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배부른 소리라고 하지만 어릴 적 나는 우리 아버지를 굉장히 싫어했었다.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에게 가족은 그저 그에게 짐 같았을 뿐, 그에 대한 기억은 어두웠고, 나는 그 편견 속에 23년을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자수성가의 꿈을 이루신 분이다. 별 볼일 없는 집안들 사이에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은 모두 장남 장녀가 책임져야 할 부담감에 의해 자신들을 채찍질 해왔었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엔 자기 자신보다 언제나 다른 무엇인가 앞서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여유'라는 것은 사치로 여겨지고, 이 집안의 장남인 나를 통해 자신들을 비춰 보고 싶어 하셨다.
우리가 13평짜리 주공 아파트에 살던 시절에 아버지는 하루에 담배를 한 갑씩 피곤하셨다. 계단 복도에는 항상 담배 냄새가 풍겼고, 그 시절 부모님 두 분은 여전히 맞벌이를 하고 계셨다. 항상 제때에 집에 돌아오시던 어머니와는 달리, 매일 술 혹은 잠에 취해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에 대한 나의 인식은 좋지 않았고, 어머니와 크게 싸우신 그 하루는 내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하루로 남았다. 그 전과 후의 모든 삶을 돌아보면 나는 참 복 받은 삶을 살았었다. 내가 부정하고 싶은 이유는 그저 내 상처에 대한 위로일 뿐, 나는 누구보다 걱정 없이, 내 의식주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모자란 적이 없던 삶을 살았었다. 이제 와서야 아버지를 바라보면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매일 5시간 채 안 되는 짧은 잠을 취한 뒤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야 하는 그 심정을 나는 왜 몰랐을까. 적어도 지금 나와 함께하는 강아지들은 집에서 오직 나 하나만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나를 기다린다. 그 어떤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내가 힘이 드는 날에는 내 옆에 와서 재롱도 떨고, 함께 피곤을 나누기도 하며, 나를 품어주고 다독여주기도 하며 나를 위해주는 게 내 일상의 힘이 된다. 반면 나는 어떠했는가? 매일 돌아오신 아버지를 등지고 잠을 자며, 시간이 지남에 욕심만 늘어, 늘 아끼기만 하던 그의 씀씀이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나를 집에 두고 나갔던 그 시간들을 모두 그의 이기적인 선택이라며 탓하곤 했다.
나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내가 강아지들을 키우기 시작하고부터다. 한 마리로 시작했던 Dogdaddy의 삶은 어느새 셋이 되었고, 한 마리만 키우던 그때보다 세배로 늘어난 책임감은 나의 지난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이라는 짧은 공강 시간에 잠깐이라도 집에 있는 나의 강아지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아버지 생각을 하였다. '겨우 강아지 세 마리의 책임감에도 짓눌리는 나인데, 한 가정을 책임졌던 것인가...' 그제야 항상 화난 것처럼 보였던 우리 아버지의 눈빛에 슬픔이 보였다. 굽은 어깨와 짧은 머리, 10년은 넘게 사용한 닳고 닳은 지갑, 내가 쓰다 버리겠다던 노트북 하나마저 다시 고쳐 쓰려하는 그의 씀씀이와 습관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혐오와 증오에서 존중과 존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뱉었던 말과 상처들은 되돌릴수 없겠지만, 그조차도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 이기에, 우리는 그저 개인의 행복을 쫓아갈 뿐, 단 한번도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었다는것을...