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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Sep 03. 2023

미국 박사과정 개강 2주차 생존기

개강 2주 차, 살아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포문을 연 박사과정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가뜩이나 적응을 하느라 에너지도 많이 쓰이는데, 일정이 많기도 많아서 정말 혼이 쏙 빠지는 줄 알았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수업, 강의, 심리 상담, 연구 네 가지 주된 역할이 동시에 주어지는데, 역할 하나마다 로딩이 꽤나 무거워서 잘 운영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앞으로도 상당히 고된 여정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아직은 힘듦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껴가고 있다. 겪고 있는 어려움도 많지만, 어찌어찌 잘 해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고 기특한 마음이 든다. 소소하고도 번잡스러웠던 첫 주의 소회를 담아보았다.







   단과대 도서관이 바로 올여름 리뉴얼을 했다. 도서관 인테리어에 반한 나머지 거의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화이트 & 우드 톤에다가 통유리 숲속 뷰다 보니 발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뜰 때마다 창가 자리로 가서 할 것을 한다. 웬만한 카페보다도 더 예쁘고 환해서 앞으로도 사랑하는 스팟이 될 예정이다. 새로 배정받은 자리가 있는데, 그곳은 볕도 들지 않고 유동인구도 많아서 발길이 잘 가지 않는다. 자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도서관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출퇴근 기사로서, 남편과 카풀을 하고 있다.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라고 쓰고 싶지만, 현실은 어렵게 구한 중고차 한 대로 둘이서 어떻게든 효율을 극대화하며 타고 있는 것이다. 출근송은 단연 기사의 원픽 아이브 메들리로 구성된다. 하루를 여는 데에는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I AM'이 최고다. 아이브 없었으면 학교를 어떻게 다녔을까 모르겠다(?). 국내 4세대 아이돌 탑이 뉴진스냐, 아이브냐 그것은 우리 부부의 심각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개강 첫 주에 그다음 주까지 제출할 과제 및 발표가 3개인 것 실화입니까? 사실 개강 전주부터 논문을 다발로 보내며, 첫 시간까지 읽어와서 토론을 하라는 수업도 있었다. 본디 첫 시간은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존재만 하다 오는 것이 미덕이거늘, 풀 악셀 밟으시는 교수님들 덕분에 첫 주 심하게 무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용도 어려운데 영어로 읽는 것도 느려서 고생했다.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지만 배우는 내용은 그래도 재밌고 매우 유익하다. 가장 좋아하는 심리치료와 상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논문들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논쟁이 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 나중에는 한쪽 편을 들어서 페이퍼를 써야 하는데 너무 첨예한 나머지 누구 편을 들지 고민이다. 데드라인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읽어보다가, 임박했을 때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참전해 봐야겠다.







  바쁜 와중에도 먹고사는 문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몸과 머리가 잘 굴러가려면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연료가 좋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요리와 집밥을 좋아하지만 개강을 하니 너무 힘든 나머지 첫 주에는 평일 저녁을 거의 사 먹었다. 위 사진은 제일 좋아하는 태국 레스토랑에서 먹은 저녁인데, 정확히 개강 3일차- 그러니까 수요일-에 학교에 다녀와서 너무나 부치고 힘든 나머지 집에 와서 한바탕 눈물을 뽑고, 마음을 달래러 나갔던 날이다.


   영어도 어렵고, 해야 할 것은 많고, 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혼자만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하루였다. 겨우 일정을 다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와서 눈물 콧물을 뺐다. 옆에서 어떤 감정 기복을 보여도 놀라지 않는 단련된 남편 옆에서 신나게 울어젖히니 스트레스가 많이 날아갔다. 역시, 슬플 때 우는 사람이 일류다.


   이어, 소실된 염분과 수분 보충을 도모하러 출동했다. 동네에 최애 타이음식점이 있는데, 이곳은 다녀올 때마다 음식으로 힐링을 받는 곳이다. 뜨끈한 국물과 톡 쏘게 매운 볶음면을 정신없이 흡입하고 나니 용기가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잘하고 있다! 스스로 위로하며 다시금 힘을 내본다.



   이날은 또 다른 평일 저녁이다. 가장 좋아하는 즉석 피자 가게로, 원하는 토핑을 선정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워서 주는 방식이다. 따끈따끈하니 엄청 맛있다. 세상에 제아무리 맛있는 피자가 많지만 그중 으뜸은 갓 구워 나온 피자라고 본다. 가격도 저렴해서 학교 마치고 후다닥 먹고 오기 좋았다. 할 게 너무 많은 날에 좋은 선택지였던 것 같다.




   아침은 이전 포스팅에도 설명했던 적 있는 B.T.C(+계란/바나나)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혈당 관리에 좋다고 하여, 일요일 저녁에 재료 준비를 다 해놓고 아침에는 호다닥 먹고만 갈 수 있게 하고 있다. 혼자 일요일 밤에 아침 재료들을 손질하고 계란을 미리 삶아두면서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바쁜 틈바구니 속에서도 몸에 좋은 음식을 귀찮게 준비하고야 마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가정 내 업무분장으로는 요리팀 팀장인데, 갑작스레 역할에 영 태만한 것이 내심 미안해져서 여유가 있는 주말 만이라도 맛있는 것을 해주려고 노력을 해 보았다. 그리하여 주말 아침에 준비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 st. 대파 크림치즈 베이글을 만들어보았다. 두세 시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도 먹을 수 있고, 금방 만드는 것에 비해 맛이 상당히 있다는 여러 장점이 있었다. 집에서 만들어도 꽤나 맛이 나서 해봄직하다.


   아래는 주말에 휘뚜루마뚜루 해 먹은 간단한 집밥 메뉴다. 순서대로 미역국과 계란말이/ 연어 크림소스 스테이크다. 끼니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느낌이라 유튜브에서 쉬운 집밥을 틈틈이 찾아보고 있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간단한 랩이나 샌드위치를 먹는다. 햇볕 아래서 에어컨에 언 몸도 사르르 녹고, 비타민 D도 뿜뿜 나오는 게 느껴지면서 기분이 정말 좋다. 요즘 날씨도 딱 선선하니 좋아서, 혼자 풀밭을 바라보면서 점심 먹는 시간이 그렇게 좋다. 학교 매점에서 파는 간단한 후무스 랩과 프렌치토스트 샌드위치. 가격도 $7-8 선이고, 맛도 괜찮아서 점심시간에 종종 애용하려고 한다. 또, 집에서 체리나 포도 같은 간단한 과일도 싸와서 커피와 함께 후식으로 먹으면 진짜 피크닉 온 기분이 난다.








   요즘 제일 많이 붙어 다니는 동기들이다. 공강 시간이나 수업 사이사이 도서관이나 어느 카페에 모여서 수다를 떨며 할 것을 한다. 맨날 틈만 나면 사브작 사브작 같이 공부하자고 해서 귀엽다. 원래도 집 밖에 많이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라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안되는 영어로 반쯤 못 알아들으며 허허실실 다니고 있다. 그래도 동기들이 착해서 혼자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슬랭을 못 알아들으면 열의를 가지고 설명해 준다.


   여전히 미국과 이 사회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원치않게 다방면으로 뚝딱이고 있는데, 그저 재밌게 바라봐주어 고맙다. 살면서 언제 또 이렇게 절면서 도움 받는 존재가 되어보겠나 싶어서,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고 있다. 언어적으로나 소수자/외국인으로 핸디캡을 안고 사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하루는 친구 집에서 주말 저녁에 동기들과 멕시칸 파티를 해 먹었다. 미국 친구들을 사귀면서 배우는 점이 정말 많은데 그중 하나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법이다. 타코 하나를 준비하더라도 각자의 다이어터리 때문에 글루텐 프리/비건/미트 세 가지 버전을 준비하고, 디저트 아이스크림도 비건/무지방/저지방으로 구분해서 준비한다. 그런데도 이런 부분을 고려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누구도 유난하다고 생각지 않는 게 신기했다. 앞으로도 배우는 것이 엄청 많을 것 같다.






   올여름 비 오고 흐린 날이 많았는데, 개강하고 나니 쨍하니 날씨가 참 좋다. 너무 덥지도 않고 희한하다. 여름 끝자락의 캠퍼스가 찬란하고 아름답다. 캠퍼스를 거닐다가도 이따금 멈춰 서서 진하고 쨍한 색감을 눈에 담곤 한다. 지금,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순간들이다.


    며칠 전, 자려고 누운 밤에 동기가가 빨리 달을 보라고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서 호기심에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랬더니, 누가 플래시로 창문을 비추고 있는 줄 알았다. 달빛이었다. 슈퍼-블루문이었다고 한다. 휴대폰으로 한껏 줌인해서 찍어보았다. 미국에서는 다들 아이폰을 쓰지만 홀로 갤럭시를 고수하고 있는 와중에 갤럭시 뽕이 차오른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다사다난했던 시간이다. 사실 미주알고주알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훨씬 더 많은데, 한 번에 다 담기에 양이 방대해서 천천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무사히 생존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더 바빠질 일만 남았겠지만 또 어찌어찌 다 해내리라 믿는다. 틈틈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책에서도, 삶에서도 많이 배우고, 안으로 밖으로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스스로의 산뜻한 출발을 응원해 본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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