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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Aug 19. 2022

신입생도 아닌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신입생도, 재학생도, 졸업생도 아닌데 박사 과정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피자 먹고 네트워킹을 하고 왔다. '이 무슨 진상 짓이오'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무개념 어글리 코리안은 아니니 들어보시라.



  사건의 발단은 바야흐로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를 많이 하시는 교수님께 살포시 컨택을 하고 미팅을 잡은 데서 시작되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밑도 끝도 없이 보낸 컨택 메일에 교수님은 응해주었고, 아침 9시에 연구실에서 뵙기로 했다. 익숙지도 않은 영어로 교수님과 만나서 연구 이야기를 해야 하니 부담이 꽤나 되었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 채로 결전의 날이 밝았다. 많이 떨렸다.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갔다.


들어가기 전 교정에서




  막상 닥치니 생각보다 흥미롭게 그럭저럭 이야길 잘 나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는 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많이 해소할 수 있어 좋았다. 동기부여도 잘 됐다. 다만, 역시나 전공 분야인 심리 분야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이따 12시에 신입생 환영 점심이 있는데 와서 피자 먹으면서 네트워킹을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처음 그 말을 듣고 '신입생도 아닌데 환영회에 가도 되나?'라는 걱정이 제일 먼저 들었다. 어딘가 부적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자기의 게스트 자격으로 참여하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셔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갔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미국 학생들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학교 건물들도 아직 잘 몰라서 찾아가는 길도 헤맸다. 학생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물어 갔다.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어색했다. 다들 몇 번씩은 그래도 만나본 터라 낯이 익어 보였는데 혼자 끼려니 여간 뻘쭘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자기 게스트라며 열심히 소개해 주었고, 신입생들과 재학생들도 잘 반겨주었다. 다들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배제되는 사람이 없게 잘 챙기는 분위기라 놀랐다. 이게 바로 아메리칸 오픈 마인드인가? 학생들에게 입학, 학교생활, 상담, 슈퍼비전 등등 대해서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피자를 먹다가 좀 전에 길을 물어봤던 사람을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 또 만났는데, 알고 보니 학생이 아니고 교수님이었다. 세상에...... 아찔했다. 동네 형같이 생긴 분이 교수님이라 그래서 충격받았다. '어 내가 길 알려준 애구나!'이러면서 아는 척하셔서 바로 머리를 박고 엎드려뻗칠 뻔했다. 다른 교수님들도 그냥 어벙쩡한 반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니셔서 특히 젊은 교수님들은 당최 학생인지 뭔지 구분이 안 간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재미있게 잘 다녀와서 기뻤지만, 알게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너무 경직되어 있었던 건 아닌가, 바들바들 떠는 게 티 난 건 아니었나 혼자 반추도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맥이 탁-풀리는 게 느껴지면서 어깨와 목이 뻑적지근했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혼자 신입생도 아닌 주제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참 잘도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해줬더니 엄청 웃겨 한다. 나도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좀 없었다. 또 이렇게 처음보는 사람하고도 어울려 알아가는게 이곳의 문화구나 싶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삶이다. 요즘은 특히 그러하다. 미국 시골마을로 흘러들어오게 될 줄 누가 알았으며, 팔자에도 없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까지 다녀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놀고먹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다시 공부도 좀 해야겠다. 앞으로는 공부 포스팅도 조금씩 올려봐야겠다.


   그저 눈앞에 주어지는 것들에 충실하기만 해도 이토록 다채로운 인생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그게 또 나의 길이 되겠거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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