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를 마치며......
드디어,
대망의 파이널 주다.
이번 학기도 어김없이 학기말 대학생들 베이비 시팅에 여념이 없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은 기말고사를 치를 때 월-금 5일 간 시간을 주고 아무 때나 원할 때 편한 곳에서 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걸 시간 안에 못 쳐서 시스템이 닫힌 후 다시 치게 해달라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못 친 것도 놀라운데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 기말고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시간 관리를 못했다(??), 시스템이 리마인드를 안 해주었다(???) 등등 당당한 요구에 할 말이 없다.
또 한 학생은 데드라인이 2월부터 4월에 걸쳐 있었던 과제 5-6개를 갑자기 5월 초인 파이널 주에 연달아 제출하더니, 학칙 상 한 학기에 과제 3개는 30일 늦게 제출한 것까지 크레딧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다며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점수를 달라고 요구하였다(그런 학칙 없다, 맹세코 없다, 있을 리도 없다). 하루에 저런 이메일이 4-5통씩 온다.
너무 현타가 와서 다른 미국 박사생 동료들한테 너희는 이 베이비 시팅을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은 "그냥 스트레스받지 말고 다 해줘. 네가 걔네를 훈육하고 교육하는 게 네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마. 걔네는 나중에 회사에서 네댓 번씩 해고당하면서 배워나갈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외에도 "그냥 해줘 데드라인이 뭐가 중요해?"라든지 "나는 그냥 다 만점 줘"와 같은 대답들이 돌아왔다.
문화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한 교육은 단순히 수업 콘텐츠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데드라인에 맞추어 과업을 달성하고, 실패할 경우 그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지고, 힘들어도 가기 싫어도 그 마음을 이기고 수업에 가고,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을 총망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규율을 체득하는 것(disciplined)을 회사에 가서 부딪혀가며 배운다는 말도 일리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회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배움은 회사가 아닌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생각의 틀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 내 교육 철학을 고수할지, 아니면 타협할지, 이게 타협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문화권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전-혀 나에게 즐겁지 않다는 일이라는 사실뿐이다. 박사 졸업 후에는 이 땅에서 티칭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두 학기 동안 몸담고 수련했던 심리 상담 센터에서의 업무가 종료되었다. 내담자들 여름 플랜을 다 생성하고, 어마 무지한 페이퍼워크를 한 주 내내 걸쳐 마무리했다. 트랜스퍼 하는 스태프와 미팅을 잡고 인계를 하고, 정신과 닥터나 집단상담에 리퍼도 하고, 차트에 다 남기고, 기존 심리 상담 과정을 요약해서 올리고 등등 행정 일이 집약적으로 많았던 마지막 주였다. 몇 명의 오피스를 넘나들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무렵이 되니 함께 모든 것들을 감독해 주던 슈퍼바이저 선생님도 눈이 완전 풀려계신 걸 보고 나만 정신없고 힘든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의 오른쪽 사진처럼 수련생들과 함께 트레이닝 커미티에서 수련을 도와주는 슈퍼바이저들에게 카드를 함께 써서 드렸다. 카드를 사서 내 오피스에 둘 테니 편할 때 와서 쓰고 가라고 어레인지를 해 두었다. 덜렁 카드 한 장이지만 감동받아하시는 슈퍼바이저 선생님들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뿌듯했다. 그런데 사실 이 카드는 슈바 선생님들이 열어준 굿바이 파티에 비해 새 발의 피였으니......!
트레이닝 마지막 금요일 근무 날, 성대한 전체 스태프 포트럭 파티와 함께 수료증과 액자 선물까지 준비해 주셨다. 스태프들이 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가져온 가지각색의 요리들과 직접 구운 디저트들을 함께 먹으며 한 해 수련 완료를 축하했다. 사실, 남들 다 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토록 성대하게 축하파티를 해주니 뭔가 대단한 성취를 한 느낌이 들었다.
센터에 다니는 동안 정말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해서, 미국 대학 상담 센터 수련 후기는 여름 방학 중에 따로 하나의 포스팅으로 작성해 보려고 한다. 한국과 미국 양국의 대학 상담 센터 수련을 다 해 본 결과를 한 번 비교해서 써보겠다. 한편, 수료증에 적힌 슈퍼바이저들의 이름/학위/최상위 자격증이 적힌 서명이 너무 멋있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다. 부럽고도 멋지다.
언제 되나 - 인디애나쵸, Ph.D., HSPP.
학과에서도 Graduate Student Appreciation Week를 열어서 피자도 주고, 스낵도 주었다. 학기 말이 다가오니 오만 데서 다 축하파티를 열어주니 황송할 따름이다. 피자는 꼭 얻어먹으려고 하였는데, 하필 대학원 수업과 딱 겹쳐서 아, 못 먹겠구나 했는데 수업의 교수님이 수업 시간 30분을 할애해서 피자 타임으로 지정해 주셨다. 하여, 수업 수강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가서 공짜 피자를 실컷 얻어먹고 왔다.
교수님 최고......!
학기 시작과 말에는 꼭 동기들과 회식을 한다. 낙오자 없이 성공적인 2년 차 생존을 축하하며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낙오자가 나오기엔 아주 작고 소중한 6명이 전부인 코호트다, 허허.
그리고 회식에 연이어 동기의 브라이덜 샤워가 있었다. 동기 다 같이 드레스를 차려입고 축하를 해주러 다녀왔다. 미국 브라이덜 샤워는 처음 참석해 보았는데, 신기한 문화가 많았다. 자세한 것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포트럭 파티부터 시작해서 파이널 주에 이런저런 소셜이 많다 보니 소셜 배터리가 급속도로 닳는 느낌이 드는 한편, 홍수처럼 한 번에 워낙 많은 소셜을 겪다 보니 소셜에서 살아남는 스킬도 집약적으로 늘어나는 한 주였다.
와글와글한 파티에서 다 빨린 기를 철저한 혼자만의 시간 속에 충전했다. 여전히 미국 사람들에 둘러쌓여 소셜을 하노라면, 배경 소음 속에 리스닝을 하고 또 적당한 코멘트를 만드느라 두뇌가 200% 가동된다. 논문 쓸 때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랄까?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낀채 고요함 속에 스텝 클라이머도 타고, 오랜만에 물 속의 적막함을 찾아 수영도 다녀왔다. 그러고 집에 와서는 요즘 제일 큰 행복인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보며 힐링을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다.
바로 다음 주부터는 또 여름 학기의 시작이다. 그전에 채점과 성적 산출을 후다닥 마무리하고 틈틈이 쉴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계절학기는 정규학기보다는 수월해서, 한숨 돌릴 시간이 조금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슬기로워질 날이 있을는지 반문하게 된다.
그래도 가을부터 달린 두 정규학기의 완료를 축하하며 포스팅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