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Aug 26. 2024

미국에서(도) 울리는 예민별곡, 불면가

이 글을 세상 모든 불면인들과 예민인들에게 바칩니다.

   스스로 무던한 사람이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백만 번 정도 해보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한 번도 예민하게 타고난 성정이 무던해져 본 적은 없다.


  새로 오는 두 정규학기 동안 실습 수련을 할 새 수련처에서, 개강 전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 채워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이 예민한 몸뚱이와 뇌뚱이는 바로 전 토요일부터 불면 파티를 개막하더니, 일주일 내내 알차게 신명나는 불면 대축제를 선사했다. 결국 토일월화수 불면과 싸우다 지쳐 목요일 새벽부터는 최후의 보루인 멜라토닌 수면유도제를 동원하였다. 수면 유도제를 먹기 전에는 하루에 3시간 정도 겨우 잔 것 같다. 정말 쉽지 않은 한 주였다.


    수면 유도제를 먹은 첫날은 약을 먹고도 두 시간 넘게 잠이 안 와서 진짜 고생을 했고, 복용 이튿날부터는 훨씬 잘 잤다. 이쯤에서 조금 웃긴 에피소드 하나: 수면 유도제 복용 이틀차, 약을 먹고도 스스로 계속 못 자고 잠을 설치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러다 잠시 새벽에 깬 남편에게 “나 또 하나도 못 잤어”라고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남편 말로는 내가 수면유도제를 먹고는 코를 골면서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 하나도 못 잤어“라고 하더니 바로 다시 코를 골고 잤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 불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 긴장이다. 미국에서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을 할 때면 여전히 곤두서고 꽤 많이 긴장이 된다. 언어도, 문화도, 소셜라이징도 무엇 하나 온전히 효능감을 느끼는 영역이 없다. 하루아침에 잘하게 될 성질의 것들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서 일하는 곳을 옮기는 건 나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다. 작년 한 해 수련한 심리 상담 센터의 구성원과 시스템에 이제 겨우 익숙해질 만해졌더니, 바로 센터를 옮길 때가 도래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앞으로 이 사이클을 최소 3번은 더해야 졸업이라니 까마득할 따름이다.






    새로 일하게 될 심리상담센터는 규모가 훨씬 크고, 시설이나 시스템이 매우 좋다. 위의 사진처럼 실습 수련생에게도 오피스가 제공되고, 이름도 멋있게 박아줘서 감동이었다.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조력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 전반적인 체계나 시스템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잘 정립되어 있다(조금 더 깊게 일해보고 이 부분에 대해 별도의 포스팅으로 자세히 남겨보겠다).


   동시에 뭐랄까, 조금 더 진지하고 심각하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무겁고 부담된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 어디쯤이다. 일단 조직 자체가 커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마 무지하게 많다. 일하는 모든 액션은 소소한 컨설팅이나 대화까지 다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고소의 나라답게 문서 기록이 법원에서 요구되는 일도 많다고 한다. 보험이나 영수증 처리 문제도 꽤나 까다로워서 신경을 써야 한다. 행여라도 실수로라도 이름이 헷갈리거나 해서 배정된 내담자가 아닌 다른 내담자의 차트를 클릭만 해도 바로 행정부서에서 소명하는 문서를 요구한다고 한다. 무섭다, 나는 실수 대마왕인데......


     이 모든 무게가 긴장으로 다가왔다. 꽤 무겁게 말이다.


  그래도 일주일을 통으로 못 잔 것치고는 낮에 교육도 열심히 듣고, 질문도 많이 하고, 다 잘 지나갔다. 교육 들은 양과 시간에 비해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막상 한 주를 보내고 오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물론 한동안은 계속 군기 바짝 든 이등병처럼 긴장되고 경직되어 있을 것 같다.


비싼 원서 2권도 무료로 나누어준다. 물론 퇴사할 때 반납해야 하지만, 횡재다.


     예전에는 이런 예민성을 저주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이것마저도 나의 일부려니-, 또 시작이려니- 하고 만다. 이렇게 못 자면 당연하게도 다음날 겁나 힘들고 피곤하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또 지나감을 안다. 쥐어짜면서 어떻게든 하루를 보낼 것이고, 그렇게 며칠 지내도 안 죽는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첫 학기, 첫 학년을 보냈던 작년에 특히 이런 불면 에피소드가 학기 중에 몇 번 있었는데, 못 자고도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냈다.


  예만 해도 안 죽고, 안 망하고, 잘 산다. 죽을 것 ‘같을'수는 있을지라도-.




   다행히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맞이한 주말에는 아주 단잠을 잘 잤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편히 잠든 밤이었다. 물론 약도 필요 없었다. 인과관계가 얼마나 확실한지 모르겠다. 부족했던 수면을 진하게 보충하고, 긴장과 불안을 다스리러 운동을 하러 다녀왔다. 신나게 땀빼고, 숨이 턱까지 오를 만큼 달리고 오르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이번 주 내내 불면 파티한답시고 난리 바가지를 피웠으니, 이제 돌아오는 새 주는 조금 덜 유난으로 맞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심리 상담 전공한다는 사람도 이러고 삽디다. 조금 힘들게 살 뿐, 다 괜찮다.  예민하고 긴장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여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