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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Sep 22. 2024

어김없이 돌아온 우당탕탕 미국 박사생의 학기 중 일상

다사다난한 첫 쿼터


오랜만에 글 쓰러 돌아왔다.



부끄럽지만, 유튜브 브이로그를 해보려고 시도하느라 한동안 뜸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내린 결론은, 브이로그 만드는 일은 정-말 재밌지만 박사 생활과 양립이 불가능하겠다는 것이었다. 편집이 생각보다 꽤 걸려서, 학기 중에 주어진 일만 포잡이라 도오저히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이었다.



   혼자 조잘대는 것도 좋아하고, enfp 성향에 참 잘 맞는다고 느껴서 퍽 아쉬웠다. 그렇다고 영상만 찍고 편집자를 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지금은 운 때가 안 맞는 것으로 해두어야겠다.



  그간 밀려두었던 소식이나 업데이트하기로 해보자. 벌써 이번 학기의 25%가 흘러갔다. 학기의 첫 쿼터부터 다사다난했다. 여러 영역의 소식들을 들여다본다. 가장 먼저 이번 학기에 가장 큰 부담인 심리 상담 실습이다.

  센터에서 쓰는 오피스 겸 상담실이다. 한쪽 벽에는 책상이, 다른 쪽 벽면에는 카우치가 있는 자그마한 오피스다. 창문이 없어 조금 답답하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오피스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평균 18시간 정도 이곳에서 일한다. 첫 집단 상담도 원활하게 흘러가고, 이제 개인 상담 케이스만 쭉쭉 로딩을 늘려가면 된다.


    주 3일은 8시 출근해야 해서 체력적으로는 확실히 힘들다. 그래도 처음 와서 적응할 때는 너무 긴장되고 불안했는데, 이제 한결 익숙해져서 편안하다. 사람들과도 많이 익숙해지고, Staff Psychologist 분들이 다들 꽤나 친절하고 잘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배정된 슈퍼바이저 선생님과는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했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듯하다. 그동안 바로 옆 오피스에 동갑인데 우리 랩 4년 차 선배 겸 친구가 많이 도와줬다. 든든하고 지지적이라 적응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제 케이스 로드도 차기 시작해서, 나만 잘하면 된다!


   실습 첫 주에 신입생들을 위한 행사 지원 업무가 있었다(영어로는 Out-Reach라고 하더라). 위의 첫 번째 사진인데, 부스를 차리고 신입생들에게 기관의 존재와 서비스를 알리는 업무였다. 수련생들은 참여가 선택 사항이라고 했는데, K-대학원/직장인 출신으로서 보스가 선택이라고 하면 대부분 가야 했던 바이브대로 행사 지원에 나갔다. 그랬더니 수련생 중에 혼자만 온 것이 아닌가?


   아, 미국에서는 선택이라고 하면 진짜 안 와도 되는구나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매우 당황하고 뻘쭘했지만 뭐 이미 간 것을 어쩌랴. 기왕 간 것 열심히 천막 아래서 신입생들에게 상담 공짜로 받으러 오라고 영업을 했다. 땀 뻘뻘 흘리면서 4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왔더니 그 다다음 주엔가 센터에서 상을 받았다 - STAR 어워드란다(Spontaneous Thanks and Recognition Award). 스탭들이 행사 지원 도와줘서 고맙고 환영한다고 써주었다.


   의무인 줄 알고 간 것이었는데 모쪼록 보람되고 기분이 좋았다!




다음은 티칭과 연구, 학업 파트다.


    학과 오피스가 리모델링을 하느라고 오피스 배정을 늦게 받았다. 이번 학기는 티칭 오피스와 상담 오피스가 다른 빌딩에 각각 있어서 어쩌다 보니 오피스가 2개가 됐다. 가르치는 수업에서 학생 면담이 있으면 이 곳에서 일을 보고,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한다. 이번 학기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이 작년보다 잘 따라와서 수월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민원은 많다……. 학기 초라 그런지 데드라인 다 지나고 “구글 캘린더에 한 주 뒤로 잘못 입력했는데, 다시 내게 해주면 안 되냐”, ”개강 초라 아직 시간 관리를 잘 못했다, 늦었지만 지금 내도 되냐“ 등등의 이메일이 여러 통 왔다.  오늘도 참을 인 열 번 새기며 답장하는 미생이다. 이걸로 먹고살고 있으니 친절과 봉사를 잊지 말아야 할 터인데……. 그나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는 괜찮은데, 바쁘고 힘든 전쟁통 한복판에 저런 메일 보면 확-. 여기까지 하겠다.


짜. 말. 내. 선!!!!!!!!!

짜증 내지!!! 말자!!! 내가!!!!! 선택한 길이다!!!!!




    뭐 같이 멸망 중인 연구다. 여름 내 대망의 데이터 수집을 마치고 지난한 클리닝 과정을 거쳐 드디어 분석을 했는데, 결과가 영 안 좋다. 품을 상당히 많이 들인 프로젝트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백기 들고 교수님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였다.


   교수님은 이래서 교수님인가 며칠 보면서 장문의 이메일로 오류도 찾아주고, 다른 분석 방법도 일러주면서 방법을 찾아나아갔다. 스스로가 아직 지도교수가 절실히 필요한 응애라는 현실 자각을 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도 도와줄 사람 있는 과정인 것이 어딘가 싶다. 물론 교수님이 오류 찾아냈을 때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긴 했지만 말이다.


어휴, 얼굴에 철판 깔아야지 뭐 어떡해.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다. 학과 특성상 3-4학년까지 여름 계절학기 포함 연간 30 credit을 꼬박꼬박 들어야만 해서 코스웍은 여전히 무겁다. 이제 언제 가벼워지냐는 말도 안 한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듣는 심리 통계 수업이 꽤나 어려운데, 이론부터 응용까지 올라운더인 교수님이 가르치셔서 문송한 심리 학도들이 고군분투 중이다. 과제로 계산하는 걸 잔뜩 내주셔서 같은 과 친구들과 모여서 풀어보았다. 물론 챗지피티로 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굳이 또 그냥 한 번 풀어보고 싶었다.


   어렵지만 통계가 약점인지라 보완해야 할 것이 많았는데, 좋든 싫든 이 수업 들으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이론뿐만 아니라 lab 수업에서 R도 가르쳐 주기 때문에 꽤 유익할 전망이다. 잘 배워놨다가 R 잘 써봐야겠다.


    새로운 네트워크에도 입문했다. 미국에서 심리학 하는 한인들의 커뮤니티 KPN이라는 곳이 있다. 미국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활동하는 전문가 선생님들, 심리학 교수님들, 대학원생들이 모이는 곳이다. 업계에 한국인이 워낙 적다 보니 이런 네트워크가 더 소중하다.


    대학원생 서포트 그룹 미팅이 있어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참여했다.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그래도 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문화 차이나 언어 차이로 서러웠던 마음을 많이 녹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비슷한 경험들을 다 해보고 이 과정을 지난 분들께 듣는 다른 시각도 도움이 많이 됐다. 처음인데 혼자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약간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되게 감사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서포트 그룹은 앞으로 꼬박꼬박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삶에서 조금 말랑한 부분으로 넘어가 보자.


   동기 생일 겸, 개강을 기념할 겸 해서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Retreat이라고 표현했다). 포근한 에어비앤비 집을 빌려서 잘 놀다 왔다. 학기 중에 주말여행을 다녀오는 게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됐지만, 그래도 동기들이랑 많이 가까워진 탓에 용기 내서 다녀오기로 결심하였다.


   에어비앤비 체크인 전에는 한 카페에 둘러앉아서 함께 Goal Seeking Activity를 했다. 올해 목표, 프로그램 중간점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 졸업 전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 이렇게 카테고리를 나누어 각자 목표를 생각해 본 뒤 그룹에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생각보다 되게 유익하고 스스로의 욕구에 더 다가갈 수 있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액티비티가 딱 끝날 때쯤 체크인 시간이 되어 에어비앤비로 들어갔다. 같이 음식도 시켜 먹고, 친구 생일 파티도 하고 떠들고 놀다가 2시에 잤다. 너무 피로했지만 서로의 문화 차이에 대해서 꽤나 좋은 대화를 해서 감명 깊은 밤이었다.



    지난주에는 또 동기들과 우리의 아지트인 마리아네 집에서 모여서 Multicultural Holiday Celebration을 했다. 최근 인도의 큰 종교 행사인 Ganpati가 있었고, 한국의 추석도 있고 해서 같이 축하하려고 모였다. 저녁으로 인도 커리를 픽업해와서 함께 먹고, 후식으로는 내가 쪄간 송편과 약과를 먹었다. 동기들이 다른 문화에 대해 되게 오픈되어 있고,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재밌는 일들이 많다.


   아이들이 송편을 좋아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동기들 중 Gluten-free 와 Vegan인 아이들이 많아서 같이 먹을 음식을 고르기가 되게 힘든데, 송편은 그 모든 제약들을 뛰어넘는 마성의 디저트였던 것이다. 송편 재료 목록을 보니 쌀, 설탕, 소금, 참깨, 색소 약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역시 위대한 한식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운동도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다. 위 거룩하고 성스러운 느낌의 하늘 사진은 테니스장 앞에서 찍은 것이다. 꾸준히 매주 2시간씩 크루들과 테니스를 친다. 원래는 테니스 빵빵 치는 느낌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푸는데, 최근 잘못된 그립 습관을 바로잡고 있어서 원래도 잘 못 치지만 실력이 더 후퇴한 느낌이라 짜증스럽다. 그렇지만 다시 좋은 자세를 고쳐잡는 게 중요할 테니 차근차근 다시 익혀가야겠다.




   근력 운동과 달리기도 계속하고 있다. 요즘에는 운동 가는 게 그래도 제일 스트레스가 많이 풀린다. 학기 중에는 주말 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주말이라도 이틀 다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달리기도 계속해서 한 주에 0.1마일씩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것도 빠른 기록은 아니지만, 무려 3.8 속도로 시작해서 매주 올려서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운동을 통해서 아주 천천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지난주 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가 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그저 예뻐서 찍은 사진들이다.





   요즘도 잘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 평일에는 파김치가 되어서 요리를 잘 못하고 거의 사 먹고 있다. 대신 주말에는 꼭 집에서 요리를 해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점심도 싸가야 해서 한 주는 밀프렙을 하고, 두 주는 마트에서 샐러드 팩이나 샌드위치 왕창 사서 싸가고 그런 식으로 운영 중이다.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것이 은근히 일이다, 일!




   남편과도 여전히 늘 그렇게 아옹다옹 지내고 있다. 이번 주 평일에 Flu shot을 맞고 퇴근 무렵부터 컨디션이 영 안 좋아서 힘들다고- 힘들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남편이 가방을 번쩍 들어주었다. 감동받아서 한 컷 남겼다, 짜식.




   남편에게는 이상 행동이 하나 있는데, 공부와 연구할 게 많은데 하기 싫으면 돌연 집안일을 하면서 먼지 잡도리를 한다. 소파 밑까지 먼지가 하나도 없는데 굳이 또 한다. 웃겨 죽겠다. 뭐 나야 이득이므로 굳이 말리지도 않고 즐길 따름이다. 덕분에 집이 거의 무균실이다. 이상행동을 즐기고 있다.




   이상 구구절절 별별 업데이트였다. 이번 주에는 특히 잘 안 풀린 연구 결과 때문에 마음 고생을 좀 했고, 여전히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치만 주말에 운동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고, 브런치에 글도 좀 쓰고 보니 기분이 한결 풀리는 느낌이다. 새로 오는 한 주에도 이 모든 것들을 잘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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