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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Mar 22. 2024

먹고, 수영하고, 감사하라

멕시코 칸쿤 여행기#3

     칸쿤에서의 두 번째 아침을 맞이했다. 턱에 주머니가 달린 펠리컨들이 꽤나 가까운 높이에서 떼 지어 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멕시코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친구들이다. 전날보다도 한층 더 태양이 강하고 후덥지근하니 바다 수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바다는 아무래도 수온이 조금 더 낮아서,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좋기 때문이다. 인디애나의 기나긴 겨울을 나며 그토록 그리웠던 따뜻한 여름의 바람을 원 없이 느껴보았다.






  이날 아침도 역시나, 테라스에서 바다와 나 오롯이 둘뿐인 시간을 한참 가졌다. 습하고 더운 바닷가의 바람마저 산뜻하게 느껴졌다. 휴식이 사람을 얼마나 긍정적이고 순하게 만드는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연이어 먹은 뷔페에 물려 오늘은 커피숍에서 색다른 아침 식사를 시도해 보았다.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와 딸기 그래놀라 요거트, 멕시코의 국민 빵 꼰차, 크루아상까지. 아이스 라테와 함께 맛나게 해치웠다. 오래간만에 꽤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올 인클루시브 안에 다양한 옵션이 있어서 매끼 색다르게 매우 잘 먹고 다녔다. 남이 해주는 삼시 세끼가 최고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따뜻한 날씨에 힘입어 오늘은 바다수영을 하러 호텔 프라이빗 해변으로 진출했다.







호텔 수영장을 지나가면 저 멀리 전용 해변이 보인다.

      다시 사진을 봐도 뛰어들고만 싶게 아름다운 카리브해였다. 투숙객에게는 선베드도 무료, 수건도 매일 새 수건을 제공해 준다. 또, 조금 뒤에 사진에서 살펴볼 스노클링 장비와 Body Boat라고 부르는 서핑보드 같은 물놀이 장비도 무료로 대여해 준다. 선베드에 앉아있으면 서버가 돌아다니면서 무료로 술과 음료도 서빙해준다. 이런 호사가 또 없다. 투숙객이 해야 할 것이라곤 오로지 놀고먹고 자는 것뿐이다. 한 번쯤은 정말 가볼 만한 특이한 서비스를 가진 휴양지라고 생각했다.





    아, 꿈만 꾸던 휴양지의 풍경이었다. 물과 수영을 워낙 좋아하는 터라, 스노클링 안경을 빌려서 정신없이 코 박고 헤엄치며 놀았다. 사진이라곤 온통 머리를 박고 수영하는 사진뿐이다. 원래는 여느 사람들처럼 휴양지스러운 비키니 수영복을 가져갔다. 전날 호텔 수영장에서 비키니에 우아한 선글라스를 끼고 살살 걸어 다니는 사람들 틈에 혼자 물안경까지 장착한 채 파워 자유형을 하다가 비키니 상의를 잠그는 후크가 부러져버렸다.



   하여, 원치 않게 강습용 비블락 원피스 수영복을 대안으로 내내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플랜비로 여분의 수영복을 가져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비키니는 거친 수영용은 확실히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천방지축 물 만난 물고기는 주제 파악을 하고 수영 강습용 원피스를 입기로 한다.


   바닷물 수영을 하고 나와 목이 타고 당이 떨어져서 달달한 논 알코올 베리 칵테일을 한 잔 마셨다. 얼음이 살살 갈린 칵테일이 새콤달콤하니 그렇게 맛있었다. 시원한 게 들어가니 문득 수영 후에 먹는 육개장 사발면 작은 컵 하나가 그렇게 간절해졌다. 하지만 미쳐 준비하지 못하여 통한을 안고 잊으려 노력했으나 가져갔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어릴 때, 물놀이하고 꼭 컵라면 간식을 허겁지겁 먹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물놀이를 하고 나면 컵라면이 그렇게 생각난다. 이후에도 몇 번을 선베드와 바다를 왔다 갔다 하며 알차게 원 없이 물놀이를 했다.




    수영을 하면 평소보다 배고픔이 훨씬 더 강렬해진다. 호텔 수영장 스낵바에서 제공하는 수제버거와 감자튀김, 치킨을 콜라와 함께 우악스럽게 해치웠다. 수영을 하고 나면 음식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차는 기분이라 평소보다 한참 많이 먹게 된다. 햄버거야 맛없기도 힘든 음식이지만, 전반적으로 호텔에서 제공되는 음식들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인심 좋게 두툼하고 큼지막한 버거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해변 수영을 마무리하고 이번에는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호텔 수영장은 총 5개 풀이 있다. 풀이 다양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투숙객이 많았음에도 수영장이 붐빈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서양인들을 보디 대부분 물속보다는 선베드에서 시간을 많이들 보내는 것 같았다. 덕분에 널찍한 수영장을 신나게 헤집고 다녔다.



 다만, 위아래의 사진처럼 매일 3시쯤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는 풀에는 사람이 많이 몰린다. 수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블 히어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요란하고 빠른 남미 음악과 함께 등장하더니 수영장 풀에 거품을 마구마구 분사했다. 아이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몰려들었다. 우리 부부도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거품을 맞으며 놀았다. 물놀이로 할 수 있는 모든 재미는 이날 다 누렸다.


   아침에 해변 수영부터 시작해서 야외수영장까지 섭렵하고 나니 둘 다 녹초가 되었다. 물놀이로 체력을 하얗게 불태우고, 피부는 새카맣게 다 태웠다. 돌아온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이 시점까지도, 피부에서 벗겨져 나온 화상 껍데기들이 이날의 기억을 되새겨주고 있다. 그래도 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만족스러운 휴가였다.





   날이 따뜻하니, 선베드에 몇 분만 누워있으면 옷이 금방 마른다. 하여 대부분 사람들이 수영복을 안에 입고, 그 위에 평상복으로 위장을 하고 여차하면 물에 뛰어들 수 있는 차림으로 다닌다. 따뜻한 휴양지에서만 해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놀 만큼 다 놀고 씻으러 숙소에 들어가면서 피나콜라다와 맥주를 한 잔 받아서 갔다.






   호텔 방 정리 팁으로 1인당 $1씩 보통 지불하는데 이날은 잔 돈이 없어서 하루 $5를 두었더니 룸 컨디션이 갑자기 유의미하게 업그레이드됐다. 처음 체크인할 때보다도 더 화려하게 해놓아서 '돈이면 다구나'를 느끼며 남편과 엄청 웃었다는 후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하트 모양 백조도 없었는데 성심성의껏 타월로 만들고 꽃가루까지 정갈하게 뿌려놓았다. 역시 사람은 부자가 돼야 하나보다 우스갯소리를 하며 한 컷 남겨보았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석양과 야자수의 실루엣이 아름다웠다. 팔다리가 새카맣다 못해 붉게 익어있다. 하지만 그만큼 즐겁게 놀았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다들 저녁식사에 각종 드레스와 파티룩을 입고 나타난다. 그게 에티켓인 듯하다. 또, 식당에 드레스 코드가 있어서 어느 정도 TPO를 갖추고 가야 한다. 블루밍턴에서 2년 지내면서 한 번도 입을 일이 없었던 원피스들을 원 없이 입어보고 왔다. 신났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애플 마가리타와 논 알코올 멜론 맛 음료를 한 잔씩 마셨다. 되짚어보니 이날 아주 올 인클루시브의 끝을 누린 하루였구나 싶다. 음료들도 맛깔나게 잘 만들어서 계속 받아 마시게 된다. 놀고먹고 마시고, 방학의 의무를 다했다.






콜라로 남겨보는 위대한 개츠비짤

  호텔 내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점에 가서 뉴욕 스트립, 랍스터 구이, 새우 안심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가격을 안 보고 마음대로 주문할 수 있어서, 메인 요리를 두 개나 시켰다. 남편과 각 1인 1스테이크, 1 랍스터를 거하게 먹고 왔다. 미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거하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새빨갛게 익은 피부와 불룩 나온 배가 행복지수를 나타내고 있었다. 머무른 호텔에 한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이날 한국 어르신 딱 한 분을 우연히 만났다. 어르신은 60대에 이곳에 처음 와보셨다며 젊은 부부가 와있음에 세상이 참 좋아졌다고 혀를 끌끌 찼다. 평소 같았으면 꼰대력에 기분이 나빴을 테지만 잘 먹고 잘 놀아서 그런지 그것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무척이나 감사하고 만족하며 이 여행을 누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학 생활 중에 이곳에 올 수 있었던 모든 시간과 자원, 운, 동반자에 감사하며 오늘 포스팅은 마무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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