꿀하고 한동안은 이 상태일 것 같아서 아예 '삶이 안 풀릴 땐' 시리즈를 포스팅해 보기로 하였다. 스스로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지 관찰해 보고 싶어서다.


   애정하는 밀리의 서재에서 허구 많은 책들 중 자석처럼 마음이 이끌린 책이 바로 쇼펜하우어에 대한 책이었다. 제목부터 '사는 게 고통일 때'라니, 얼마나 적절한가. 쇼펜하우어는 특유의 염세주의로 사람의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 추라고 했다. 욕구가 충족되면 권태에 시달리고, 충족이 되지 않으면 결핍감에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하여, 욕구가 충족이 되든 결핍이 되든 인생은 온통 고통이며, 세상은 악과 고통이 지배한다.


   읽으면서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뭐랄까-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이래도 고통, 저래도 고통이니 안달할 필요가 없을 것만 같달까? 혹은 현재 진행 중인 고통과 결핍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안도랄까? 염세와 냉소에서 위안을 얻어간다.





   쇼펜하우어에 감동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온 세상의 아름다운 가치를 마냥 부정하고 파괴적으로만 바라보기만 해서는 아니었다. 그가 욕망과 고통을 바탕으로 행복을 이해하는 부분도 나름 주목할 만한 인사이트가 있었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는 시간은 긴 반면에 행복의 시간은 짧은 것이 보통이다'라는 구절은 정말 공감되었다. 작가가 짜장면을 예시로 들어서 특별히 격하게 공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아무리 먹고 싶던 것도 막상 먹고 나면 그 감동이 몇 시간도 안 간 채, 식곤증의 고통을 토로하며 불평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던 물건도 비슷하다. 결핍을 실감하며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며 충족해서 누리는 행복은 잠시뿐이니 말이다. 때때로 어떤 물건이 엄청 가지고 싶어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몇 주 동안 안달하다가 막상 구매하고 나면 그때뿐 금방 찬밥 신세가 되곤 한다. 성취나 여행도 행복의 지속 시간은 다를 수 있지만 곧 다른 결핍으로 넘어간다는 큰 맥락에서는 비슷한 흐름이 있다. 


   '욕망에 호응하는 평온한 상태는 잘 지각하지 못하면서, 실현하지 못하는 상태는 유난히 불편하게 지각한다'라는 대목도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부분이라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계속해서 연구를 해보고 싶었던 주제였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부정 편향을 가지고 있지만, 결핍된 욕구에만 편향되거나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결핍보다는 충족된 욕구를 더 자각하고 인식하며 살아가기 위한 여러 방법을 강구하는 긍정심리가 근래는 한 흐름으로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다. 그 여러 가지 요소와 방법 중에서 '감사'를 활용하는 것이 삶에 가져오는 영향과 그 방법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기회를 만들지 못해 결핍된 욕망에 사로잡힌 채 다시 염세로 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단언컨대 이 책은 기분이 좋은 나날들에는 한 챕터도 읽기 싫을 것이 분명하다. 삶이 평온할 때에는 염세와 비관이 피로하고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만, 삶이 안 풀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어느 책보다도 술술 잘 읽히고 위안이 되니,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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