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산 중턱이라 그런지, 아침 공기가 퍽이나 맑고 달았다. 선선한 온도는 덤이었다. 비가 많이 왔던 전날과 다르게 날씨도 쾌청해서, 둘째 날 하이킹에 대한 설렘에 한껏 부풀었다. 이날 입장권은 12시, 정오 시간대였다. 준비하기에 꽤 널찍한 시간이라 오전은 숙소와 에스테스 파크에서 배를 채우며 보냈다.
숙소가 Inn이었어서 그런지 조식이 매우 간소했다. 요거트와 과일 위주로 허기만 채우고 숙소방으로 돌아와 나갈 채비를 했다.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고도에 따라 요동치는 기온에 대비해 여러 겹의 옷을 레이어 해서 입었다. 숙소에 새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설치해둔 구조물에 엄청 귀엽게 생긴 새들이 몰려와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자연에 가까워지니 힐링 되는 기분이 물씬 든다.
빌리지 베이글 Village Bagels
조금 전에 호텔 조식을 먹었지만 다소 부실한 감이 있는 데다가, 로키 마운틴 안에는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하여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에스테스 파크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구글맵 평점 4.9점에 빛나는 빌리지 베이글에서 연어 베이글을 사보았다. 연어 크림치즈 베이글은 역시 실패하는 법이 없다. 통통한 연어를 아낌없이 넣어줘서 꽤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를 좋아하는 남편은 맥모닝을 먹었다. 여기서 갈리는 취향 차이 - 여행지에서 로컬 음식점에서 먹기 vs 익숙한 프랜차이즈 먹기. 여러분의 선택은? 정답은 없다.
로키 마운틴 게이트웨이 Rocky Mountain Gateway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입장 시간까지 30분이 남아서 입장권 검문소 바로 앞에 있는 게이트웨이를 구경했다. 예쁘고 귀여운 기념품들이 정말 많았다. 로키 마운틴 굿즈들이 즐비한 이곳에 오니 지갑이 절로 열리는 기분이었다. 로키 마운틴에 visitor centor 들에서 파는 기념품 중에는 이곳의 기념품들이 제일 예쁘고 종류도 많은 듯했다. 혹시 기념품을 산다면 꼭 이곳에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쉽레이크 Sheep Lakes
드디어 입장 시간이 되어, 검표소에서 QR코드 입장권 검사를 받고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Big Horn Sheep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양들이 많이 찾는 호수라고 한다. 실제 양의 뿔을 만져볼 수 있게 되어있다. 들어보니 보기보다 훨씬 무겁다. 실제 양을 보기를 희망했지만, 이날 양은 한 마리도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어떤 시즌에는 도로에도 막 뛰어들고, 호숫가에도 양이 떼로 몰려와 물을 마신다고 한다.
매니 파크스 커브 전망대 Many Parks Curve Overlook
쉽레이크를 지나 본격적으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 것이, 산꼭대기까지 찻길을 뚫어 놓아서 그저 차를 몰고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매우 편하게 백두산 보다 높은 고도의 산을 오를 수 있다.
산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오르다 보면 몇 군데 Overlook들이 있다. 뭐라고 번역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전망대라고 해두겠다. 차를 잠시 세우고 내려 자연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곳들이다. 이곳은 중턱 정도에 있는 Many Parks Curve Overlook 이었다. 커브길이 예쁘게 나있어서 한 컷 담아보았다. 중턱만 왔는데도 풍경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정상에 가면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뷰에, 싱그러운 푸른색이 가득했다.
레인보우 커브 전망대 Rainbow Curve Overlook
앞선 Overlook보다 조금 더 올라온 곳에 있는 Rainbow Curve Overlook이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아래로 펼쳐진 산새와 나무 그리고 곡선 진 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는 1분에 한 번씩 와- 너무 예쁘다를 남발하게 된다. 두 번째 전망대까지는 차로 이동하며 내려서 눈과 사진에 담으며 감상을 했다. 이어질 전망대부터는 조그마한 하이킹 트레일 코스가 있어서, 내려서 하이킹을 하기 시작한다.
하이킹 트레일까지 차로 이동하는 도중, 중간중간 사이클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다. 오르막만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데 체력이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 경치를 천천히 감상하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낭만적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에서 보듯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 대자연 속에서 사이클을 타는 경험도 흔치 않은 것이 될 듯하다.
드디어 트레일이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한여름이었음에도, 곳곳에 위치한 만년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도가 3,700M로, 백두산보다 높았다. 가벼운 하이킹인데도 숨이 계속 차서 천천히 걸어야 했다. 그렇지만 풍경에 취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구경을 했다. 산소는 희박할지언정 공기는 정말 맑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도 색감이 쨍-하니 채도가 높다.
남편과 둘이 번갈아 사진을 찍어주고 있으면 미국인들이 저마다 "둘이 사진 찍어줄까?" 하고 꼭 물어보고 다녀서 본의 아니게 둘이 찍은 사진이 스팟마다 꽤 많다. 많은 친절을 받았다.
툰드라 커뮤니티 트레일 헤드 Tundra Communities Trailhead
앞선 하이킹 트레일보다 더 높고 훨씬 긴 툰드라 트레일 헤드에 도착했다. 가보진 않았지만 사진으로만 접한 경험에 의하면 이곳의 뷰는 약간 아이슬란드의 뷰 같았다. 실제로 보면 정말 광활하고 장대해서 가슴이 뻐근하다. 미국 자연의 스케일은 그냥...... 사기다.
고지대에 형성된 툰드라 지형과 버섯 바위들이 장관이었다. 마치 누가 깎아 세운 돌만 가져다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고산에 우뚝 선 바위들이 늠름하게 서있었다. 버섯 바위들까지는 차에서 꽤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이곳에서 고산병이 장난 아니었다. 중간중간 물도 마시고, 초콜릿도 먹어가며 천천히 적응했다.
날씨도 시시각각 변해서 하이킹 도중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서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잠깐 맞은 비에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렇지만 풍경이 너무 멋져서 불평불만할 새도 없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를 쫄딱 맞고는 히터를 외치며 세워둔 차로 달려갔다. 하이킹 트레일이 하필 또 긴 편이라 젖은 채로 차까지 가는 데 한참 걸렸다. 오들오들 떨며 차로 들어오자 마 히터를 켜고 간식을 꺼냈다. 사진에 잘 나오지는 않았는데, 기압 때문에 과자 봉지가 통통하게 부풀어있었다.
히터를 켜고 한 아름 싸온 간식을 까먹는데 눈앞의 광경이 또 끝내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경치 좋은 스낵바가 다 있을까 생각하며 운치에 젖어 과자와 초콜릿을 흡입했다.
몸을 녹이고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알파인 리지 트레일을 향해가는 길이다. 이쯤 되니 거의 산 정상인지라, 차창 너머로 보이는 뷰가 기가 막혔다. 아니 어떻게 이 산 정상까지 길을 닦아뒀을까 싶었다. 아름다운 곡선 도로를 따라 무난하게 로키산맥 정상에 있는 알파인 트레일 헤드까지 도착했다.
아, 물론 바깥 차선으로 커브길을 달릴 때는 꽤나 등골이 서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차들이 신중하게 서행을 해서, 뒤차에 대한 압박 없이 모두 15마일대로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코너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 초보가 차를 몰고 오면 약간의 공황발작을 겪을 수도 있겠다.
알파인 비지터 센터 & 알파인 리지 트레일 Alpine Visitor Center & Alpine Ridge Trail
앞선 툰드라 하이킹 트레일에서 비를 쫄딱 맞고 체온이 떨어져서 알파인 비지터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스낵 바로 달려가 뜨거운 수프와 차를 사셔 마셨다. 체온이 떨어지니 고산지대에서 컨디션도 같이 악화가 되었다. 하여, 급하게 뜨거운 페퍼민트 티와 수프를 한가득 사들고 계속 들이켰다.
창가 너머로 만년설이 보이는 산 정상에서 수프와 차를 들이키니 기분이 색달랐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싶었다. 뜨거운 음식과 차가 들어가니 체온도 오르고 컨디션도 한결 나아졌다. 곧이어, 하이킹 코스의 마지막 피날레인 알파인 리지 트레일로 향했다. 이 트레일은 길지는 않으나 경사가 심하고 고도가 가장 높아서 난이도 High로 분류된다. 물이나 보충 산소를 꼭 가져가기를 추천한다.
하단에 차가 많이 있는 곳이 Alpine Visitor Center이고, 이렇게 생긴 계단을 꽤 한참 올라가는 하이킹 코스다. 등반 시 물을 꼭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날씨가 하도 오락가락해서 다시는 비를 쫄딱 맞지 않겠다는 의지로 샛노란 비옷까지 장착했다. 숨이 너무 차거나 심박이 너무 오르면 잠시 쉬면서 올라갔다. 등반은 힘들지만 그만큼 볼 수 있는 풍경은 오를수록 멋있어진다.
드디어 정상 중에 정상인 알파인 하이킹 트레일 끝자락이다. 군데군데 만년설도 보인다. 뒷배경으로 끝도 없이 겹쳐진 채 펼쳐진 산맥이 장관이다. 구름이 머리 바로 위에 떠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알파인 하이킹 트레일은 고생스럽지만 꼭 와볼만한 풍경을 가졌다. 스케일이 어나더 레벨이다.
알파인 정상을 마지막으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온종일 로키산맥의 정기와 풍경에 푹 빠진 하루였다. 가끔씩 이런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자연을 '굳이' 찾아와서, 그 장대함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는 게 퍽 좋다. 직접 눈앞에서 보고 느끼는 이 감정들이 소중하다.
카페 드 포 타이 Cafe De Pho THai
하산 후, 따뜻한 국물이 당겨서 에스테스 파크로 복귀해 타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따뜻한 양지 쌀국수와 똠얌꿍 쌀국수를 시켰다. 아시아 음식은 역시 사랑이다. 속이 다 풀리고 몸이 나른해지는 마법의 국물이랄까. 생각해 보니 덴버에서부터 거의 매일 아시아 면 요리를 하루에 하나씩은 먹은 것 같다. 모쪼록 에스테스 파크에서 국물이 댕긴다면 찾아보기를 추천하는 음식점이다.
마지막 밤을 보내고 로키산맥을 떠나는 아침, 편하게 묵은 숙소를 한 컷 남겨보았다. 떠나기 아쉽지만, 이때가 떠나기 가장 좋은 때임을 안다. 에스테스 파크, 로키산맥 안녕!
덴버에 렌터카를 반납하러 다시 돌아가는 길, 가는 길마저 여전히 너무 아름답다. 이날은 구름이 산 중턱에 걸친 채 도로 옆으로 펼쳐져 있었다. 구름 옆을 운전해 가는 것은 참 묘한 경험이었다. 모쪼록 이렇게 콜로라도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과 덴버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전혀 새로운 자연 경관을 마주하면서, 삶은 힘들고 궂을 때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참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자연이 선사하는 장관을 보면서 감탄하고, 전혀 모르던 세계를 탐험하며 세계관을 넓혀가면서 말이다. 새로이 다가올 학기와 일상은 많은 힘듦이 주어지겠지만, 이렇듯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또 견디고, 다음 즐거운 시간을 기약하고 기다리며 잘 버텨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