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나의 근황을 몇 가지 사진으로 대체해 보겠다.
그러하다.
어딘가에 고독하게 처박혀 퀄시험 페이퍼를 써 내려가는 것이 나의 근황의 대부분이다. '시험'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상담 심리 박사 프로그램 퀄시험은 1차 페이퍼와 2차 구술시험으로 치른다.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학교마다 다를 테지만 우리 프로그램의 경우 1차시 페이퍼 시험은 6주의 기간을 주고, 세 가지 다른 주제의 20장 분량의 페이퍼 세 편을 각각 완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2주에 한 편 정도 완성해서 제출하는 격이다. 구술시험으로는 2시간 30분 동안 커미티 교수님들이 내주는 논문을 분석해서 critical thinking과 applying을 구현하는 프레젠테이션과 개인 연구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및 질의응답을 진행하게 된다.
3년간의 코스웍을 아우르는 주제들이라, 퀄 시험에 대해 학과에서 제공하는 instruction 공지만 20장에 달한다. instruction 읽고 숙지하는 데에만 거의 첫 주를 다 쓴 것 같다.
일단 1차시 페이퍼에 전념 중인데, 내용이나 구성 자체는 평소에 워낙 반복적으로 배운 것들 위주라 사실 크게 어렵지는 않았으나, 내 생각으로 조직을 하고 기술하고 써 내려가는데 소요되는 절대 시간이 정말 많다. 아무래도 페이퍼 특성상 들이는 시간의 인풋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주간에 상당 시간은 여전히 심리 상담 실습 근무와 랩 연구 업무와 코스웍에 써야 하지만 그 남은 시간들을 어찌저찌 짜내서 최대한 활용해야 해서 6주라는 시간이 타이트하게 느껴지고 계속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긴 글을 쓸 때는 통으로 몰입해서 몇 시간 써야 성큼성큼 진척이 되는 데 큰 청크의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워 고군분투를 좀 했다. 좀 쓰다가 필 받을만 하면 또 수업 들어가고, 좀 쓰다 보면 미팅이고 미팅 다녀와서 앉으면 흐름이 끊겨있거나 아이디어를 까먹고 그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상당 부분의 진행은 거의 주말에 의존하게 된다. 퀄 시험 기간 6주 내내 확실히 스트레스가 있고, 주말에 좀 쉬다가도 '아, 퀄 페이퍼 써야 하는데'하는 불안에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다.
그나마 내가 조직한 "Qual Warriors"라고, 같이 시험 치르는 박사 선생님들이랑 라이팅 그룹을 한다. 주에 한 번 두 시간씩 모여서 약간의 사회적 압박 속에 꾸준히 페이퍼를 진척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모이면 한 10분은 같이 불평불만하고 시작하는데, 이게 너무 웃기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른 세수 한 번씩 하고는, 그날의 목표를 공유하고, 남은 시간 동안은 다시 미간에 인상을 빡 쓰고 고요 속에서 각자의 글을 쓴다. 그러고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 목표치에 얼마큼 도달했는지 공유하고 헤어진다. 이 그룹에서 많은 위안을 받고 있다. 다들 비슷한 감정임을 확인하면서 안심도 되고 전우애를 느끼곤 한다.
봄방학 직전 금요일이 1차 페이퍼 시험 데드라인이라 그때까지 1차 시험을 달리고, 봄 방학에는 어디든 좀 환기를 하러 다녀올 생각이다. 요즘 워라밸도 안 좋고, 스트레스도 많고 한데 유일하게 그나마 기대되고 희망이 드는 것은 봄방학뿐이다. 물론 봄방학 이후에 2차 시험이 있지만, 지금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다. 그냥 1차만 끝내고 보는 거다. 뭐 그리 특별한 곳 가는 것도 아니고, 한두 시간 거리 근교에 나가보는 것이 전부지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다. 일단 이 지겨운 페이퍼가 끝나고 타운만 벗어나면 그저 행복할 것 같다.
삶에 때때로 버티고 지나가는 인생 노잼시기가 오곤 하는데, 이번 학기가 약간 그런 학기인 것 같다. 그렇지만 또 그렇게 버티고 그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전혀 다른 나날들이 펼쳐지기도 함을 안다. 그래서 그냥저냥 단기적인 목표만 보면서 버틴다. 물론, 이렇게 투덜투덜 거리면서 말이다.
이상 프로 투덜이의 퀄시험 중간 단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