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대체되는 세상에서 공부를 붙잡고 있는 기분

by 화햇


지난 윈터스톰 때 쌓인 눈들이 폭닥한 이불이 되어 대지를 뒤덮은 한 주였다.



한 주 내 눈길 운전도, 캠퍼스 내 인도 보행도 퍽 쉽지 않은 한 주였다. 학과 내 클리닉에 들어가려면 위 사진 같은 인도를 지나야 했는데, 한주 내내 영하 10도에서 15도로 기온이 유지되는 바람에 눈이 갈수록 더 미끄러워졌다. 덕분에 지나다닐 때 뚝배기 깨질 뻔한 적도 있다. 조마조마한지고...!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personal space에 민감한지라, 길이 좁은 탓에 상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쪽 끝에서 기다려야 했다.


친구들이 툰드라에 사는 것 같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개인적으로 추위를 많이 힘들어하고, 더위에는 큰 이슈가 없는 탓에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에 살 때 느껴지던 몸의 가뿐함과 의복의 가벼움이 많이 그립다. 어느 봄방학에 다녀온 칸쿤이 그렇게 생각이 난다.


하지만 중서부의 겨울은 아직 가야 할 길이 한참 멀었다.





그리고 이번 주, 겨울의 칼바람만큼이나 냉혹했던 아마존 대규모 해고가 미국에서 이슈가 되면서, 최근 유달리 AI가 삶에 가져오는 변화의 바람들이 살결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학교 현장에서도 사건사고와 변화들이 유독 눈에 띄고 피부로 실감이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진다.


랩 미팅에서 매번 돌아가면서 논문을 읽고 발제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한 번은 학부생 RA 한 명이 프레젠테이션 하는 날이었는데, 발표하는 내용이 할당된 논문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교수님이 이게 이 논문에 대한 내용이 맞냐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았고, 학부생은 매우 당황하면서 고장 난 테이프처럼 "I don't know"만 반복했다. 짐작건대 챗 지피티로 논문 요약과 프레젠테이션 생성을 돌리고 내용 확인을 안 한 모양이었다.


다른 한 번은 박사 수업에서였다. 매주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세미나 발제와 토론 진행을 맡는 형식인데, 총 4개의 논문을 가지고 차례대로 토론을 진행하는데 그중 한 논문 내용이 전혀 상이했던 것이다. 비슷하게 식은땀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AI가 상당히 정교해졌고 오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검토는 필수인 모양새다. 테크놀로지에는 영 젬병이라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이유나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문송합니다...)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걸 보니 아직 완전한 단계가 아닌 것은 분명히 알겠다. AI의 도움을 받는 것이 편리하고 좋지만 이토록 식은땀 나고 어색한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사실 이쯤 되니 절대다수가 AI를 사용한다고 인정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 과제에서건 연구에서건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여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러 수업의 Syllabus에는 생성형 AI를 이용해서 과제를 제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쓰여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미 알음알음 다 쓰고 있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고 해두면 될 일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검토와 최종 제출본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내적으로도 여러 딜레마에 부딪힌다. 생성형 AI를 통해서 더 질 좋은 수준의 결과물을 빠르고 쉽게 내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다 머리가 텅텅 비어 AI 의존적인 존재가 될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모두가 AI를 써서 업그레이드된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와중에 혼자의 머리로 구현해낸 결과물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지는 않을까 싶은 조바심도 든다.




대부분의 분야가 거의 다 그러하겠지만 응용 심리학 분야도 AI가 가져오는 변화의 바람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챗지피티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준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내담자들도 심리 상담 회기 사이사이에 고민이 있거나 말할 대상이 필요할 때 챗 지피티를 이용하고 온 경험담들을 보고하곤 한다. 사실 상담자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비용을 발생하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데 챗 지피티는 24/7 필요할 때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그 메리트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심리 검사의 경우, 실시와 보고서 생성을 AI가 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와 특허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의학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랜 시간 시간과 공을 들여 수련을 해온/하고 있는 이들에게 불안과 허무감을 심어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흐름이 이미 이렇게 흘러가버리고 있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지 않을까.


여러모로 학문과 실무 분야에서 AI가 편리함을 제공하면서도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요즘이다. 다만, 이런 위협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나, 너무 막연한 무기력과 비관에 빠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AI를 지혜롭게 활용해서 결과물의 질, 시간 효율성,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도로 이용하면서도,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학위과정의 시간이 무용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게 균형을 잡고자 한다.


AI가 잘하냐 인간이 잘하냐는 사실 이미 무의미한 경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모든 것이 쉽고 빨라지는 세상에서 공부가, 연구가, 심리 상담이, 나아가 산다는 것이 나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더 고민해 보려고 한다. 챗 지피티가 더 잘한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되는 존재로 남아 야만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이렇듯 에세이를 직접 써내려가는 아날로그 인간의 뒤쳐짐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상, 페이퍼 쓰기 싫은 박사과정생의 옆길로 새는 포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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